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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

대학원 문창학과  박선희


교수님,
교수님께서 내 주신 과제를 하기 위해 시인들의 시를 서로 분석하여 어떤 정서를 가지고 세상을 살며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가에 대한 비교를 하기 위해 프린트를 넘겼습니다. 시를 비교하며 읽어 내려가다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과연 이런 것이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이악스럽고 영악한 세상에 대항하는 힘이 될까, 라는 처량하고 무기력한 회의가 드릴처럼 또 내 머리에 구멍을 뚫습니다.

펜의 힘은 칼보다 강하다고 배웠습니다. 순진하게 그것을 믿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 펜이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강할 수도 아니면 무기력할 수도 있다는 것은 배워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제가 그 말을 배울 때는 정말 그 말이 맞는 세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펜을 가지고 있는 허약한 사람들을 위한 기만과 동정이었을까요.
아니면 강한 자가 살아남기 위해 허약한 사람들을 많이 만들기 위한 술책이었을까요.

살다보면 내가 공부하고 있는 문학에 대해 허허……,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사는데 이런 공부가 필요한 것인가. 질기고 질긴 인간이란 동물에게 문학이란 소금은 과연 얼마만큼 삼투압 작용을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 때가 있다.

포기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라는 가난하고 허약한 이론에 기대어 언제까지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할까. 나는 교과서에서 사람이 사는 동안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도덕과 윤리를 배웠다. 너무나 당연해 배울 필요조차 없는 것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비웃으며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만족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나였다. 왜 그렇게 당연한 것들을 가르치고 배워야했는지 살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수학과 영어는 물론 도덕과 윤리란 과목에 백 점을 받는 아이들, 갖은 사람의 아이들이 만든 세상은 그들이 배운 윤리와 도덕을 비웃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만들었다.

순진하게 도덕과 윤리를 배운 사람들은 그들이 만든 세상에서 헷갈려하고 비틀거리며 시를 쓰고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  제 정신을 놓아버리지 않기 위해, 믿음이라는 정신 줄을 놓지 않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술 취한 듯 세상을 산다.

‘인간답다’ 는 것이 사악하고 영악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짓밟고 억누르는, 비겁과 비열에 극치를 달리는 동물이 아니라 때 묻지 않는, 세상에 절지 않는 맑은 눈망울로 배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오늘도 고개를 흔들며 허우적거리며 세상을 산다.

“길가에 생나무 울타리에 가시가 있다고 해서 그 길이 덜 아름다운가? 고약한 가시같은 건 제자리에 팽개쳐두고 나그네는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스탕달이 『적과 흑』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신학생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쥘리엥에게 샤 사제가 한 말이다.

스탕달은 세상을 살면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기 위해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비틀거리는 예술가들에게 끝까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고뇌하는 순진한 낭만적 믿음을 잃지 않으려 오늘도 갈짓자로 걸으며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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