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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3.08.22 17:52

공공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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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근로가 무언지 몰랐다.
몰랐던 죄로 나는 지금 공공근로를 한다.

처음 대구로 왔을 때 나는 일자리부터 찾았다.
그런데 서울에서 일한 경력은 아무 소용이 없어 일자리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시간이 너무 많아 일을 해야 했으므로 할 수 없이 아는 사람을 찾아서
줄을 대어 작은 일을 얻었다.
그러나 그렇게 일하면 얼마나  힘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아예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늦게야 그 사실을 알고는 하던 일을 그만 두었다.

혼자 힘으로 일을 얻겠다고 나선 것이 고작 읍사무소를 찾는 일이었다.
사무소 직원은 물었다.

"공공근로도 괜찮아요?"
"그게 뭔데요?"
"뭐 사무보조에요. 서류 복사도 하고 타이핑도 하고......"
"할게요."

그 후로 나는 공공근로가 되었고 그게 뭔지도 알았다.
내게 배정된 자리는 보건소라고 했다.
괜찮은 것 같았는데 출근한 첫날부터 싸웠다.
사무실에는 내 자리도 없었고 할 일도 없는 것 같았다.
작은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나를 여직원이 불렀다.
대단히 거만해 보이고 키가 몹시 큰 그 여자는 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하는 말은 더 나빴다.

  "아줌마 1층 화장실 청소하고 쓰레기 봉지 버리세요."
  "전 그런 일 안하는데요?"
  "왜 안해요?"
  "읍장님이 사무보조만 하라고 했어요."
  "아줌마 일은 읍장님이 시키는 게 아니고 내가 관리하는 겁니다."
  "그래도 읍장님이 청소한다는 말은 안했는데요?"
  "아니, 무슨 공공근로가 이래? 공공근로면 좀 고분고분한 맛이 있어야지.
   감정 상하게 하지 말고 빨리 일하세요!"
  "......"

너무 기가 막혀 그대로 집으로 가려다가 참았다.
왜 참았냐면 내가 모르고 일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공공근로는 원래 거리 청소나 사무실 청소하는 사람인데 사무보조라고
청소는 면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공공근로는 사무실 사람들이 얕보는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첫날부터 싸워서 기분이 나빴지만 집에서 꽃밭만 바라보고 있는 것보다는
사람들 틈에 있는 게 낫겠다 싶어 며칠 일했다.
할 일이래야 아침에 자루걸레로 사무실 바닥 닦고
낮에는 보건소에 오는 사람들 안내하고 우는 애들 달래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면
별로 힘든 일은 없었다.
그런데 화장실 청소가 문제였다. 그래도 그것도 경험이라고 참고 또 했다.
내 평생에 언제 또 화장실 청소 할 기회가 있겠나 싶어서 했는데
그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보건소 화장실은 외부 사람들이 거의 쓰지 않는다.
우리 직원들만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 집 화장실처럼 깨끗하다.
나도 우리 집 화장실이라 생각하고 청소했다.
그런데 제일 문제는 내 책상이 없으니 컴퓨터도 당연히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차출간 직원 자리에 있는 컴퓨터를 쓰려고 했더니
나는 동료라고 생각했던 간호사가 꽥 소리를 지르며 못 만지게 했다.
내가 공공근로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사람이었다.

나는 공공근로를 당장 그만 둘 수도 있지만 9월까지 한다고 약속했으므로
견디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한 없이 많은 것을 깨달으며 후회하고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세상을 배운다.
내가 공공근로가 뭔지도 몰랐을 때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지금 나처럼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무시 당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생각하면
나는 너무 미안해서 9월까지 약속을 지킬 생각이다.

그래도 내가 보건소 여직원이었다면
아무리 공공근로 아줌마에게라도 그렇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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