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007-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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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윤무한_내일을 여는 역사 발행 _서해문집 제작 |
시대를 이끈 명저《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강의》에 이르기까지
신영복의 감옥 속에 들어온 현대사,
혹은 시대 뛰어넘기
윤무한(1943~)
전 강원대학교 초빙교수로 한국현대사를 강의하였다. 최근에는 1960~1970년대 사회.민중 운동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한 연구.저술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본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문기자, 전 대통령 비서실 통치사료비서관.
야적장에 방치된 돌이 주춧돌로
옥(獄)이라는 한자는 좌우에 짐승들이 버티고서 말(言)을 감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말은 사람의 몫이요, 짐승은 소리를 낼 뿐이다. 그러니 감옥은 소리에 말이 갇힌 짐승의 땅인 셈. 그 감옥 속에서 말을 빼앗긴 채 젊은 시절을 다 보낸 신영복이 깊은 우물에서 사색의 시린 샘물을 길어올렸다.
신영복, 그는 1968년 통일혁명당(統一革命黨)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20일을 복역했다. 1.5평의 독방, 가혹한 역사적 희생의 중압 속에서도 신영복은 인간·사회·역사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았다. 그 속에서 길어올린 사색의 샘물들을 부모·형수·계수·조카들에게 봉함엽서란 두레박에 실어날랐다. 1988년 5월에 막 창간된 《평화신문》에 그 내용이 발췌되었고, 이어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하 《사색》)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때마침 민주적 정권교체에 실패해 실의·절망·분노·회한·타협이 난무하던 터라,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와 정신의 지남(指南) 같은 것이 절실했다. 그 때 신영복이 홀연 나타난 것이다. 신영복에게는 자신에게 역사적 희생을 강요했던 독재세력도 숙연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의 몸에 한국 현대의 고난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면, 그는 몸으로, 사색으로 한국 현대사의 협애한 지평을 뛰어넘고 있었다.
신영복은 당시 우리 현대 지성사의 ‘지연된’ 희망으로 나타났다. 20년 넘게 야적장에 방치됐던 돌이 성찰과 사색이란 준엄한 정으로 자신의 모난 부분을 쳐나가 마침내 주춧돌로 쓰이게 된 것이다. 신영복 개인에게는 참혹한 세월이었을지 모르나, 역사의 신은 그를 요긴하게 쓰기 위해 그 긴 세월 그를 가두어놓았는지 모른다.
처녀작 《사색》이 나왔을 때 이 무명의 낯선 필자에게 독자들은 고압전류에 감전되었을 때와 같은 충격을, 그리고 이윽고 감동과 위안과 격려를 받았다. 《사색》은 단번에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올랐다. 넓은 의미의 인문학적 사유를 담은 책들이 시장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 상황을 고려한다면, 참으로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20세기의 신고전’ 반열에
그 원인이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1980년대 후반이란 이른바 보수회귀로의 그 시대에 독자들은 왜 책으로 세워진 신영복의 학교에 기꺼이 입교했을까. 꽤나 유명한 인사들이 《사색》에 심취하여 신영복을 높이 평가한 몇가지 사례만 보아도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영복의 글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너그럽고 온화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역사와 사회와 인간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냉철하고 준엄한 비판의 칼이 들어 있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삶을 배우고 또 문장의 극치에 도달한 아름다움을 배우는 것이다.(조정래)
그의 글은 인생, 사물, 우리 일상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많은 깨우침을 주기 때문에, 한번 읽고 마는 글이 아니라 항상 삶의 지침서로서 되새김하고 싶은 그런 소중한 글이다.(이해인)
봉함엽서 한 장 분량에 쏟아져 있는 글을 읽고 나면, 바로 다음 글로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밀도 있고 감동이 있는 글들이다. 어떤 때는 책장을 편 채로 가슴에 대고 멍하게 생각에 빠진 적도 있었다. 책 한권을 읽는 데 두달이나 걸렸다.(유홍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독서체험에 대한 고백이다. 한권의 책이 당대인들에게 이 정도의 효과를, 그것도 지속적으로 거두고 있다면, 그 책은 당연히 고전의 반열에 올라간다. 과연 《동아일보》는 창간 80주년인 지난 2005년 ‘책읽는 대한민국’ 시리즈 중 두 번째로 ‘21세기 신고전 50권’을 8월 8일부터 10월 12일 사이에 소개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출간된 책들 중 다양한 장르의 전문가가 추천한 책들에 신영복의 《사색》이 당당히 ‘신고전’으로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옥은 최악의 경험일 것이다. 지난 군사독재 시절 대개의 양심수들은 입술이 부르트는 긴장된 투쟁의 나날 끝에 검거되었을 것이다. 그 뒤 정보기관에서 지독한 고문을 곁들인 장기간의 취조를 받는 동안 아마 극단적 갈등과 죽음 같은 모멸의 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때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과 모욕, 그리고 자신의 허약함에 대한 쓰라린 자학적 확인으로 심신이 완전한 탈진상태에 빠질 것이다. 검찰로 송치되어 마침내 구치소 한평 내외의 독방 안에 들어앉을 때부터 새로운 일상의 흐름이 생길 것이다. 독서와 명상을 통한 자기 객관화도 가능해지고 바깥과의 제한된 소통도 가능해질 것이다. 어설프게나마 노동의 일상도 가능해질 것이다. 바깥과의 격리라는 기본조건에만 괄호를 친다면 ‘가난한 안정’, 혹은 ‘안정된 가난’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안정되면 가난하지 않는 게 속세의 삶이 아닌가. 그러나 징역살이는 산중의 승려나 수도원의 수사들에게나 가능한 이런 조건을 만들어 준다.
