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여, 스스로 ‘변방’에 서라” - 여성신문 1191호 201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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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2-06-22
미디어 여성신문
“젊은이여, 스스로 ‘변방’에 서라”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우리 시대 대표 인문학자, 기행문 ‘변방을 찾아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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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감옥에서의 20년20일, 실사구시적 진보학자, 만남과 더불어 숲 그리고 처음처럼. 우리 시대 대표적인 사회철학자이자 사회과학자, 경제학자, 한학자, 서예가 그리고 문인.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인문학자로서의 깊이와 따뜻함으로 많은 이들을 매료시켜온 신영복(71·사진) 성공회대 석좌교수를 읽을 수 있는 몇 가지 키워드다. 자극적이지는 않으나 온화하게 핵심을 파고드는 그의 화두는 전혀 대중적인 인물이 아닌 그를 ‘신영복빠’를 자처하는 연예인 김제동을 비롯, 2030 세대의 열렬한 존경을 받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대중, 특히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는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자신의 사유의 정점을 찍을 화두로 ‘변방’을 꺼내든 그를 15일 그의 신간 ‘변방을 찾아서’(돌베개) 북 콘서트가 열리기 직전 대기실에서 마주했다. “중심에서도 변방, 변방에서도 중심이 있을 수 있다”는 상대적 유연성을 논하는 그와 얘기를 나누며 사회적 약자로 타의 반 자의 반 간주되는 ‘비주류’에 대한 다시 읽기, 그리고 무한한 잠재가능성에 공감했다. 그의 서예 작품을 서체로 사용한 소주 ‘처음처럼’과 같이 그는 의외로 대중 가까이에 있었다. 대전교도소의 한 감방에서 이 ‘처음처럼’을 쓰면서 그는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그리고 감옥 밖 수많은 보통 사람들처럼 늘 새날의 시작을 꿈꾸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청춘을 바친 감옥시대를 마무리하고 삶으로의 행복한 회귀를 도운 비결이 아닐까.

 

“주류에서 떨어진 변방, 저항과 창조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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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교수가 가장 아끼는 글씨 중 하나인 서울시장실의 ‘서울’ 작품. 경복궁과 청와대로 상징되는 북악의 정치권력과 민초들의 애환이 흘러드는 700리 한강수가 소통하는 희망을 담았다.
‘변방을 찾아서’는 그의 글씨가 담긴 현판, 추모비 등을 찾아 나선 일종의 기행문 형식을 띠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글씨들은 땅끝 마을 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 벽초 홍명희 문학비, 전북대 이세종 열사 추모비,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석 등 비주류로 간주되거나 비주류를 자처한 이들과 관련이 있는 변방에 있었다. 그래서 자연히 책 제목이 ‘변방을 찾아서’로 정해졌지만, 책을 계기로 그는 ‘변방’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는 사유의 여정도 함께 했다.

 

