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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8 12:27

방문 (백승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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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문


또 한번의 가을을 봅니다.

한낮으로 막 접어든 시간에,

설거지를 하고 방안으로 들어서다가,

갑자기 두리번거리며,

진한 가을의 냄새가 나는 곳을 찾습니다.

내가 부른 적도 없는데,

내가 부른다고 만날 수도 없는 귀한 이름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선물인양

고적한 나의 거처에

고귀한 손님으로 가득합니다.

어릴 적 가을 풍경이 그림처럼

널려져 있는 시골길을 따라

할머니 댁을 가는데,

서서히 산 아래로 떨어지며

그 웅장한 모습을 감추던,

놀란 듯이 만난

붉은 저녁 해가 문득 떠오릅니다.

수수 모가지가 줄지어 늘어선 곳에서는,

나의 작은 키를 그 키에 재어보며,

까끌까끌한 수수 알갱이를 툭툭 건드리며 걷던

그 꼬마가, 갑자기 눈물이 날만큼 그립습니다.

어제는 속이 상하고 괴로운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느낌 좋은 가을 향기에 얼마나

여러 해를, 오래 오래 취해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속 많이 상하다 했던 어제 그 일이,

갑자기 작고 시시한 듯이 여겨졌습니다.

다시 한번,

특별하게 감회로운 계절 속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이

내게 편한 위로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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