‘나의 대학시절’ 통해 ‘밑바닥 철학’ 구축
징역살이의 이런 특수한 환경적·정신적 조건에서 ‘징역의 철학’이 탄생할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낮춘 가난하고 겸허한 자의 오랜 사색의 공글림에서 빚어지는 철학이다. 수행자의 철학과 많이 닮아 보이기도 하다. 신영복이 교도소에서 보낸 20년을 ‘나의 대학시절’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을까.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틔우고, 수많은 ‘하층민’들과 온몸을 부대끼면서 민중을 익히고, 게다가 양화공·봉제공·목공·영선·페인트 등의 일까지 익히고 나왔으니 ‘대학시절’이라 할만도 했다.
《사색》을 처음 대했을 때의 관심이나 느낌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혁명적 인간’ 신영복의 면모에 강조점에 찍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검열을 통과해야 하는 편지글 모음이란 점에서 예상대로 그 부분은 대단히 절제되거나 은폐되어 있지만, 그 절제와 은폐 뒤에 정서적 울림이 깊게 드리워져 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절제된 이들 글을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그가 한갓 ‘감옥 철학자’가 아니라 ‘혁명적 인간형’이란 것이다. 혁명가란 아파하는 사람, 증오 없이 사랑 없는 사람, 역사의 질긴 부채를 떠안은 사람이란 점에서 그렇다.증오는 ‘있는 모순’을 유화(宥和)하거나 은폐함이 없기 때문에 피차의 입장과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오의 안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증오는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1983년 7월 29일)
나는 그 날 이곳의 흙 한 줌을 가지고 가서 새 교도소의 땅에 묻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으로 얼룩진 흙 한 줌을 떼어 들자, 역사의 한 조각을 손에 든 양 천근의 무게가 잠자는 나의 팔을 타고 뛰어들어 심장의 전율로 맥박칩니다.(1983년 9월 9일)
순화교육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수인들 옆에서 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면서, 잡초처럼 역사 속에서 뽑혀져 나간 아우슈비츠의 유태인들과 남아연방의 흑인들, 운디드니의 인디언들을 생각하는, 그러면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응시하는 장면 역시 혁명적 인간의 시선과 무관할 수 없어 보인다. 《사색》이 이러한 혁명적 인간상에 대한 글모음이라는 사실을 빼버리면, 자칫 지당한 ‘공자님 말씀’ 또는 산중문답(山中問答)으로 떨어질지 모를 일이다.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며 아리안의 영광과 아우슈비츠를 생각한다. 잔디만 남기고 잔디 외의 풀은 싸그리 뽑으며 남아연방을 생각한다. 육군사관학교를 생각한다. 그리고 운디드니의 인디언을 생각한다. 순화교육시간에 인내훈련 대신 잡초를 뽑는다.(1984년 9월 14일)
이 편지는 우리로 하여금 사람과 사랑에 대한 서늘한 깨우침을 준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해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도소 바깥의 사회에선 과연 증오의 원인과 대상이 제대로 파악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우리는 사회적 차원의 증오를 끌어들여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누리는 건 아닐까? 사랑마저 그런 셈법에 익숙해져 있는 건 아닐까?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한국인에게 지난 세월은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이었다. 사색이니 성찰이니 하는 말은 사치스러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쫓기듯이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꿈꾸지 못한 사색과 성찰을 바깥사람 몫까지 대신해야 했던 사람, 신영복에게는 청년시절이던 1968년부터 1988년까지의 꼭 20년의 귀양살이가 캄캄한 막장에서 빛나는 광물을 연금해내는 세월이었다.모진 시련은 인간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드물게는 그것은 인간을 승화시키기도 합니다. 신교수는 지난날 긴 시간의 시련을 통해서 그 자신을 어떤 증오나 착각에 파묻히게 하는 교조적 황폐화 대신 그 자신을 간단없이 단련하였습니다. 그 정신으로서의 절도는 가히 수행의 그것이었고, 고금을 오고 간 지식의 오랜 섭렵은 순결한 기도와도 방불하였습니다.(〈시인 고은이 읽은 《신영복의 엽서》〉,《중앙일보》1997년 12월 30일)
