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관계가 인간과 사회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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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6-01-26
미디어 한겨레21_전진식

“관계가 인간과 사회를 바꾼다”


신영복 사유체계 분석한 유일 연구논문 저자 강수진씨 인터뷰


황소바람 따라 그가 떠났다. 쇠귀[牛耳] 신영복(1941~2016).


그는 지남철이다. 1월18일 시대의 혹한에 떨며 사람들은 그를 떠나보냈다. 박근혜 정부 아닌가. 그는 생전에 ‘더불어숲’을 무던히 강조했다. 자석에 달라붙는 철 조각들의 움직임처럼, 그 떨림과 같이 사람들이 서로 모이기를 그는 희망했다. 철분과 자석 사이 간절한 끌어당김과 같은 절실함이 없다면, ‘더불어숲’은 듣기 좋은 경구에 그칠지 모른다. 감성의 떨림에서 정지하고 만다면, 신영복은 ‘그럴듯한 말을 하신 좋은 어르신’으로 퇴화할 것이다. 그것을 견딜 수 없다면, 그를 끝내 추모하기를 바란다면, 그의 말과 글에 용해된 ‘사상’을, 핀셋으로 좁쌀을 하나씩 건져내는 수고로움일지라도, 톺아보아야 할 것이다.


“신영복 사상은 실천을 조직”


그러나 신영복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규 학위논문은 단 3편. 2편은 민체(民體)·어깨동무체·쇠귀체 등으로 일컫는 그의 서예·서화를 분석한 논문이다. 그의 사유체계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분석한 ‘본격 논문’은 지금까지 단 1편뿐이다. ‘관계, 비근대를 조직하다-신영복의 관계론과 인간적 삶의 조직’(성공회대 NGO대학원 시민사회단체학과 석사학위 논문, 2013년 2월). 그 논문을 쓴 강수진(45)씨를 1월20일 만났다.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강씨는 2009년 가을학기 성공회대 NGO대학원에 입학했다. 그가 회상하는 신영복은 이런 사람이었다. “선생님이 놀러 오라고 하셔서 연구실에 갈 때마다 정말 긴장되고는 했다. 그때도 상당히 몸이 안 좋으신 편이었다. 그런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먼저 차 대접을 해주셨다. 굳이 당신이 설거지까지 하겠다고 하셔서, (누가 설거지를 할지) 서로 늘 옥신각신하고는 했다.”


신영복을 주제로 한 논문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대학원에 들어갈 때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들어갔다. 딱히 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선생님이 계시더라. 그럼 선생님을 더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하게 됐다.


개인적 인연이 있었나.


처음 성공회대에 들어갔을 때는 선생님이 학교에 계신지도 몰랐다. 책은 (읽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분이 어디 계시는지는 몰랐다. 나중에야 성공회대에 계시다는 걸 알았다. 선생님 수업(‘교육사회학 특강’)을 처음에 들을 때는 큰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논문을 쓸 생각에 한 번 더 수강하겠다며 내가 수업 도우미를 하면서 계속 뵈었다.


논문을 쓴다는 말을 했나.


처음에는 말 못했다. 선생님한테 누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말하더라. ‘살아 계신 분을 써?’ ‘그분이 학자는 아니잖아?’ 이런 반응이 많았다. 논문 초벌이 나왔을 때에야 선생님한테 말씀드렸다.


강씨의 논문은 신영복 필생의 담론인 ‘관계론’에서 인간적인 삶을 위한 방법론을 모색하려는 의도로 출발했다. 신영복 사상의 두 축을 마르크스와 동양사상에서 짚은 그는 불안정·불평등·지속불가능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대와 구별되는 비(非)근대라는 개념을 통해 신영복의 사상을 조명했다. 논문 결론부에서 강씨는 신영복 사상의 요체를 이렇게 분석했다.


“그의 담론에서 관계는 근대적 모순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실천을 조직한다. 즉, 인간적 삶을 위한 실천적 과정을 조직한다. 인간을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보는 관계론적 시각은 관계가 인간과 사회를 변화하게 하는 출발지가 되는 것이다. 신영복의 관계론은 인간적인 삶을 조직해내는 진지를 구축한다.”



연구되지 않는 신영복


신영복의 수업은 어땠나.


수업 전반기에는 고전 중심, 후반기에는 사회적 시각으로 여러 경험을 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주로 하셨다.


논문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은.


선생님의 관계론이 주재료이다보니 논문 형식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관계론 자체가 분석이나 해석 같은 서구적인 인식의 틀을 지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관계론 자체가 어떤 차이보다는 어떤 관계인지에 주목하기 때문에 기존 그릇에 관계론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신영복의 사상적 측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형편인데.


앞으로 많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학계에서 대부분 외국 사상을 많이 받아들이는데 안타깝다. 선생님과 관련해서도 여러 시각으로 연구가 많이 됐으면 좋겠다.   


