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아련한 봄소풍 길, 자꾸 목소리가 잠기네요”
경향신문 2008.10.29
ㆍ책 ‘청구회 추억’ 라디오 낭송 신영복 교수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67)의 40년 전 추억이 라디오와 만났다. 신 교수가 책을 소개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1966년 이른 봄 시작된 청구동 아이들과의 만남을 담은 <청구회 추억>이라는 책을 직접 낭송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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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사진 강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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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와 책은 아날로그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성기를 누리던 라디오의 시대는 가고 화려한 영상이 대세인 시대가 왔다. 당연히 음성만으로 승부하는 라디오는 제 자리를 영상매체에 내줘야 했다. 활자의 타격은 더욱 크다. 지난해 10월 15세 이상 서울시민 2만명을 대상으로 독서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1년 동안 업무관련 서적 및 잡지, 만화 등을 제외한 교양서적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응답자가 45.5%에 이르렀다. 여가시간에 독서를 즐긴다고 대답한 비율도 6%에 그쳤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살포시 코를 자극하는 종이 냄새와 음성화된 활자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는 여전히 정겹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활자와 라디오의 만남이 의미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으로 성장했을 초등학교 어린이들과의 추억담은 신 교수의 목소리로 전파를 탔다.
추억은 사람을 꿈꾸게 한다지난 14일 라디오 프로그램 <보이는 라디오, 책읽는 사람들>의 녹음이 있었던 KBS 제4 라디오 스튜디오. 백승주 아나운서와 신영복 교수가 라디오 부스에 들어앉았다. 신 교수의 추억이 다리가 되어 둘은 얘기를 나눴다. 소재는 신 교수가 최근 발간한 <청구회 추억>이라는 책이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간 복역했던 신 교수가 감옥에서 집필했던 글들을 묶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렸던 글 중 한 편인 <청구회 추억>은 66년 서오릉 봄소풍 길에 만났던 어린이들과의 우정에 대한 내용이다. 봄소풍이 계기가 되어 20대의 신 교수는 문화동에 살던 아이 6명과의 만남을 매월 마지막 토요일마다 2년반 넘게 이어갔고 그러던 중 구속된다. 신 교수는 이 글을 69년 사형선고를 받고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재생종이로 된 휴지에, 항소이유서를 작성하기 위해 빌린 볼펜으로” 썼다고 한다.
국가 권력은 이들의 만남 역시 ‘국가 변란을 노리는 세력’으로 몰아간다. 책의 한 구절엔 당시의 상황이 이렇게 묘사된다. “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의 명단을 대라는 추상 같은 호령 앞에서 나는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중략) 그리고 조용히 답변해 주었다. ‘국민학교 7학년, 8학년 학생’이라는 사실을.” 그 뒤로도 신 교수는 군법회의에서 ‘청구회’가 잡지사 ‘청맥사’를 의식해 명명한 이름이 아니냐는 추궁을 받아야 했다. ‘청구회’는 아이들이 살던 동네인 청구동에서 따와 만든 모임의 이름이었다. 신 교수가 “어떤 죄명에 대한 심증과 판단을 굳히고 연역적으로 추적해 나가는 느낌이 강했다. 심지어 내가 잠자는 것, 밥 먹는 것까지도 혁명이라든가 운동성 있는 것으로 연결한 것 같다”고 회상할 만하다.
자연스럽게 만남과 이별, 그리고 추억이 대화의 주제가 됐다. 신 교수는 추억에 대해 “과거로서 지나가고 잊혀지고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자기는 의식하지 못해도 잠재의식의 일부로 남아 자기 자신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명상해 보고 냉정하고 정직하게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이 모든 실천과 인식의 출발”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책을 낭독하는 그는 추억에 흠뻑 젖은 듯했다. 자신이 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기분은 감상적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들이 벼르고 별렀던 소풍 날에도 싸오지 못했던 삶은 계란을 자신이 입원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들고 왔고, 그마저도 병문안은 거절됐다는 에피소드를 읽을 때에는 목소리가 잠겼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는 마지막 구절에선 추억에 대한 확신이 묻어났다. 사실 이번 책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20주년을 기념해 오디오북이 별책으로 담겨 있는데 여기에서도 신 교수는 <나는 걷고싶다> <여름 징역살이> 등 낭독을 하기도 했다.