오리엔트의 변방이었던 그리스와 로마, 그리스와 로마의 변방이었던 합스부르크와 비잔틴, 근대사를 열었던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문명은 끊임없이 그 중심지가 변방으로 이동해온 역사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왜 이 변방으로 이동하는지, 이 변방이 왜 다음 문명의 중심지가 되는지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갇혀 있는 틀을 깰 수 있게 해주는 변방의식을 새 영토를 찾아가는 ‘탈주’(脫走)에 비유한다. 이를 통한 그의 결론은,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마지막 장에 나오는 “창조야말로 저항, 저항이야말로 창조”를 인용한 “변방은 저항과 창조의 공간”이다.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나 생각이 주류 담론과는 거리가 있지요. 인간관계나 활동도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 최고의 변방이 감옥 아닙니까(그는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숙명여대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재직하다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20년20일 후인 1988년 8·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우리 사회는 중심부가 아주 견고해 각자 자기 영토를 지키려는 완고한 경향이 큽니다. 아주 보수적이고, 지배 연장선상에서 권력구조를 계속 재생산해왔죠. 1623년 폭군 광해군을 몰아낸 신하들의 쿠데타인 인조반정 이후 크게 보면 권력 상층부의 변화가 없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정부 노무현 정권이 있었지만 행정부만 잠깐 장악하고 통치 권력은 완전히 인계를 받지 못한 채 계속 군부독재와 보수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젊은이들이 변방에서 창조적 역할을 담당해주길 바랍니다. 변방은 현실적 이해를 뛰어넘어 보다 먼 미래, 보다 많은 사람을 포용해내는 넉넉한 미래라 생각하니까요.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때보다 훨씬 자유롭고 옷차림도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별반 다른 게 없지 않습니까(웃음). 잘나가는 대기업에 입사해도 기껏 8년 정도만 근무하고 그만둔 채 노마드(nomad·유목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젊은이들이 남성 중심 사회가 지배하는 ‘노인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길 바랍니다. ‘노인권력’이란 특정 연령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웃음) 오래된 보수권력을 나름 표현한 것입니다. 보수권력은 보수 구조를 유지하려고만 하기에 변화와 개혁이 어렵지 않습니까. 중심부 속에 들어가면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으려 하니까요. 이제, 근대 패러다임의 질곡이 서서히 와해될 것이고 이 빈 자리에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전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의 “길을 가는 자 흥하고, 성을 쌓는 자 망하리라”란 말을 인용해 재차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멈추지도 않는 ‘탈주자’ 정신을 강조했다. 성녀 마더 테레사의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노인권력 교체 없이 변혁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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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에 태어난 것을 한(恨)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하며 비극적 삶을 마친 허난설헌을 신영복 교수가 형상화했다.
언젠가 한 인문학 강연에서 그는 ‘공부’의 한자 ‘工夫’를 들어 “공부의 의미는 사람이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고 “사람이 공부한다는 것은 바로 연장을 들고 살아가는 것, 실천의 경험을 이론화해서 쌓아가는 것, 그게 바로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이라는 것을 역설했다. 말 끝에 “사람이 평생에 걸쳐 하는 여행 중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공부의 첫 번째 과정은 머릿속에 주입된 주류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깨고 다른 사람들과 가슴으로 공감하며 이를 삶에서의 실천적 노력으로 가져가는 멀고 먼 여정이라는 것. 지금의 부조리한 교육 시스템에서 ‘변방’에 스스로 서서 변혁의 미래란 꿈을 실현할 주역들을 재생산해낼 수 있을까.

 

“교육문제 자체만으론 해결이 안 됩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총체적인 난관입니다. 넓게 보면 대혁명을 겪으며 엘리트 재생산 구조가 바뀐 프랑스와 같은 역사적 기회가 우리에겐 없었다는 거죠. 교육 개혁의 문제는, 공교육 내실화를 넘어 그 사회의 결정권을 가지는 엘리트의 재생산 시스템에서 봐야 합니다. 혁명을 거치지 않은 사회는 교육문제, 경제 양극화 등 두고두고 치러야 할 비용이 엄청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교육문제가 좀 더 철학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고되길 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좁혀보자면, 학교는 현실로부터 조금 독립돼 있어야 합니다. 교육을 흔히 ‘백년대계’라 하듯이 100년 후를 내다볼 줄 아는 그런 곳이 대학이 돼야 합니다. 학생들 스스로도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삶을 살아야 하고요. 이들이 ‘변방’에서 새로운 것을 만듦으로써 현실을 고쳐나가고, 후에 중심부로 들어가더라도 변방 관점을 견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변방이 진정한 ‘힘’이 되려면 콤플렉스, 즉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합니다. 중심부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지 않는 한 변방은 오히려 중심부보다 더욱 완고하고 교조적인 틀에 갇힐 수 있으니까요. 벽화로 유명한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피카소의 아류가 아니라 피카소도 못 해낸) 벽으로부터 그림을 해방시킨 위대한 거장이라는 멕시코인들의 자부심 같은 것이 필요하죠. 어쨌든 자유의지와 상상력이 앞으로의 세계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멘토 열풍이 한창인 요즘, 그는 오히려 ‘멘토’란 말에 묘한 거부감을 느낀다. 앞서 간 삶의 연장선상에서 필요한 측면도 있고,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느냐는 이해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멘토는 계몽주의 틀에서 나온 낡은 패러다임이라는 것.

