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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건 글이 아니다. 타자 일 뿐이다.”

  사실 이시기에 나는 성공의 단맛을 조금씩 알아 가는 중이었다. <볼티모어 선>은 나를 경찰서에서 불러들여 책상과 타자기를 주었다. 나는 잡다한 기사들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전해 여름 나는 로얄 타자기 한 대와 타자교본을 빌려서 연습에 힘을 쏟았고 타자실력을 완벽하게 가다듬는 의미에서 내가 쓴 7만 단어 분량의 소설을 직접 타자로 쳐보았다. 나는 그 소설을 몇 군데의 출판사에 보냈지만 모두 반송되었다.

나는 그 소설을 훗날 내가 유명해지면 출판하기로 하고 일단 다락방에 넣어두었다. 몇 년 후 트루만 카포티가 내 글을 “이건 글이 아니다. 타자일 뿐이다.”라고 비평하는 글을 읽고 나서 이 소설의 원고도 찾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이 글은 1982년에 발간된 러셀 베이커의 <성장>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멋있는 책의 에필로그를 찾아 다니다가 손에 잡고 차마 놓지 못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끝까지 다 읽어버린 책입니다. 언론인이었던 그는 50대 후반에 이 책을 썼습니다. <성장>이란 제목으로 나온 자서전입니다. 이 책은 평전/자서전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주연배우이기를 포기하고 객석으로 내려와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울 것 같은 과거 얘기를 어찌나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는지 웃다가도 마음이 찡해지고 눈물이 맺히는 글입니다.

그런데 어눌한 듯, 노련한 작품의 구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시작하는 문장을 한번 보실래요? 모두 모두 18장으로 목차를 엮어 나갔습니다.

제 1장 어머니의 타임머신

여든의 연세로 어머니의 적적함은 끝이 났다. 그해 가을 이후로 어머니의 정신은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때 불꽃같았던 어머니의 인생에 대한 태도는 벌써 십 년이 넘는 적적함과 무력감, 그리고 늘그막에 정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그 가을 이후로 어머니는, 그토록 혐오스러운 삶에 당신을 꽁꽁 옭아매고 있던 사슬을 끊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당신을 여전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간으로 되돌아가 버리셨다. 나는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께서 연세가 드신 후로 그렇게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된 것이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현실 세계라고 믿고 있는 곳으로 그분을 잡아 끌어오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과거로의 멋진 여행을 같이 하기 위해 애썼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부모 되기 이전엔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알려고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궁금증이 생길 무렵이면 이번엔 이야기를 들려줄 부모가 없게 된다.

몇 년 후 아들놈은 내가 들을 수 없을 만치의 거리에서 날 가리켜 “노친네”라 부르고 있었다. 그 애는 한때 내게는 미래였던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나의 미래였던 시간도 그 아이에겐 과거였고, 젊은 아이답게 그 앤 과거에 무관심했다.

어머니께서 젊었던 시절, 인생이 아직 당신 앞에 놓여 있었을 때 나는 그분의 미래였고 난 그 점이 못마땅했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나의 존재가 어머니의 시간에 한정되는 것을 깨부수고 거기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다.

어머니를 따라 희망 없는 과거여행을 계속하며 나는 내 과거를 그토록 쉽게 내버린 것이 얼마나 잘 못된 일이었는가를 깨달았다. 우리 모두는 과거에서 왔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생겨나게 한 그 과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인생이 아주 오래 전에 사라져버린 시간으로부터 현재까지 뻗어있는 사람들로 엮어진 동아줄과도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인생이란 결코 기저귀에서 수의를 입기까지의 한 뼘의 여정으로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제 18장 어머니

나는 혼자 들어갔다. 어머니와 세상을 잇고 있던 마지막 연결고리가 끊어진 그 가을 이후 벌써 4년이나 흘러 있었다. 어머니의 정신은 이제 현기증 나는 시간 여행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잠만 주무셨다. 어머니의 체중은 고작 34 Kg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눈을 뜨고 나를 응시하셨다. “너 누구냐?”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러셀이에요.” 어머니는 멍텅구리를 쳐다보실 때면 늘 지으시던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셨다.

“그런 이름 처음 들어 봐.” 말씀을 마치시고 어머니는 잠이 드셨다.

이렇게 이 책은 끝납니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이야기의 짝을 맞춰보았습니다.

그렇군요. 작가의 마음이, 작가의 기획이, 그리고 작가의 고뇌가 읽혀지더군요. 그렇지요. 책은 처음과 끝이 이렇게 맞물리고 그 많은 이야기는 책속에 뒤엉켜 녹여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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