‘신영복이 학자는 아니지 않은가’라는 말을 들으면서 논문을 쓰는 것에 망설이지는 않았나.


내가 일반 정규대학을 다녔다면 신영복을 주제로 논문을 쓸 생각을 했을까 싶다. 사회에서는 고통이나 분노, 절망 이렇게 표현하는 것들이 대학에서는 이론적·중성적으로 많이 쓰이더라. 좀 충격이었다. ‘외부자의 시선’이어서 논문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외국 사상을 철학적으로 소화하고도 (표 나지 않게) 말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이론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싶었다. 더 정확한 방법이기도 하고 와닿기도 하고 우리 얘기이기도 하고.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신영복의 사상을 다룬 유일한 논문을 썼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도 학문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우리 것을 폄하하는 게 아직도 없지 않은 것 같다. 함석헌·장일순 같은 분들뿐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분도 꽤 계신다. 좋은 말씀을 기록하고 시대적으로 해석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위논문을 대중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행본으로 출간할 생각은 없었나.


선생님이 논문을 읽고 나서는 윤문을 해서 책으로 내라고 계속 말씀하셨다. 살아 계실 때 해드렸어야 하는데 아쉽다.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대중을 위한 ‘신영복 깊이 읽기’로는 2006년 발간된 <신영복 함께 읽기>(돌베개)가 있다. 이 책은 크게 신영복의 글과 인간됨으로 나뉘는데, 1부 ‘신영복을 읽는다’에는 학술적 분석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글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하는 글들이 담겼다. 책에서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는 신영복의 문명론을 불교의 연기론(인드라망)과 연결해 해석했다. 이규성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강씨와 마찬가지로 신영복 사상을 마르크스와 동양사상의 틀에서 들여다보았다. 나아가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신영복과 루쉰을 비견하기도 했다. “루쉰과 신영복. 두 형상이 영상처럼 자연스레 포개짐은 붓심의 날선 예지로 역사와 현실을 가장 아름답게 절합(節合)해내는 노동과 사랑. 부지런한 성찰과 노동의 장력이 시공을 넘어 교융(交融)하는, 절묘한 ‘화’(和)의 해후가 아닐까.”


“작은 것에서 넓은 것 봐야”


논문 내용 가운데 대중과 함께 고민하고 싶거나 강조하고 싶은 대목은.


선생님 책이, 내용에서는 좀 깊이가 있지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좋은 말씀이라고 감동받고, 돌아서면 잊혀지기도 한다. 이웃이나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만 해석된 측면도 없지 않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든 <담론>이든 선생님이 항상 바라본 시선이 있다. 사회적 시선이다. 그것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이 읽어냈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어려운 시대 어려운 세상이라고 하지만 우리 곁의 가까운 곳을 보았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다. 작은 것에서 넓은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홍세화·백기완 선생님 같은 분들의 기록도 우리 사회의 재산이다. 선생님은 또 말씀하셨다. 선생은 그 시대에 없다고. 눈에 보이는 명시지에만 매달리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게 ‘관계’ 아닌가, 암묵지를 더 살려냈으면 좋겠다.


기리는 이들에게 신영복은 지남철이다. 그가 살아생전 아꼈던 글귀가 있다. 역사학자 민영규의 책 <예루살렘 입성기>(1976)의 한 대목.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서 좋다. 만일 그 바늘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선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월간 <말> 1996년 8월호에서 재인용)



신영복  뜻  기리는  사단법인  창립  예정

제자·독자들이  일구는  ‘더불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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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식 기자


영결식 이틀 뒤인 1월20일 서울 중구 남산골공원 근처의 한 사무실. 신영복을 존경하는 제자·독자들의 모임 ‘더불어숲’( cafe.daum.net/together.forest)에 오랫동안 참여해온 안중찬씨가 부지런히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영결식 때 모인 추모엽서도 가득했다(사진). 지난달 모임 회원들이 돈을 모아 마련한 공간이다.


애초 이들은 1월23일 사단법인 창립대회를 열 참이었다. 창립대회는 당분간 보류됐다. 사단법인 더불어숲(준)의 목표는 이렇다. “‘여럿이 함께하면 길은 뒤에 생긴다’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새기며 성공회대 교직원, 인문학습원, 노동대학원, 더불어숲, 그리고 각 지역 단체와 함께 신영복 선생님의 뜻을 이어가려 한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삶과 생각에 공감하는 많은 독자들과 함께 ‘사단법인 더불어숲’을 준비하려고 한다.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동행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2006년 성공회대 교수 정년 퇴임식 때 어떤 이는 신영복이 ‘해배’(解配) 2기를 맞았다고 했다. 옛 선비가 귀양에서 풀려나듯, 1988년 광복절 특사로 세상에 나온 게 해배 1기였다면, 2006년 교수직에서 물러난 때가 2기라는 말이다. 그의 육신은 떠났지만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이들은 ‘해배 3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을 하나의 인연으로 묶는 말을 신영복은 이미 남겨두었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전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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