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서] 오해받는‘처음처럼’
경향 2008.12.19
사실이 아니었으면 싶다. <처음처럼>이란 소주가 군 부대 일각에서 느닷없이 천대를 받기 시작했다는 풍문 말이다. 그동안 멀쩡하게 잘 나가던 이 소주가 최근 들어 병 글씨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PX에 재고로 쌓여 자연히 주문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년 징역살이를 했던 신 교수의 이력에 대한 일부 군 장교들의 반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처음처럼>이란 신 교수의 글씨판을 새 정부 들어 경찰서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에 내걸려다 일부 보수집단의 반발이 있자 경찰 지휘부가 철회했던 아픈 기억이 아물지 않은 터이다. 경찰의 행태는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조차 과잉 충성이라고 비판했던 우행(愚行)이다.
정권 교체 후 <처음처럼> 소주에 대한 갑작스러운 반감은 얼마 전 시대착오적인 불온 금서 목록을 발표했던 국방부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긴 하다. 인터넷에서도 이런 유의 악성 글들이 어렵잖게 보인다. “좌빨 글씨, 기껏 소주 이름이 되어... 그래서 난, XXX만 마신다.”
<처음처럼> 소주에 사용한 글씨의 원작료 1억원을 성공회대에 전액 장학기금으로 기부했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서도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글의 깊이와 폭에서 남다른 신 교수가 ‘신영복체’ ‘어깨동무체’ ‘협동체’ ‘연대체’라 불리는 독특한 글씨체로도 이름이 나 있다는 것은 그의 골수팬이 아니라도 익히 알고 있을 정도다.
대표작으로 볼 수 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강의>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등 시중에 나와 있는 다른 저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처음처럼>(랜덤하우스)이란 서화 에세이집을 찬찬히 읽고 나면 곱새긴 군 간부들도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이 책은 신 교수의 ‘처음처럼’ 휘호 밑에 씌어진 짧은 시구로 시작한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기쁨이 하나로 하여 엄청난 슬픔을 견디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작은 기쁨의 소중함을 깨닫고 작은 기쁨의 그 위대한 증폭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발표된 신 교수의 글 가운데 삶을 성찰하는 잠언 형식의 글을 저자가 직접 쓰고 그린 서화와 함께 엮어 무겁지 않지만 생각과 되새김을 요구한다. 저자 특유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묻어나는 글에서는 어김없이 긴 여운을 남기는 구절들을 만나게 된다. 지은이의 결곡한 삶의 궤적과 늠연한 선비 같은 마음결도 읽을 수 있다.
그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의 넓이와 깊이는 마치 바다 같다. 때로는 솜처럼 부드럽고 때론 칼날처럼 날카롭다. 불길처럼 뜨겁다가 얼음처럼 차가워지기도 한다. 천 번을 생각하고 만 번은 가다듬었을 듯한 느낌이 온다. 지은이의 다른 책에 이미 나온 얘기들이 눈에 띄긴 한다. 하지만 얄팍한 지식이나 이론보다 삶에서 우러나오는 촌철살인의 한 문장이 얼마나 육중한지를 보여준다.
짧은 글들과 많은 여백으로 채워져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 여백은 읽는 이의 느낌과 생각으로 채워나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사상은 보수우익의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결코 위험하지 않다. 신 교수야말로 “세상이 혼탁할수록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했으면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을 만큼 균형 잡힌 지성인이다. 그래도 의심스러우면 <신영복 함께 읽기>(돌베개)를 잠깐이라도 들춰보시라. 육사 출신 제자로 군 간부를 지낸 이들까지 그를 진정으로 흠모하는 글이 담겼다.
<경향신문 - 김학순 선임기자 hs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