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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 가
                                              도종환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생각 속으로 미루어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
  내일도 우리는 여전히 바쁠 것이다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


며칠 전 “한 밤의 명상 음악”이라는 심야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이 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냥 여러분들이나 나나 오늘 하루를 마감하고 돌아오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어떨까 엿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마 도종환 선생의 시가 말하듯 뭔가 좋은 일을 위해 살고자 한다면서 정작 우리들 스스로가 그것들을 위해 매진할 수 있게하는 어떤 잠재의 가능성들을 소진시키는 게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던 겁니다.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험악한 일들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간에 유대가 끊기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사회로부터 가장 철저하게 뿌리뽑힌 개인이 경제적 압박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가 사회로부터 교육받은 경험에 기반해서 그보다 더 철저하게 사회를 배신한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마땅히 “사람이면 설마”하는 틀을 넘어서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우리 사회의 경로가 무엇을 향해 달려왔던가를 염두해 본다면 놀랄 일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유대의 끈이 상실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각 개인들은 주변에 대해 누구에 대해 신뢰할 이유도, 책임 질 이유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일인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같은 노동자들끼리도 제 밥그릇을 키우기위해 주먹질을 하고, 길거리 좌판을 나온 행상들은 서로 좋은 목을 차지하기 위해 못사는 사람들끼리 멱살잡이를 하며, 동내 양아치들은 없는 사람들을 뜯어먹는 기가막힌 일들이 일상화되는 겁니다. 맑스가 말한 계급간의 투쟁을 통한 민주주의의 확산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계급내부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아귀다툼의 소란만 가득할 뿐입니다.

정말, 사회의 진보와 인간을 더욱 중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겠노라 달려온 우리들 자신도 어쩌면 사회가 지키고 키워야 할 유대의 근원인 도덕적 지향, 사회적 가치들을 만드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혹시 우리가 추구하고자 했던 거센 몸짓과 큰 함성들이 더욱더 많은 이들을 저쪽 구석으로 몰아넣었으며,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못하게 했던 건 아닌지.
제가 목격하는 요즘의 모습은 외려 진보와 정의의 이름으로 유대의 조건들을 무너뜨리는 안타까움들입니다.

당신은 오늘 귀가하면서 하루 동안 어떤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나누었는지요. 제가 이렇게 쓸쓸한 것은 제가 자초한 삶의 방식 때문일 것이며, 다른 이들이 또 쓸쓸해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서로가 만들어놓은 일로 인해서 그런 게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나뭇잎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여러 가지로 좋게 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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