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014-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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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경향신문 |
책[이용훈의 내 인생의 책](1) 엽서 - 잊는다고 세상이 살 만해질까
이용훈 | 서울도서관장
▲ 엽서 | 신영복
여행을 가면 종종 그 동네 우체국에 들러 엽서를 한 장 사서 몇 자 적어 집으로 보낸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후 어느 날 엽서를 받으면 지난 여행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며 즐겁다.
그런데 신영복 선생의 <엽서>란 책을 읽는 것은 그저 즐거운 일일 수는 없다. 한참 세상살이에 고민이 깊었던 시절 이 책을 만났는데,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오랜 시간 고통과 외로움이 가득했을 교도소에서 이렇게 깊은 사색과 사회에 대한 신념을 강화해 올 수 있었을까? 신영복 선생이 엽서에 꼼꼼하게 글을 쓴 이유는 기록해두면 다시 그 시절을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쓴 엽서는 단순히 기록이 아니라 온전히 이 시대와 사람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애정을 담고 있기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큰 울림과 함께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부끄럽게 했다.
어느 환경에서든 자신을 늘 사람들 속에 두고, 그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사람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다듬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담담히 보여주었다.
요즘도 우리 사회에 잊고 싶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대부분은 빨리 잊고 일상을 잘 살라고 한다. 그러나 단지 잊는다고 해서 저절로 세상이 더 살 만해 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잊는 것이 아니라 꼼꼼히 기록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구체적 행동을 통해 각자 새롭게 거듭 나면서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작지만 큰 세상을 담은 이들 엽서에서 보고 또 본다.
1993년 너른마당에서 나온 초판은 절판됐고, 2003년 돌베개가 멋진 책으로 다시 출판했다.
경향신문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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