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017-0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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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오마이뉴스_정수현 |
신영복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세계일주 인문기행 - 첫 번째 편지] 태평양 하늘에서 카오산로드까지
오마이뉴스 17.01.12 글: 정수현 편집: 김지현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에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신영복의 세계여행)을 처음 접했습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문명과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따뜻한 글과 그림 엽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데 큰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며 그 감동으로 막연하게 세계일주에 대한 꿈도 품게 됐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는 2017년, 그 꿈을 실행에 옮깁니다. 당신이 보낸 첫 번째 엽서에 적혀있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에 무모한 용기를 얻어 여행지에서 편지를 띄워보려 합니다. 이 여행기는 당신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당신들과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 기자말
당신이 떠난 지 벌써 1년이 돼 갑니다. 안타까운 부고 소식을 접하고서야 왜 당신이 최근에 발간했던 책의 부제가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였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직접 가르침을 받거나 만나지는 못했지만, 책과 강연을 통해서 당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많은 이들이 당신에게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당신을 알게 되면서 두 번의 놀라움을 가졌습니다. 겸손한 서간문체에 담긴 인류문명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주는 가슴 깊은 울림이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뜻한 감성과 시선이 20년 20일 간의 억울하고 모진 옥살이 겪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은 다른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날벼락 같은 구속과 사형선고, 기약 없는 징역살이에서 어떻게 분노와 좌절이 아닌, 담담한 관조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부터 <담론>에 이르기까지 당신이 남긴 말과 글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에 깊게 스며드는 이유는 인간이 처한 최악의 상황을 구도자적인 삶으로 승화시킨 정신의 승리에서 비롯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태평양 하늘에서 여행과 기록에 대해 생각합니다.
"개구리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풀섶에서 두꺼비를 만났을 경우 대체로 눈앞의 두꺼비 보다 머릿속의 개구리를 먼저 보게 됩니다."
언젠가 당신이 여행에 대한 소회를 전하며 남긴 구절입니다.
태평양 하늘에서 생각해봅니다. 며칠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가 얕은 지식과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 여행지에 대한 소회를 피력하는 일이 온당한가. 그리고 당신이 보냈던 엽서의 내용을 간간히 언급하는 형태로 글을 쓰는 행위가 자칫 외람되지는 않겠는가 걱정도 됐습니다.
누군가에게 '서울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어떤 지역이든 사회든 그 문화와 역사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인식이 갖는 한계를 인정하며, 내가 갖는 주관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글을 써보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냈던 엽서에서 영감은 얻되, 이 여행기는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자취일 뿐이라고 선을 그으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무엇보다 "좁은 엽서 공간이지만 당신과 함께 생각의 뜨락을 넓히고 싶다며 언젠가 답장을 읽어 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당신의 글귀에서 큰 용기를 얻습니다.
나의 여정에는 당신이 찾았던 인류문명의 자취가 서려 있는 유적과 도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갠지스강을 찾을 때는 당신이 부탁했던 손목시계를 갖고 뱃사공 람지를 찾아보려 합니다. 마추픽추에서는 당신이 잃어버린 우리들의 다리에 대한 벌금으로 돈을 치렀다는 '굿바이 보이'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만나보고 싶습니다. 또한 나는 당신이 찾지 않았던 다른 도시와 유적도 방문하고자 합니다. 지구에 와서 못보고 간다면 억울할 만한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광 속에서 안식도 얻고 싶습니다.
경계를 넘어온 사람들의 자유와 해방 공간
나의 첫 번째 방문지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입니다. 일명 '여행자의 거리'입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전세계 배낭여행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서로 교류하며 여행에 대한 정보도 얻고 쉽게 친구가 되는 곳이라고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도 옛날 이야기이지 카오산로드의 낭만도 '한물갔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프랜차이즈 업소가 쉽게 눈에 들어오고 여행객을 상대로 한 현지 상인들의 호객행위에 주목한다면 그렇고 그런 상업적인 거리일 뿐입니다. 태국 고유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여행자들에게 특화된 분위기가 있는 곳입니다.
당신은 20년전 '더불어 숲'을 통해 21세기를 앞에 두고 있던 우리의 문명과 사람 간의 관계가 세계화의 논리 속에서 황폐해져가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21세기를 훌쩍 넘어선 오늘을 돌아보면 그 우려가 더욱 심각한 현실이 돼 있음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합니다. 이름은 그럴싸 했지만 사실 세계화 혹은 지구화라는 것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자본과 힘있는 자들에게만 기회와 이익을 가져다줬을 뿐이었습니다.
경계를 쉽게 넘기 어려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지는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지금 전세계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정치적 변화의 목소리들은 지구화가 가져온 이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카오산로드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을 보며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자유로움의 크기'를 생각합니다. 이 거리에서의 첫 느낌은 해방감입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경계를 넘어서 느끼는 자유로움입니다. 너무 많은 의미부여와 기대감을 갖지 않고 찾는다면, 비록 일시적인 위안일지라도 거대한 구조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작은 사람들의 흥겨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나이와 국적을 넘어 친구가 돼보는 즐거운 경험도 괜찮습니다. 시끌벅적한 카오산로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갑니다.
분류 | 제목 | 게재일 | 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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