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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9 09:48

숲 - 무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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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15            -무덤들

이제 막 장례를 치른 무덤에서
묘비명이 반쯤 흙에 묻힌 무덤까지
잔디가 예쁘게 자란 무덤에서
참나무가 불쑥 솓구쳐 오른 무덤까지
숲의 입구에서 날망에 이르는 동안
나는 한 사람의 생애를 만나고
한 가문의 영광과 쇠락을 만나고
한 나라의 건설과 멸망을 더듬어보게 된다
생각은 제멋대로 자라 허무허무하다가
나약한 숙명론에 이르곤 하지만
시간의 거울처럼 나의 먼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나의 발길을 붙잡고 한참을 놔주지 않는 것은
이런 경우이다.
멸망하여 사라지는 것들의 모습과
묵묘를 겹쳐 생각하며
잡초가 무성하여 이제는
잊혀지고 버려진 줄로만 알았던 무덤에
어느날 문득 놓여진 소주병과 술잔 말이다
여리디 여린 조팝꽃 세가지를 꺾어다
잡풀 사이에 고요히 내려다 놓은 것
무덤인지도 확실치 않은 저 흙더미를 향하여
마지막 남은 축복을 내리 쏟는 저
반쯤 남겨진 술병과 조팝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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