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서’는 권력의 산, ‘울’은 민초의 물처럼 더불어 가라는 뜻
1994년은 조선조 태조가 수도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지 600년 되는 해였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서울 정도(定都) 600주년을 기념하는 서예전이 기획되었고 나는 주최 측으로부터 출품 요청을 받았다. 서울을 주제로 한 작품을 출품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서예가가 아니고, 저명인사도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사양했다. 그랬음에도 나는 출품과 관계없이 나 혼자서 서울을 주제로 한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당시 서예전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이동국 차장의 청탁이 간곡하기도 했다.
생각하면 서울은 참으로 아름다운 풍수지리를 갖추고 있고 그 위에 600년 역사가 켜켜이 누적된 땅이다. 서울의 600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더욱 감개가 깊다. 다시 한번 땅과 역사를 돌이켜보게 된다. 북한산에 오르면 서울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너무 많은 건물들이 들어차서 산수의 아름다움보다는 땅이 꺼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지만 북악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낙산과 인왕산을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로 거느리고 있는 지세는 단연 명당의 전범(典範)이다. 그 한가운데를 청계천이 명당수(明堂水)로 흐르고, 명당수 건너 안산(案山)으로 남산을 놓고, 그 너머 객수인 한강이 명당수와는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멀리 남천에는 객산인 관악산이 반공(半空)을 가르고 있다.
신영복 교수가 1994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서예전에 출품한 작품. ‘서울’이라는 글자를 산과 강으로 형상화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신 교수가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박원순 시장,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오른쪽)와 환담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청의 이러한 위상에 흔쾌하게 공감했다. 뿐만 아니라 변방이 중심으로 끊임없이 흘러드는 것이 역사의 발전이라는 자신의 역사관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이번 시장선거만 하더라도 변방인 시민운동이 중심으로 진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글의 취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요. 중심은 쇠퇴를 향해서 가게 되고 변방은 늘 중심으로 되는 것이 역사의 큰 법칙이잖아요. 제가 서울시장이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외형적으로는 중심으로 온 것이지만 그동안 변방에서 일했던 경험들을 중심에 적용하고 그럼으로써 퇴행된 것을 건강하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지요. 변방과 중심의 순환이 있어야 합니다. 변방정신을 여기에 접목시켜야 서울이 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박 시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도의 관계론’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 획, 한 글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획과 획, 글자와 글자가 서로 돕고 의지함으로써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서도의 철학이라는 논지였다. 박 시장은 서도의 이야기에 이어서 사람의 능력도 서도와 같아서 장단점이 서로 보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능력평가나 채용방식에 있어서도 생각해야 할 점이 많고, 특히 복지정책의 경우에도 노인복지와 보육시설을 서로 조화시켜서 노인과 어린이가 함께 어울리면서 만들어내는 복지효과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짧은 접견시간에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결론처럼 이야기했다.
“제가 북악에 더 가까이 왔잖아요. 북악과 한수를 잘 연결할 책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가 잃고 있는 것이 바로 조화와 소통이 아닐까. 산수(山水)는 대우(大友)라고 한다. 산과 물은 오래된 친구라는 뜻이다. 물 없이 어떻게 산이 수목을 키울 수 있으며 산 없이 어찌 물이 흐를 수 있으랴. 북악과 한강이 서로 환포(環抱)하듯이 서로가 서로를 감싸고 어루만져야 진정한 벗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북악이 권력의 상징이라면 멀리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한강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소통과 화해의 상징이다. 나는 서울시청이 북악이기보다는 한강수이기를 바란다. 민초들의 애환과 함께 유정하게 흘러가는 칠백리 도도한 강물이기를 바란다. 우리 시대가 잃고 있는 공감과 소통의 다정한 공간이기를 바란다.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 (1) 해남 송지초등 서정분교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 (2) 강릉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 (3) 박달재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 (4) 홍명희 문학비·생가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 (5) 오대산 상원사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 (6) 전주 이세종 열사 추모비·김개남 장군 추모비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 (7) 서울특별시 시장실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 (8) 봉하마을
변방을 찾아서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