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사색][소개]감옥으로부터의 사색 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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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3-05-15
미디어 오마이뉴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門 편


오마이뉴스 2003.5.15 민은실 기자 (hst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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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2003 민은실


"문의 이야기"

전주교도소 2사 25 방문.

나는 문이다. 나에겐 막중한 임무가 있다. 그것은 퀘퀘하고 암울한 냄새가 섞인 이 공간을 폐쇄하고, 그 안에 갇힌 재소자들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재소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어둠이 꽉 차있는 방이 아니라 어디로도 갈 수 없게끔 막고 있는 문, 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들과는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우울하다. "문"이란 닫혀야 할 때 닫혀야 하고, 열려야 할 때 열려야 하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부와 외부를 연결시켜 주는 통로로서의 "문"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한쪽 날개를 잃은 새처럼 닫혀 있어야만 하는 절름발이식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 입소한 재소자들은 나를 있는 힘껏 차기도 하며, 매달려 한껏 울기도 한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익숙해진 재소자들은 그저 벽 위에 걸린 액자를 보듯 나를 바라볼 뿐 "제발 열어 달라" 고 애원하지 않는다. 출소 할 때야 비로소 나를 어루만져 줄 뿐, 어느 누구도 "문" 이라는 나의 존재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은 없다. 적어도 교도소라는 공간에서는.


"문이 바라본 신영복"


매일 매일 신선할 것 없는 나에게 유일한 취미는 "사람들 바라보기" 이다. 예전에 나의 방에는 1986년부터 2년 6개월 남짓 함께 지낸 "신영복"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 바라보기를 좋아했었다. 그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었다. 나는 사색을 통한 자기 수양과 지식에 대한 사유욕, 곳곳에서 배어 나오는 그의 고결한 인품이 '감옥'이라는 곳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는 고립된 공간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던 것 같다. 그것은 책을 읽으면서 지식의 기반을 다지고, 사색을 통해서 자기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을 말한다. 간간이 가족들이 보내주는 책을 보물 다루듯 읽어 내려가는 그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면서도 순진해 보였다. 그는 역사서, 철학서, 인문서 등을 탐독하여 자기 철학을 정립해 나갈 뿐 아니라 아버지의 서간을 정서하는 작업까지 했다. 그에게 감옥은 도서관이요, 연구실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늘 수심이 가득했다. 서간을 통해서만 만나 뵐 수 있는 부모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그리움과 둘째 아들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모님께 편지 쓰는 것을 거르지 않았다. 새해가 되면 화선지에 그린 동양화와 함께 서간을 보내드렸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감옥에서 그를 지탱 시켜준 것은 그리워 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과 사상에 대한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의 동지로서의 '가족'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를 바라보는 것을 유독 좋아했던 이유는, 메마르고 삭막한 내 마음에 부끄러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철덩어리라 보기에도 갑갑하다. 뿐만 아니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 곳 생활에서 점점 시든 나무처럼 감정이 시들어져 가고 우울해져 간다. 하지만 신영복이라는 사람을 보면 엄정한 자기 성찰과 함께 인간에 대한 따뜻한 눈길이 느껴져서 삭막해진 내 마음에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킨다.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재소자들의 다리를 아쉬워하며, 자기의 존재 자체가 증오로 이어질 수 있는 여름 징역에 대해 씁쓸해 한다. 행동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고, 내일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을 돌이켜 보게 하는 휴머니스트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문의 소망"


1988년 8월. "나는 걷고 싶다"고 말하던 그가 나를 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갔다. 긴 시간 몸을 담고 있던 감옥 생활을 잊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닫혀진 공간에서의 성장은 그의 평생 재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엄정한 자기 성찰과 인간의 본질적인 마음과 생각을 들여다보고자 했던 그의 휴머니즘이 변함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 날 "닫혀진 문"이 아닌 "열려진 문" 이었다. 오랜만에 행복함을 느꼈다. 내가 바라보기 좋아했던 '신영복' 이라는 사람이 지금, 나의 공간에는 없지만 '사회'라는 열려진 공간에서 더욱더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슴과 생각이 있는 지식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민은실 기자 (hst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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