“내가 59학번인데, 이런 내가 08학번들의 20년 후 삶에 대해 멘토링 할 수 있겠어요? 멘토는 크게 보면 과거 경험으로 미래의 자유로운 경험을 제액(提掖·도와서 인도)하는 경향이 있죠. 부딪치는 모든 것들로부터 배우고 사랑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정보는 다운로드 받으면 되고 지식은 수련 과정을 통해 닦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이는 철저히 고독해지는 과정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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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방을 찾아서’ 책 초반부에 등장하는 강원도 강릉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에 걸린 신영복 교수의 현판. 그는 서얼(서자와 그 자손) 차별이란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지역 차별, 양극화, 비정규직, 다문화가정 등 여전한 현재의 문제를 비춰볼 때 이들 남매의 시대정신은 “우리 시대에도 계속 호출해야 하는 코드”라고 말한다.
“때론 좌에, 때론 우에 치우치며” 공존 모색해야

 

그에게 누구나 가질 법한 궁금증, 그러나 꺼내 물어보기엔 좀 불편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감옥에서의 20년20일간의 상처에 대한 자기 치유에 대해 그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는 즉답을 했다. 문득 지난해 말 이화여대에서 열린 특별 공개 대담에서 20여 년의 인고 속에서 그가 자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한 가지가 ‘햇빛’ 때문이었다는 시적인 고백이 떠올랐다. 북서향 독방에 들어오는 ‘햇빛 시간’은 하루 두 시간 남짓, 그 귀한 햇빛의 크기가 극대화되면 신문지를 펼친 정도였는데, “햇빛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을 때 정말 행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일의 햇빛을 기다리고 싶어 죽지 않았고, 그러면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결코 손해는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보통 사람들도 하루 동안 수많은 생각을 하는데, 감옥에선 얼마나 사색에 젖겠습니까. 초기엔 누구나 자신을 비극의 정점에 올려놓곤 하죠.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문제에 매몰되기보다는 같이 있는 사람들의 문제가 더 절절히 다가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 중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처넣어졌던 그때, 내가 그중 한 사람일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연대의 의미는 바로 이 감옥에서의 오랜 세월을 거쳐 갈무리된 것 아닐까. 한 시민운동가는 2000년대 초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에 초청된 그가 “자기 운동영역 중심의 사고는 편협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연대는 물처럼 자기보다 약한 쪽과 해야 한다. 강한 쪽과의 연대는 연대가 아니라 추종”이라고 일침을 놓은 일화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소신인즉, 보다 진보적인 단체와 덜 진보적인 단체가 연대할 경우 양보할 것이 없는 덜 진보적인 단체에 보다 진보적인 단체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간혹 그에게 붙는 ‘좌파 지식인’ 혹은 ‘경계인’이란 규정을 아주 거북살스러워 한다. 기본적으로 좌와 우를 나누는 전제를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좌’라는 것은 조금 불편하지만 뭔가 현 단계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가치 지향을 하자는 거고. ‘우’라는 것은 현재의 모든 생명을 따뜻하게 지키자는 것”으로 서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론은 왼쪽, 실천은 오른쪽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양 담론에서 때 ‘시(時)’와 중간 ‘중(中)’이란 것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좌에 치우친 것이 중이고, 어떤 때는 우에 치우친 것이 중으로, 전체의 균형점을 부단하고 다이내믹하게 고민하는 거죠. 길을 가다 계속 우회전하면 제자리에서 맴돌고, 계속 좌회전 하면 움직이지 못하니 좌우 번갈아 가야 하는 이치와도 같죠.”

그는 인터뷰 말미에 고 박완서 작가와 함께 청소년권장도서선정위원회 회의에 초대됐으면서도 두 사람 모두 권장 도서 한 권도 추천하지 못한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두 사람 모두 ‘권장 도서’란 기준 자체에 회의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읽는 것은 상상력의 개발”이라며 동시에 “텍스트가 고정되지 않고 독자에 의해 부단히 재구성돼 필자는 언젠가 죽지만 독자는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영원성에 경외심을 표했다. “차이와 다양성을 승인하는 것을 넘어 차이와 다양성에서 자신이 변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하는 것, 그게 진정한 공부”라며 이 자기 변화는 궁극적으로 인간관계로서 결실을 맺어야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튼튼하게 서로 연대될 때 변화가 완성되는 것이란 그의 “더불어 숲” 희망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그의 책들, 특히 변방, 즉 비주류에 대한 애정과 희망이 이 파괴적인 갈등과 혼란, 좌절 속에서 새롭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여성신문 1191호 [특집/기획] (201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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