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2005-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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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한겨레신문 박주희기자 |
| 기사입력 2005-07-12 20:03 | 최종수정 2005-07-12 20:03
1968년 경제학 강의
모두 환갑지나 “죄송”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하고도 20일 동안을 감옥에서 보낸 스승과 육군사관학교 출신 제자들이 38년 만에 만났다. 신영복(64) 성공회대 교수와 그가 육사 교관시절 가르쳤던 육사 25기 제자들이다. 이들은 7일 저녁 서울 강남구 도곡동 군인공제회관에서 서로 부둥켜안았다.
이날 신 교수와 만난 이들은 1968년 당시 육사에서 신 교수의 경제학원론 강의를 들었던 제자들이다. 예비역 장군 3명, 공무원 출신 5명, 교수 출신 1명 등 9명이 참석했다. 20대 젊은 교수와 육사 3학년 생도였던 제자들이 환갑이 지나 추억을 찬거리 삼아 2시간30분 동안 저녁식사를 했다.
“50분 강의시간 가운데 15분 정도는 늘 우리 사회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얘기를 들려주셨어요. 서울역 지게꾼 얘기, 가난한 꼬마 6명과 한 달에 한 차례씩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나 우정을 나누던 모임인 청구회 사연, 달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산다는 달동네 이웃들 얘기 등이 젊은 생도의 가슴에 그대로 와 닿았습니다.”
김승광(61) 군인공제회 이사장이 기억을 더듬어 신 교수의 강의시간 얘기를 꺼내자 동기들이 저마다 품고 있던 신 교수와의 추억 보따리를 풀어놨다. 신교수는 “청구회 아이들과 함께 당시 은평구 진관내동에 있는 서오릉으로 소풍갔던 추억을 되살려, 언제 서오릉으로 다함께 소풍이라도 갔으면 좋겠다”는 말로 반가움을 대신했다.
이날 만남은 김 이사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육사 25기 동기생들의 인터넷 카페에 ‘신 교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첫머리에 등장하는 동기들이 신교수를 찾아뵈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문춘식(61·전 3사관학교 교수)씨는 “(신 교수의) 조금도 빛바래지 않은 맑은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며 “시대의 아픔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온 제자로서 고초를 겪은 스승에게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문씨는 말로 건네지 못했던 “죄송하다”는 얘기를 며칠 뒤 전자우편으로 신 교수에게 전했다.
신 교수는 제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글귀 10편을 붓글씨로 써와 나눠줬다. 한 제자가 받아 든 작품에는 ‘더불어 한길’이라는 큰 글씨 아래 작은 글씨로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고 쓰여 있다.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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