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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가 아닌 상식을 가르칠 뿐 민주주의 사관학교라 불러야”
김명호 교수가 말하는 ‘좌파사관학교’ 성공회대
조성관 편집위원 | 주간조선 [2311호] 2014.06.16
9년 전의 일이다. 기자는 서울 구로구의 성공회대를 두 번 찾아간 적이 있다. 서울 서남부 남단에 있는 성공회대를 1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온수역에서 택시를 타고 갔었다.
성공회대를 처음 가본 사람들은 놀란다. 담장도 없는 데다 대학 캠퍼스가 몹시 아담하기 때문이다. 중구 정동의 이화여고보다도 작다는 느낌을 준다. 성공회대에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교수가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당시 동양고전을 쉽게 풀어쓴 ‘강의’라는 책을 출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신영복 교수는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진보·좌파 그룹 내에서 상당한 존경과 권위의 대상이었다. 기자의 판단으로는, 그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신교수를 인터뷰하고 싶었다. 첫 번째 만났을 때 신 교수는 인터뷰를 정중히 사양했다. 몇 개월 뒤 다시 찾아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6월 4일 이후, 서울 변두리에 있는 성공회대학교가 새삼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성공회대 교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대한성공회의 미카엘신학교에서 출발한 성공회대가 일반인의 주목을 받은 것은 단연 신영복 교수의 존재로 인해서다. 그런 성공회대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보수진영으로부터 ‘좌파양성소’ ‘좌파사관학교’로 불리게 된다.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김명호 교수는 국내 최고의 중국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중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들을 배출한 삼련서점의 서울점을 지난 10년간 서울 대학로에서 운영해왔다. 서울삼련서점의 서적은 한때 10만권에 이르기도 했다.
김 교수가 중앙선데이에 연재 중인 ‘사진으로 보는 중국인 이야기’는 현재 ‘중국인 이야기’(한길사)라는 책으로 3권까지 출간되었다. 총 10권 계획이다. 김 교수는 국립경상대와 건국대 교수를 거쳐 2000년부터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로 있다. 지난 6월 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성공회대를 ‘좌파사관학교’로 부르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성공회대를 왜 좌파대학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성공회대 교수들 모두가 다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 양심적인 사회과학자들과, 보면 볼수록 음유시인 같은 김창남 같은 교수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다. 나는 국립대와 사립대를 두루 경험했다. 내가 보기에 성공회대가 가장 이상적인 대학이다.”
- 가장 이상적인 대학이라니 무슨 말인가. “대학에서는 똑같은 거 놓고도 다양한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공회대에는 모든 게 골고루 다 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다. 특정 학교 출신들만 몰려 있지 않다.”
- 직접 성공회대에서 가르쳐 보며 느낀 점은 뭔가. “나는 불량교수다. 학교를 잘 안 가기도 하지만 교수들의 볼썽사나운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다른 대학에서는 신임교수를 뽑아놓고 교수들끼리 싸우는 경우가 흔히 있다. 여기서는 (교수들끼리의) 보직 싸움도 없다. 자기 세계에서 권위가 있는 사람은 권위적이지 않다. 우리 교수들은 잘난체하고 권위적인 사람이 없다. 이재정 신부가 권위적인가, 신영복 교수가 권위적인가. 한홍구 교수 같은 사람은 사실만 말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누구를 만나도 똑같이 대한다.”
성공회대 교수들이 권위적이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기자는 동의한다. 학교가 무엇보다 거대한 담장으로 둘러싸이지 않았다는 사실부터가 학생과 교수 사이에 벽이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몇 명의 교수들만을 가지고 판단하기에는 섣부르지만 겸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좌파사관학교’라는 별칭은 왜 붙었다고 생각하나. “그건 보수 언론이 애꾸눈으로 세상을 본 결과 아닌가. 성공회대는 차라리 ‘민주주의 사관학교’ ‘상식적인 사람을 키우는 사관학교’라고 불러야 한다. 우리 대학 교수들은 총장 앞에서도 할 말 다한다. 총장의 권위에 눌려 할 말을 못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다. 교수가 총장 앞에서 총장의 잘못을 삿대질해도 총장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 다른 대학 교수들은 총장 앞에서 할 말을 못하고 산다는 뜻인가. “그렇다. 국립대 총장들은 대개가 권위적이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거의 꼴값 수준이었다. 특히 오너가 있는 대학의 교수들은 오너에게 잘 보이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수들은 노예적인 태도를 보인다.”
알려진 대로 성공회대가 좌편향으로 낙인찍힌 이유는 1990년대 중후반 신영복 교수를 비롯해 조희연·김동춘·조효제(사회학), 한홍구(역사학), 정해구(정치학) 교수 등 사회참여 성향이 짙은 교수들이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다. 이들을 교수로 영입한 이는 성공회대 총장을 지낸 이재정 신부였다. 이들 교수들이 학교에 적을 둔 상태에서 사회참여를 한 반면 이재정 신부는 아예 현실정치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이재정 신부는 국회의원, 통일부 장관 등을 거쳤다. 이재정 신부는 통일부 장관 시절 노골적으로 북한을 비호하고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발언을 잇달아 했다.
- 이재정 교육감이 통일부 장관할 때 한 발언들로 인해 그런 이미지가 형성된 것 아닌가. “그건 이재정 신부의 개인 생각이다. 그게 성공회대학과 무슨 상관이 있나.”
- 김명호 교수를 자유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 뭐라고 규정짓겠는가. “나는 좌파가 뭔지도 모르고 우파가 뭔지 잘 모른다. 보수와 진보가 뭐가 다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단, 성공회대가 좌파대학이었다면 내가 14년이나 이 대학에 있었겠나. 관용이 최고의 덕목이다. 싸움을 하되 승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화해하고 협력하도록 가르친다. 처음 성공회대학에 왔을 때 영문과 김명환 교수가 우리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분수를 알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가르친다는 말을 들었다.”
고 김진만 교수 연구실은 김명호 교수 연구실과 마주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중세영문학자 김진만 교수 같은 분을 누가 좌파로 생각하느냐?”고 반문한다.
성공회대를 좌파양성소냐, 민주주의 사관학교로 볼 것이냐는 관점의 차이를 반영한다. 성공회대가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하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2년 전 졸업식 때의 일이다. 일부 교수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식장에 나타났다. 그러자 이사장이 제발 앞으로는 학위복 입고 와 달라고 말했다. 이게 성공회대다.
성공회대는 교육감 두 명을 배출했다는 사실로 기분 좋아할 형편이 아니다.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선정됐다. 낮은 취업률, 장학금 비율 등이 감점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지정되면 신입생 국가장학금 지원이 중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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