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016-0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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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한겨레신문 |
흰눈 흩날린 날…1천명이 ‘더불어 함께’ 마지막길 배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이 열린 18일 오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의 영정을 앞세운 운구행렬이 지나가자 손에 들고 있던 국화꽃을 놓으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신영복 교수 영결식
신영복 교수 영결식 열린 성당
발 디딜 틈 없이 추모객 찾아와
영상속 고인이 ‘시냇물’ 선창하자
한목소리로 흐느끼며 따라 불러
“불의의 재판이 선생님 가뒀지만
선생님의 지성은 가둘 수 없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이제 고인이 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강당 화면을 가득 채웠다. 고인이 동요 ‘시냇물’을 선창하자, 영결식에 모인 추모객들은 한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강당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영결식 내내 이어졌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려는 이들로 영결식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가 떠나는 날, 하늘에선 흰 눈이 내렸다.
지난 15일 희귀 피부암으로 세상을 떠난 신 교수의 영결식이 18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성미카엘성당)에서 열렸다. 학교장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은 성당만으로는 자리가 모자라 인근 강당(피츠버그홀)에 중계화면을 띄워놓고 진행됐다. 두 곳 모두 복도까지 추모객들로 가득 찼다. 영하의 기온에 눈발까지 날리는 날씨에도 유족과 동료 교수, 제자, 일반 시민 등 1000여명(성공회대 쪽 집계)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김기석 신부(성공회대 교목실장)가 집례하는 별세 기도를 시작으로 2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고인과 인연이 각별한 이들의 추도사로 채워졌다. 고인이 20여년간 영어의 생활을 마치고 야인이 됐을 때, 그를 성공회대 교수로 초빙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성공회대 초대 총장)이 가장 먼저 조사를 낭독했다. 이 교육감은 신 교수의 저서에 수록된 유명한 글귀들을 인용하며 “불의한 재판으로 선생님의 몸은 가둘 수 있었지만, 선생님의 지성은 가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뒤이어, 신 교수의 강의를 들었던 윤미연 서울여대 교수와 고민정 <한국방송>(KBS) 아나운서가 고인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추도사를 읽어 내려갔다. 윤 교수는 “신 선생님은 제자들 이름을 일일이 다 기억해 수업시간에 불러줬을 정도”라고 전했다. 추도사가 진행되는 동안 식장에는 신 교수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화면을 채웠다. 신 교수의 생전 모습이 담긴 추모영상이 끝난 뒤, 사회를 맡았던 방송인 김제동씨는 “너무 비극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선생 생전에 강의가 끝난 것처럼 모두 함께 박수를 치자”고 제안했다. 식장에는 뜨거운 박수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유족 대표로 나선 친형 신영대씨는 “무법의 시기에 홀로 감옥에서 20여년을 잘 견뎌준 것에 대해 (신 교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고, 가수 정태춘씨가 흰 국화로 둘러싸인 신 교수의 영정사진 앞에서 ‘떠나가는 배’를 부르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무했다.
영결식이 끝나자, 신 교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이들이 국화꽃을 손에 들고 고인의 영정을 든 제자 배기표씨의 뒤를 따랐다. 고인의 주검은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 벽제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됐으며, 장지는 유족들의 의사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영결식에 참석한 시민 유순예(51)씨는 “거목이신 신 교수가 우리들이 쉴 수 있는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떠났다”며 “그의 향기는 후대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향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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