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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3.09.28 13:31

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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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시험을 보았다. 학교 입학하기 전에 형식적으로 보던 면접시험만 알지 직장을 얻기 위해서 보는 면접은 처음이었다. 1차 합격통지를 받고 면접시험 날짜를 기다릴 때는 당연히 될 줄 알았다. 나는 아직도 면접이란 형식상 보는 것이지 필요한 인원의 3배수를 뽑아놓고 서로 얼굴보고 이야기한 다음에도 사람을 잘라내는 시험인 줄은 몰랐다.
  
내가 지원한 곳은 군에서 새로 지은 '여성문화센터'였다. 시설이 서울보다 나은 곳이다. 문화센터라면 내가 서울서 올 3월까지 일하던 곳이니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응시했다. 관장은 '법인'에서 벌써 정해 놓았고 센터를 움직일 전문인력은 모두 네 명인데 각 분야별로 한 명씩만 뽑는다고 했다. 나는 그 한 명에 들어야했다.  

시험은 지난 목요일이었고 군청 큰 회의실이 면접장이었다. 면접장에는 '심사위원'이라고 적힌 책상이 칸막이를 두고 다섯 개나 있었고 대기실에는 정장한 남자와 여자가 20여 명이나 기다리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이쿠, 이것도 시험이구나.' 하는 충격이 가슴을 쿵 찧고 지나갔다.
  
여직원이 와서 내가 지원한 분야에서 예심을 통과한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는데 내 이름과 함께 두 명의 남자 이름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았다. 30대로 보이는 두 사람은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살폈다. 내가 미소를 보내자 한 사람은 어색하게 찡그렸고 또 한 사람은 나보다 더 크게 활짝 웃었다. 인상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 만일 내가 붙으면 활짝 웃는 남자는 떨어져야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다.
  
대기실을 나와서 또 잠시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핸드백을 열고 묵주가 들었나 확인하고 선생님 글씨도 잘 있나 펴 보았다. 묵주는 원래 나를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에 항상 지니고 다니는 성물이지만 '글씨'를 갖고 가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한 것은 남편의 조언 때문이었다. 시험 전날 밤에 남편이 말했다.
  
  "예로부터 좋은 글씨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그것을 품고 있는 사람을 빛나게 도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더라."
  "그건 부적과 같은 거잖아. 부적 믿지 말고 기도하면 돼."
  "글씨가 기도라니까."
  "맞아, 글씨 쓸 때 온 정성을 다 기울이잖아."
  "그렇다니까!!"
  
나는 면접을 기다리는 잠시동안 묵주를 쥐고는 짧은 기도를 바쳤고 글씨에 손을 얹고는 '수리수리 마수리'비슷한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는 든든한 마음으로 심사위원 앞으로 갔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을 칸막이를 넘어 차례로 만났는데 그들은 참 많은 질문을 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3대 아리랑이 뭐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밀양, 정선은 기억했으나 '진도 아리랑'이 생각나지 않아서 다 대답하지 못했다. 또 다른 심사위원은 나이가 예순은 넘어 보였는데 말꼬리처럼 긴 하얀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거침없이 말했다.
  
  "며느리 볼 나이에 뭐 취직은 한다고?"
  "아직 아이들 교육이 끝나지 않아서 저도 일해야 됩니다."
  "거, 경력 보니까 집에서 글이나 쓰는 게 낫겠는데요?"
  "선생님은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 것 같은데도 아직 일 하시잖아요."
  
  면접 후에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혀를 끌끌 차며 걱정을 했다.
  "차라리 뺨을 한 대 치고 나오지 그랬나?"
  남편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잘못 대답한 걸 알았다.

  다섯 명의 시험관 가운데 마지막 사람이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
  "우리나라에 여름마다 오는 홍수를 막는데 좋은 생각 있습니까?"
  "냇물이 강물에 닿을 때까지 잘 빠지도록 물길을 튼튼하게 열어놔야     합니다."
  "절대빈곤층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줘야 합니다. 돈이 없는 사람도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장학제도를 대폭 늘려서......"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직장에서 야근을 하라고 하면 하실 겁니까?"
  "그거야 약속이 뭐냐에 달렸죠. 내 인생문제가 걸린 약속이라면 일은  못할 것이고 사소한 약속이면 밤새워서 일해야죠."
  "그럼 일한다는 뜻입니까? 안 한다는 뜻입니까?"
  "말씀드렸잖아요. 그렇다니까요."
  "본인이 만일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된다면 연봉을 얼마나 받고 싶습니까?"
  "......그건 아직 생각하지 못했고 저에게 재능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    니다."(정말 우아하게 대답했다.)
  "연봉 2천백만인데 그래도 일 할 수 있습니까?"
  "우와~~~ 많다!!"
  "혹시 이 시험에서 신 선생님이 나이 때문에 불합격하신다면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너무 억울하죠!!!!!"
  
어제 토요일 오후에 최종합격자 발표가 있었는데 나는 불합격이었다. 이제껏 불합격이 뭔지 모르다가 나쁜 기록만 하나 세우고 상처를 받았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떨어졌다. 사실은 응시자격에 '20세 이상 40세 미만'이라는 조건이 있었으나 예외가 있어서 나도 응시할 수 있었다. 예외 덕분에 예심까지 통과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떨어졌다. 날씨가 더웠으나 진주목걸이까지 하고 갔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그 말총머리 아저씨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남편 때문인지도 모른다. 괜히 글씨는 가지고 가라고 해서 나는 붙는다고 믿고 너무 자신만만했다. 또 시험 날 아침에 내가 꿈 이야기를 했더니 그것도 붙는 꿈이라고 했다. 그래서 걱정도 하지 않았는데 불합격이라니??? 나는 너무 속상하다.
  
선생님 글씨도 효험이 없다는 데 실망해서 어제 오후에 숲으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께 글씨 이야기는 못하고 다른 이야기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글씨 사건(?)은 알고보니 남편이 날 놀린 건데 모르고 속아넘어간 것이다.
  
시험에 떨어지고 나니 내가 정말 바보 같다. 이제 내일부터 남편과 함께 버섯농장에서 일 열심히 해야겠다. 인제는 면접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수필강사로 오라고 해서 좋아했는데 거기서도 면접한다니 가지 말아야겠다. 버섯재배는 잘 할지 또 걱정이다. 서울이 너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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