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갑자기 부엌쪽에서 부친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종종 이런 일이 있어왔기 때문에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쇼파에 앉아 부친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발바닥을 살피신다.
시선을 아래로 향해보니 도마와 부엌칼이 보인다.
알고보니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한 거 였다.
나는 부친의 발까락과 발바닥에 피가 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 다시 쇼파에 앉았다.
부친과 나는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난다. "나 깨달았어. 이리와서 얘기 좀 들어봐."
"저 지금 바빠요. 이따가 말씀해 주세요."
화장실에서 나와서 부친 옆에 앉았다.
"뭘 깨달으셨는데요?"
아무 말씀이 없다. 그래서 부친 얼굴을 쳐다보았다.
기억을 더듬고 계신 표정이다. 그런데 잘 생각이 나질 않나보다.
막걸리 한통을 비우고 계시던 중에 찾아온 깨달음이란 걸 알고 있기에
충분히 이해해 드릴 수 있었다.
"저 들어가 볼께요. 생각나시거든 말씀해주세요."
잠시 뒤에 방으로 들어오셨다.
"아까 칼에 다칠 뻔 했는데 화가 안나더라. 예전 같으면 니 엄마한테 왜 칼을 부엌바닥에 놓았느냐고 소리질렀을텐데..."
본인이 잘 살피지 않아서 칼을 밟은 거니까 본인 잘못이지 모친 잘못이 아니라는 거였다. 게다가 앞으로는 본인이 바닥을 잘 보고 다니겠다고 하신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저한테 말씀해주신 수많은 깨달음 가운데 가장 멋진 깨달음이세요."
부친은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시며 마루로 나가셨다.
p.s 그런데 혹시....
술에서 깨어났을 때 혹시 이 깨달음을 또 까먹으시는 건 아닐까? ^ ^;
나중에 까먹더라도 나도 부친처럼 멋진 깨달음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