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17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을 방문한 출입기자들을 맞으며 실내화를 구두로 갈아신고 있다. 청와대 제공

“국민들이 보기에는 청와대는 까마득히 높은 곳이에요. 뭐 우리 실장님들이나 수석비서관뿐만 아니라 그냥 행정요원들도 국민들이 볼 때는 정말로 높은 곳에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공직자의 겸손한 태도를 강조하면서 청와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열린 청와대’ 방침에 따라, 지난해 6월 청와대 앞길을 24시간 개방했다. 문 대통령도 탈권위·소통 행보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여전히 국민들에게 ‘높은 곳’이다.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져야 청와대와 국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대통령 공개일정’ 코너. 날짜를 클릭하면 시간, 장소, 일정명, 참석자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 대통령의 24시간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대통령의 일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보고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컸던 만큼 이를 반면교사 삼아 ‘열린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청와대는 공약 이행을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공무와 관련된 문 대통령의 비공개 일정을 매주 월요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사후 공개하고 있다. 국민들이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시간, 장소, 일정명, 참석자 등 네 가지다. 

다만 청와대 내부 보고의 경우 보고 주체를 비서실, 국가안보실, 정책실 등으로만 적어 놓고 있어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보고를 했는지 확인할 순 없다. 공무와 무관한 문 대통령 일정도 공개되지 않는다. 

청와대 직원들의 일상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청와대가 지난달 문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공개한 영상 ‘청와대의 아침 365번, 그리고 다시 처음’을 보면 새벽 5시부터 연풍문 앞에 택시를 타고 도착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 비서관은 “비용이 들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눈을 더 붙이려고 택시를 타고 출근한다”고 말했다.

새벽같이 출근한 직원들은 조간신문 등을 확인한 뒤 수석실별로 회의를 갖는다. 수석비서관과 비서관들은 수석실별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국정상황실에서 매일 오전 8시10분 현안점검회의를 갖는다. 현안점검회의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한다. 임 실장을 비롯한 핵심 참모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의겸 대변인 등은 현안점검회의 뒤인 오전 9시10분 문 대통령과 티타임 회의를 한다.

늦은 시각까지 보고서 등을 꼼꼼히 읽는 것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의 눈은 회의 때 늘 충혈돼 있다고 한다. 

‘대통령의 입’인 대변인은 대변인실, 국민소통수석실, 비서실장 주재 현안점검회의, 대통령 티타임 회의 등 매일 오전에만 4차례 회의에 참석한다. 이 때문에 김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약 1㎞ 떨어진 대경빌라(대통령 경호처 빌라)에 산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 안내문. 청와대는 한 달간 20만명 이상이 참여한 청원에 공식 답변을 하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 ‘온라인 신문고’ 국민청원 

문재인 정부 들어 국민들은 신문고를 두드리는 대신 키보드를 두드리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이 바로 그 목소리들이 모이는 곳이다. 국민이 올린 청원에 한 달간 20만명 이상이 참여하면 청와대는 공식 답변을 하고 있다.

청원 담당자인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은 “월 7~8건 정도 답변할 청원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국민청원과 별개로 민원 신청을 위한 국민신문고(www.epeople.go.kr)도 있다. 홈페이지에서 민원 신청서를 작성하고 민원을 접수할 기관으로 청와대를 선택하면 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간 접수된 민원은 총 4만8177건으로 이전 정부 1년차의 3만3179건 대비 45%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 자체가 ‘미디어’화되고 있다. 매일 오전 11시50분 페이스북 라이브로 진행되는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가 대표적이다. 이 라이브 방송에선 고민정 부대변인, 정혜승 비서관 등이 출연해 청와대 소식을 전한다. 각종 현안이 있을 경우 담당 비서관이나 수석이 나와 설명을 하기도 한다. 20만명 이상이 참여한 국민청원에 대한 청와대 답변을 공개하는 통로도 이곳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1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 창가에서 청와대 관람을 온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 트위터 캡처

■ 청와대 관람 

청와대 관람은 인터넷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관람은 매주 화~금요일, 둘째·넷째주 토요일(공휴일 제외)에 가능하다. 관람 희망일 180일 전부터 최소 20일 전까지 신청해야 하며 주말 관람의 경우 빨리 마감된다고 한다. 관람은 만남의 장소→춘추관 옆 홍보관→녹지원→옛 본관 터→본관→영빈관→칠궁(선택)→청와대 사랑채(선택) 등의 순으로 이뤄지고, 평균적으로 1시간30분 소요된다.

지난 4월 청와대 경내에 있는 일명 ‘미남석불’이 보물로 승격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석불좌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이 석불좌상은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자리 잡고 있어 관람객에게 공개되진 않는다. 

관람객은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많은 분들이 희망하시겠지만, 국정수행으로 바쁘시기 때문에 만나실 수 없음을 양해바란다”고 안내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여민관 집무실 창가에 있는 대통령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14일 집무실 창가에서 청와대 관람을 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고 인사했다.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없지만 문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은 여민관에서 근무한다. 대통령이 근무하는 곳이지만 사무실이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 답답한 느낌을 준다. 낡은 여자 휴게실은 김정숙 여사의 건의로 두 달 전쯤 새단장이 됐다고 한다. 국정상황실의 경우 수십명의 직원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어 콜센터를 연상케 한다. 한 청와대 직원은 “여름철에는 모기 잡으면서 일한다”고 전했다. 

여민1관 3층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은 168.59㎡(51평)인 본관 집무실의 절반 정도인 87.27㎡(26.4평)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뒤 참모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본관 대신 집무실로 출근한다. 집무실에는 고용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각 비서관실에 선물한, 고 신영복 선생의 ‘춘풍추상’ 글귀 액자. 청와대사진기자단

■ 청와대 내부 미술품 

1948년 정부 수립 후 70년간 청와대로 들어온 미술품은 총 606점이다.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이들 작품 중 극히 일부를 스치듯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청와대가 소장한 작품들은 국민들의 것”이라는 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청와대 소장품 특별전 ‘함께, 보다’가 청와대 사랑채에서 다음달 29일까지 열린다. 한국화 4점, 서양화 8점, 조각 4점 등 총 16점이 실물로 전시되며, 이동이 어려운 벽화 4점과 소장품 10여점은 영상으로 공개된다. 

일반에 가장 많이 노출된 작품은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이다. 가로 7m, 세로 2.8m에 이르는 이 그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의뢰로 전 화백이 완성한 작품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후 청와대 밖으로 옮겨졌던 이 작품은 문 대통령 지시로 지난해 9월 청와대로 복귀했다.

지난 2월부터 각 비서관실엔 고 신영복 선생이 쓴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글귀가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춘풍추상은 채근담(菜根譚)에 있는 문구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액자를 선물하며 “우리 정부가 2년차에 접어들면서 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는데, 초심을 잃지 말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당초 춘풍추상은 고 신영복 선생이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기억을 살려 그 글을 찾아보라고 부속실에 지시했다. 부속실은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숲’ 사단법인의 양해를 구해 이 글의 사본을 전달받았고 총무비서관실을 통해 청와대 각 비서관실에 전달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관저에는 노 전 대통령 묘역 비석 받침판에 적힌 고 신영복 선생의 글귀 액자가 걸려 있기도 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