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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3.05.12 15:27

수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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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 애가 30대 아줌마인 줄 알았다.
퉁퉁한 몸집에, 머리 모양이나 표정이 아줌마 같았고 또 첫인상이 주는 느낌마저
스물두 살 소녀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깎듯이 존대를 했다. 수영이는 우리 미니문화센터 컴퓨터실에 와서 인터넷에 접속해서 종일 뮤직 비디오를 보고는 해거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하는 아이다.

며칠 눈여겨보니 수영이는 정상아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했다.
그러나 말을 시켜보면 자기 표현이 부족해서 그렇지 묻는 말에는
잘 대답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오전에는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수영이에게 쓰기를 가르치기로 했다.
수영이가 좋아하는 뮤직 비디오를 본 뒤 줄거리를 쓰고  느낌도 쓰라고 했다.
쓰기를 반복하면 자기 생각을 조리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첫날은 읽는 사람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쓴 글을 내놓았다.
다음날부터는 부족한 부분은 내가 질문해서 바로 쓰도록 했더니
금방 알아듣고 옮겨 적었다.
내가 수영이에게, 공부 열심히하면 7월에 면에서 뽑는 '공공 근로' 자리에 넣어서
한 달에 50만 원 벌게 해주겠다고 했더니 요즘은 정말 열심히 쓰고 일을 배운다.

오늘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가족이 몇인지, 왜 혼자 다니는지, 학교는 어디까지 졸업했는지 등을 물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와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부모로 두고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여동생이 있는 아이다. 가족에 대해서 물으니 첫 마디가,

" 내 동생은 공부 잘하고 똑똑해요."였다. 깜짝 놀란 나는,
" 너는 왜 안 똑똑해? 내가 보니 똑똑한데." 했더니 매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빨리 7월이 되어서 월급받고 일을 하고 싶다고 부푼 가슴을 활짝 열어보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세히 보니 수영이의 눈 아래가 퍼렇다.
심장이 나쁜가 싶어서 물었더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또 덧붙이는 말이
자기는 넘어지면 큰일난다고 했다. 넘어지면 몸이 굳어져서 죽는다며 매우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참 심상찮은 말이었다.

아무래도 어딘가 심하게 놀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서 계속 질문을 했다.
그러나 머뭇거리기만 할 뿐 입을 다물고 있다가 짧게 대답했다.

"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떤 아저씨가 저를 끌고 갔어요."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 그래서 도망왔니?"
" 예, 그런데 했어요."
  조금은 이상한 표현이었지만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을 당했다는 뜻인지
누가 모르겠는가.

마주 보고 앉은 수영이는 얼굴은 없고 멍한 동공만 두 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다가가서 아이의 얼굴을 안아 주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훌륭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면서 생각나는대로 사람들의 이름을 더듬거렸다.

사고가 난 지 6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정신과에서 약을 받아먹는 아이다.
내가 수영이에게 한 약속이 지켜지려면 처음 생각한 것보다는 복잡할 것 같다.
이런 어려운 일을 내가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나는 수영이에게 작은 도움을 주려 했다. 그러나 자칫 잘 지내는 아이에게 상처만
남기게 될까 겁이 난다.
그러나 진정 걱정되는 일은 수영이가 지난날에 받은 충격에서 너무 오래
벗어나지 못한 채 방황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수영이는 지금도 내 곁에서 자기가 쓴 문장을 열심히 고치고 있다.
5월은 푸른데 신록의 아름다움을 수영이는 얼마만큼 느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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