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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이 지난 글입니다만 올리는데요. 혹시 공사, 서울시, 노조 등으로부터 반론이 오길 기다렸으나 역시 오질 않더군요. 다만 장경태가 어떤 놈이냐, 근무는 똑바로 하는 놈이냐 등등의 캐묻는 전화들이 왔다더군요. 다시 생각한건 저런 것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이론도 없이 그냥 조직의 도구적인 존재로 기계적인 역할만 하는 바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하간 이 글을 쓸 때 나의 기분은 참담함으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명절날 여러분들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위해서 누군가 "노동"을 해야하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그런데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인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정나미 떨어지는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새벽 근무가 끝난 세시에 억울하기도하도, 사람 대접 받지 못하고 사는 우리 신세가 너무 기가막혀 편의점에가서 맥주 사다가 부역장하고 술 한 잔하고,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다섯시에 일어나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매표실에 앉아서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 다 처리하고, 오전 퇴근길에 또 암울하고, 날로 썩어 문들어져가는 지하철 걱정을 막걸리 잔에 담아 몸이 견디기 힘들때까지 들이 부었습니다.

노조가 썩으니 공사도 썩고, 썩은 놈들끼리 협잡하면서 조합원들은 더 고단하고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게 비단 지하철뿐인가 싶더군요. 노조활동을 해야 승진이 빠르고, 승진하기위해서 경영진뿐이 아니라 노조에 비비는 것이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부끄러운 모습들입니다. 저는 흡사 지하철에 출근할 때면 시간을 2-30년 거꾸로 돌아 유신시대 정치권 주위에서 배회하던 양아치 집단들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 혐오스러움이란, 이전에도 말했듯이 인간에서 즐거움도, 정서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노동기계"로 모든 전환해야 이 썩은 구석에서 그나마 버티는 겁니다. 그런 심경이 들어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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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께 별꼴 다보네, 어찌 배웠다는 윗 것들이 엉뚱한 짓들을 한댜 글쎄. 한 두 놈 타고 다니는디 그 돈으로 읎는 사람 도와주기라도 하면 고맙다는 소리라도 듣지. 사람 생고생 시켜가면서 무슨 짓들이랴. 지금 덜은 다 지 차 갖고 다니지. 늦게 까장 지하철 타는 사람들이 워딨다고, 세시까장 이게 무슨 난리랴”.

지난 15일 “귀성객 수송을 위한 심야지하철 연장 운행”을 마친 새벽 세 시, 화장실 청소를 하시던 60이 넘은 용역아주머니의 말씀이었다. 방금 전 "와! 두 시 넘게까지 있대, 우리 피시방 가자”며 마냥 신이 났었던 술에 취한 청소년들이 떠올랐다. 귀성객을 위한 심야 연장 지하철이 철없는 젊은이들을 밖으로 내돌게 하는 것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귀성객은 없고 10대나 20대 초반의 술 취한 젊은이들만이 침을 찍찍 뱉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새벽의 대합실을 가득 채웠다. 밤새 불나방같이 헤집고 다녔을 이들을 몇 시간 후 더 망가진 모습으로 이른 아침 지하철에서 만나며 드는 상념은, 좋은 정치인을 만들어놓지 못한 어른들로 인해 우리의 미래가 무너진다는 우울함이었다. 아마 이렇게 운영된 심야연장운행은 지하철공사의 성과로 서울시에 보고가 될 것이다. 이게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꼴이다.

20대 중반에, 사회로부터 도움만 받고 살았으니 이제는 사회를 위한 ‘의무노동’을 할거라는 소명의식 같은 것을 갖고 입사했다. 참된 욕구와 즐거움의 추구는 의무노동이 끝난 50대쯤에 해야 양심에 덜 부끄러울 듯 싶었다. 그러나 지하철 생활 12년 동안 한 번도 회사로부터 따뜻함과, 우리 사회가 인간중심으로 정향(定向)되었다고 느껴본 적이 없으며,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인격적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겉만 번지르한 “시민을 위한 지하철”이라는 허구적인 소리는 점점 커가기만 했다. 2교대 근무도 모자라 새벽 세시까지, 쓸쓸한 정서와 신체적 고통을 느끼는 인간적 존재인 노동자들을 재우지 않고 세워둘 수 있다는 발상들이, 경영진의 아무런 가치혼란 없이 통용되는 회사라면 노동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서툴지만 의(義)를 지향하고자 했던 선배와 동료 노동자들로 인해 그나마 이 구석에서 나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역사적 존재의의를 상실케하는 “탈정치화”로 강제하는 노동개혁은 이런 사람들에게 열패감을 안기거나, 직장밖으로 쫓아냈다. 이게 김대중 정부 시절 일터에서 일어난 일들이었으며, 이들이 떠난 빈 공간을 소인배들로 채워졌다. 이때부터 노동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갖게된 총기(聰氣)는 퇴화되었으며, 노사관계는 창조적 긴장이 아닌 공모관계로 변했다. 협잡관계는 비용이 저렴하고 노무관리가 용이한 이상 경영진으로서는 바라는 바였으며, 그 결과는 노사 모두 부패하는 길이다. 사회통합의미를 담고 있는 주40시간 노동 입법에도 불구하고 공사의 2,773명 감축계획과, 노동자들의 생명을 갉아먹는 심야근무 시행에 대한 노조의 방기는 공모의 구체적 결과들이 어떻게 나타나느냐의 실례들이다.

지하철의 넌센스같은 상황들은,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의 형식들이 갖추어짐에도 불구하고 왜 작동불능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식민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반민족주의자들의 득세를 위해 취했던 성장주의의 병폐가, 다른 모습으로 재집결하여 사회 곳곳에 음험하게 똬리를 틀고 있음이다. 사회발전의 잠재적 가능성이었던 고유의 인문적 기풍의 궤멸이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세기 이상의 누적된 반합리의 역류들은 습속(習俗)이 되어 일상적으로 시대변화를 거부하는 거대한 '사회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역사적이고 비이성적인 전근대의 병균은 이제 노동으로 전염되고 있으며, 우리 정당정치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성적인 사회로 나가고 있다면 일터에서 이렇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정체성을 역류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생각들이 나의 지나친 기우(杞憂)였으면 하련만 그게 아닌 듯 싶어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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