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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3.05.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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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면 서울에서 살 때보다 마음이 변한다.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진다. 자연으로부터 느끼면서 변하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서도 배운다. 근면과 절약이 몸에 밴 사람들을 통해서는 노동과 돈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바뀐다.

시골 사람들은 언제나 일한다. 농번기나 농한기가 따로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농한기라고 하던 겨울에도 요즘은 '하우스 재배'를 하고 애써 지은 농산물을 직접 내다 팔기까지 해서 쉴 시간을 가지기는 힘들 것이다. 가을에 벼를 수확하면 대량으로 내지만 봄, 여름에 나오는 푸성귀는 읍내 시장에서 직접 팔아야 이익이 더 많다고 무거운 보퉁이를 이고 다닌다. 푸성귀보퉁이를 이고 마을을 나서는 아주머니들을 보노라면 단지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긴 세월 부지런히 살아온 습관 때문인 것처럼 생각된다.

나도 이제는 따라서 일한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직장이 있으나 마을 사람들이 하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가끔 꽃농장에 가서 일손을 도와준다. 농원에서 꺾은 꽃을 도매시장에 내 가기 위해서 단으로 묶는 일인데 그늘에서 하는 날은 어설프지만 가서 거들면 아주 좋아한다.

나는 집에서도 꽃을 자주 만진다. 좁은 마당에 온갖 꽃을 다 심었더니 오히려 어수선하다. 그래도 예쁘다고 자꾸 심는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꽃이란 내다 팔기 위해서 심는 것이지 나처럼 보고 즐기려고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사람들 속에 더불어 살다보니 나도 이제 심은 꽃을 엎어버리고 고추나 들깨를 심어 내다 팔아야 옳은 게 아닌가 하는 갈등이 생긴다.  

지난 토요일에는 꽃밭에 우거진 부추를 뽑았다. 부추를 뽑은 빈자리에 또 꽃을 심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뽑혀나가는 부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뽑는 일은 그만두고 베어내기만 했다. 부추는 뿌리를 땅에 붙이고 있을  때는 조금으로 보이던 것이 베어내니 양이 꽤 많았다. 두 식구가 먹기에는 너무 많아 보여 나도 읍내시장에 내다 팔고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음의 절반은 장난기가 섞인 채로 부추를 큰 보자기에 쌌다. 그러나 시골에서 하는 일에 장난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읍내시장에 나가려면 2km가 넘는 길을 걸어서 가야한다. 매일 한 시간 간격으로 들어오는 버스가 있지만 출, 퇴근시간에나 제대로 올 뿐 낮에는 운전기사 기분에 따라 오다가말다가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시장 언저리에 앉아 보퉁이를 푸는 사람은 시간 낭비만 할 것이다. 푸성귀는 주부들이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오는 시간에 주로 팔리니 아침 버스를 타서는 안된다.

정오가 지나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나 둘 보퉁이를 이고 마을을 빠져나갔다. 나도 작은 부추보퉁이를 들고 함께 걸었다. 60대 후반 아주머니가 나보다 큰짐을 이고 걸어도 앞서서 간다. 무거운 짐을 이고 갈 때는 말없이 걸어야 힘을 절약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산행훈련 때에나 가서 배우는 사실을 이곳 사람들은 오랜 경험으로 벌써 체득해서 별 말 않고 묵묵히 걷는다.

화창하다고 하기엔 너무 따가운 5월 햇볕 아래서 30분 이상 땀을 흘리니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 읍내 시장에 다다랐다. 아주머니들은 이고 온 채소를 천 원 단위로 작은 무더기를 만들어 길가에 펼친 신문지 위에 놓고 팔았다. 나도 따라 했다. 서툴긴 했지만  다행히 어두워지기 전에 부추를 다 팔았다. 다 팔았다고 해야 내 손에 쥔 돈은 5천 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돈으로 고등어자반 한 손을 사고 2천 원이나 또 거슬러 받았다.

어느 시인이, 아버지의 제삿날에 비싼 조기는 꿈도 못 꿀 일이고 고등어자반이나마 제사상에 올리려 했지만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가난을 한탄하며 읊조린 그 자반이다. 5천 원은 시인의 눈물을 닦아주고도 남는 돈이었다. 또 하나는 내가 서울에서 살 때, 친구를 만날 때면 점심으로는 부담 없이 설렁탕이나 먹자고 자주 말했다. 5천 원, 내가 부담 없다고 여겼던 설렁탕 한 그릇 값을 시골에서는 왕복 한 시간 넘어 걷고 길거리에 앉아 부추를 팔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나는 부추가 자랄 마당이 있었고 씨 뿌리고 키우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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