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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4 08:38

먹기와 잠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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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와 잠자기]

우리는 대개 음식을 무엇을 '위하여' 먹는다.
암보다 무섭다는 비만을 막기 위해 적게 먹고,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하여 보약을 먹는다.
잠도 마찬가지다.
내일 치를 시험을 위하여 잠을 줄이고, 피로를 풀기 위하여 아침나절을 잠으로 채운다.
숙면클리닉이니 '숙면베개'라느니, 숙면장애니 숙면조절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잠자기 자체가 아닌 나(건강)를 위한 수단이 된 잠자기의 처지를 거꾸로 보여준다.
우리네 먹기와 잠자기는 나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또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밥 먹을 때는 밥만 먹고 잠을 잘 때는 잠만 잤다"는 공자에게 식사시간은 밥 먹는 것이 주인인 시간이요, 수면시간은 잠이 주인공인 시간이 된다.
그러나 어디 공자뿐이랴.
불교 쪽에서도 같은 뜻을 품은 말이 있다.

어느 선사에게 누가 물었다.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 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고, 잠잘 때 잠은 안 자고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한형조 번역)

먹기와 잠자기는 누구나 다 언제나 행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비근한 일이다.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고, 잠자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먹고 잠자기는 삶의 기본이요 일상 자체다.
한데 우리는 이 너무나 일상적인 먹기와 잠자기를 소외시키고 무엇을 '위한' 도구로 삼을 뿐 그 자체를 누리지 못한다.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익숙한 습관처럼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갈 뿐인 것이다.

<녹색평론 2009년 5~6월 통권 제106호, '생태의 눈으로 논어 읽기'(배병삼) 중에서>

유신견有身見(유아견有我見)에 사로잡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윗 글을 읽고 '내가 먹고 내가 잠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어떤 일을 할 때에는 그 한가지 일에만 집중하라는 교훈으로만 받아들일 테지요.
'먹는 내'가 있어 먹고 '잠자는 내'가 있어 잠자는 것이 아니라, '먹는 행위'만이 연기되고 '잠자는 행위'만이 연기되는 줄 깨달을 때에만 불교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먹고 잠자는 연기행위를 세상의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연기존재로서의 '나'라고 하는 가명假名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먹고 잠자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실체화(또는 처소화)에 의해 말하여지는 주객이 없으며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중론에서는 이러한 '존재와 세계의 실상(연기실상, 공空한 실상)'을,
불생불멸(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님), 불상부단(영원한 것도 아니고 끊어져 없어지는 것도 아님), 불일불이(하나_전체도 아니고 둘_부분도 아님), 불래불거(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신견有身見(유아견有我見)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집착의 뿌리를 뽑을 수 없으므로 해탈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불교의 수행은 유신견(유아견)에서 벗어난 수다원(예류자, 해탈의 흐름에 든 자) 이상의 단계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언어에서 주체와 객체를 나타내는 모든 명사는 '자성自性 없는 개념으로서의 가명假名'일 뿐이며 '자성을 가진 실체를 나타내는 실명'이 아닙니다.
진여, 공, 한마음, 법신, 법계 등은 연기존재緣起存在(나, 너, 이것, 저것, 종이, 책, 꽃 등 각종 존재물을 나타내는 명사의 개념)의 바탕[體]을 나타내는 '자성 없는 바탕 개념을 표현하는 가명'입니다.
따라서, 불교를 이해하는 사람이 '하느님(또는 브라만)'을 언급한다면 그 '하느님(또는 브라만)'은 '자성이 있는 절대자로서의 실명'이 아니라 연기존재의 바탕을 나타내는 '자성 없는 바탕 개념을 나타내는 가명'입니다.

불교를 이해한다고 하는 천주교 신자(또는 힌두교 신자)가 '하느님(또는 브라만)'을 위와 같이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불교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불자들도 수다원의 단계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교를 이해하고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수다원 이상의 단계에서만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념으로 단계를 나눈 것이기는 하지만, 수다원의 단계에서는 '유신견(유아견)'과 '가르침에 대한 의심'과 '잘못된 관례나 의식에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불하거나 예배하거나 기도하거나 제사 지내는 등의 관례와 의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대상을 실체화하여 예불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제사 지내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대상(객체)이 실체화되면 주체는 당연히 실체화된 상태입니다.
'모습(相)을 분별하지 않고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습을 실체화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출처1 : http://blog.naver.com/hojanyun/140091400537
출처2 : http://blog.naver.com/hojanyun/140091799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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