‘추억의 결여’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 교수는 “가장 소중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으로부터 신뢰와 애정을 받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물질과 화폐의 가치가 우리 사회의 전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며 “물질적 궁핍 등이 사회적으로 지배하게 되면서 정말 소중한 삶의 가치를 읽어내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최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갑작스러운 죽음들을 보면서 결국 단 한 사람의 믿음과 신뢰 때문에 엄청난 것을 견디는 사람도 있다”며 “그런 사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더불어 삶’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한용운 선생의 시에 ‘임은 떠났지만 나는 임을 보내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만남과 이별보다는 만남의 의미가 떠난 후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가 참 중요한 것이지요. 떠남과 만남, 보냄과 이별이라는 것이 단순히 한 쪽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감옥에서의 시간을 참고 견디는데도 그런 이별을 언젠간 복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의 수감생활을 마친 이가 들려주는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졌다.
상상을 자극하는 활자와 음성
책 소개 프로그램인 만큼 독서 자체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신 교수가 강조하는 독서는 이른바 ‘삼독(三讀)’이다. 일단 텍스트의 내용을 읽고, 또 한편으로 책을 쓴 필자에 대해서 읽고, 마지막으로 독자 자신을 읽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고민하는 실천적인 과제가 독서와 연결되는 것이 최상의 독서”라고 설명한다.
신 교수는 또 “책은 과거 역사를 통해 개인의 경험을 뛰어넘는 새로운 간접 경험의 의미도 있지만 급속하게 변화하는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상황을 헤쳐가기 위한 많은 전문 지식도 준다”면서 “요즘과 같이 세계적인 금융위기, 주가 폭락 등 급변하는 여러 국제적인 새로운 질서에 따라가기 위해서도 상당히 기민한 독서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똥종이’에 글을 쓰고 옥중서간으로 책을 출판하던 활자의 전성시대가 쇠퇴한 것에 대한 감회를 묻는 질문에 “요즘은 영상과 시각에 익숙한 세대다. 그 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고 운을 뗀 뒤 “활자 매체가 갖는 상상의 공간이 너무 풍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바다를 TV에서 봤다고 생각해 봐요. 그럼 보여진 바다 이상은 상상이 안됩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상상의 바다, 상상 이상의 바다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활자 매체의 힘은 거기에 있지요.”
이 프로그램의 발단도 신 교수의 생각과 맥락을 같이 한다. 라디오에서 활자매체를 소개해 주자는 다소 ‘답답한 듯’ 보이는 발상은 김영준 PD(부장)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그는 “책읽는 풍토가 점점 퇴조하고 있는 시점에 ‘저자와 함께 책을 읽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며 “저자의 생각을 직접 전해 들으면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자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 PD는 “저자의 지혜와 삶의 노하우가 축적된 궤적을 책에서 얻을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당초 하루에 8분가량 주 5회 방송을 탔던 프로그램은 이번 개편에서 하루에 15분으로 방송 시간이 늘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프로그램에 소개될 책들은 출판평론가, 전국사서교사모임 대표 등 도서추천 위원의 추천을 거쳐 선정되는데 보건복지가족부의 제작비 지원을 받아 독서 캠페인을 함께 전개하는 등 청소년들의 독서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포털 홈페이지 등에 프로그램을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올리고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도록 했는데 ‘보이는 라디오’라는 이름은 거기서 왔다.
사실 요즘 세대는 활자도, 라디오도, TV도 아닌 웹(WEB)의 세대다. 신 교수는 “우리 세대와 인터넷 세대는 참 다르다”라며 “요즘 젊은이들은 스스로 독자적인 서버 같다”고 했다. 그는 “친밀하진 않아도 넓은 네트워크가 가능하고 속도도 빠른 것이 장점이고 긍정적인 기능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자신이 속한 세대는 “웹 1.0”이라고 했다. “우리 세대는 어딘가 접속해야 불이 들어오는 것이다. 정당이라든지, 해병대 전우회라든지, 지역공동체라든지. 혈연이든, 지연이든 어딘가에 접속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 교수는 그렇게 재기발랄한 요즘 세대들이 “효율성과 속도에 매몰돼 우직하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만 우직하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야박하지만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정서를 갖게 된다”며 “그러나 빠른 호흡, 속도, 금방금방 나타나는 효과에 길들여지지 않는 품성이 참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상에 빨리빨리 이뤄지는 것은 없다. 어렸을 때 그런(빨리 이뤄지는 것은 없다는) 기대치를 갖는다는 것은 오래 견디는 인내력을 익히는 것”이라는 얘기다.
정치적 변곡점과 맞물려 70년 가까이 살아온 인생이 구속되기 전 청년 시절의 20여년, 감옥에서의 20여년, 그리고 출소 후 20년으로 곡선을 그리며 살아왔던 신 교수의 삶에서 ‘청구회’ 아이들과의 만남이 아련한 향수로 남은 것은 결국 ‘소통’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통은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끼리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잖아요? 역지사지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부터 존중하는 것이 소통 아니겠습니까?” 책과 라디오의 만남만 해도 소통이 아닌가.
<경향신문 - 이지선기자 j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