화(和)의 논리는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합니다. 타자를 흡수하고 지배함으로써 자기를 강화하려는 존재론적 의지를 갖지 않습니다.…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 간의 모든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신영복 발(發)’ 민족분단·통일 대안 기대
지난 2006년 6월 8일 성공회대학교 성당에서는 신영복교수의 고별강의가 있었다. 17년간의 성공회대학교 교수생활을 마감하면서 신영복은 이 날 《주역》의 64괘 가운데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는 ‘박괘’의 ‘석과불실(碩果不食)’을 주제로 삼았다. ‘석과’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지막으로 남은 과실을 뜻한다. 세상이 온통 악으로 넘치고 한 개의 선만 남아 있어 그 한 개마저 악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다. 신영복은 이런 상황에서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며, “절망이 곧 희망의 기회”라고 한국사회를 진단했다.
신영복은 이 날 “WTO·IMF·FTA로 상징되는 세계화의 물결로 모든 것을 빼앗기는 위기상황이 박괘를 연상시키지만, 마지막 과실의 씨가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듯 진정한 희망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거품이 걷히고 난 후의 우리 경제의 모습과 함께 우리 삶을 돌이켜 봐야 한다”며 “엄청난 외세에 떠밀리고 불의의 폭력에 가위눌리며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봐야 한다”고 했다.
신영복은 이날 또 박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겨울을 지나 씨앗을 뿌리고 새로운 싹과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면서, “나무는 짧고 숲은 길다. 숲은 전체로서의 완성을 뜻하며, 나무(개인)의 결함까지도 품는다는 점에서 나무의 완성”임을 일깨웠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이 짧은 문장에서 신영복은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곧 한국 현대사 전체에 대한 근원적 반성과 새로운 지향을 암시적으로 담은 것이다.
신영복은 “개인이 자기 인생을 살 때 그 개인의 삶 속에 그 시대가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우리 시대의 요구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한 바 있다. 다만 출소 후 자신이 가진 이념적 색깔과 보수계층으로부터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말과 행동을 극도로 절제해 왔다.
이제 60대 후반의 나이로 해배(解配) 2기를 맞은 신영복, 앞으로의 20년에 대해 그는 지난 60년을 되돌아보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힌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신영복에게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다.
한국의 민족문제는 과거나 현재나 언제나 좌파 혹은 진보적 민족주의자들의 몫이었고, 신영복도 그 흐름 속에 있다. 신영복이 앞으로 자신이 감옥에 있었던 70년대 이후, 즉 자본주의 본격화 이후 한국사회의 현실과 대안을 천착하면서, 나아가서 신영복 발(發) 민족분단론과 통일론을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을지 여부는 모든 지식인들의 관심사다. 분단이 가져다 준 고난을 온몸으로 안고 살았기에, 그 해법을 또한 그에게 기대하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법’을 삶의 모범으로 삼는 일을 사회적 차원에서도, 담론의 수준에서도 떠올리지 않고 있다. 또 보수와 진보는 ‘투쟁 패러다임’이라는 덫에 갇혀 있다. 그건 서구적 ‘적 만들기’ 게임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고 자기를 닦기는 가을서리처럼 매섭게 하는 것은 속세를 떠난 도사의 뜬 말만은 아니다.
나이 60이 되면 사람은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듯 우리 사회도 이제 근본구조를 성찰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신영복의 60대 후반에 견주어서 떠오르는 에피그램이다.
계간<내일을 여는 역사> 2007 봄호(제27호), 서해문집- pp. 181~200(20 pages)
분류 | 제목 | 게재일 | 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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