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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3.10.18 13:28

마지막 축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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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이가 축구팀을 열심히 이끌고 있는것을 보면서 예전생각이 나서...

마지막 축구화

93년도에 2월에 동사무소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주민자치쎈터가 아닌 순수 행정기관인 터라 인원이 꽤 되었다.

지금은 인원이 전부해야 10명 내외이고 그 중 2/3는 여자라 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때는 남자만으로도 축구팀 11명을 구성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당시 나이가 30대 중반을 살짝 넘을 때 였는데 동사무소에서는 20중후반이 2/3, 30대 이상이 나머지로 구성되어 지금 보다는 평균연령이 훨씬 낮지만 당시만 해도 내 나이는 고령(?)에 속하였다.
직원들과 운동이래야 회의실에서 탁구를 친다던지 사무실 앞 공원에서 족구정도로 지내고 있었는데 94년 미국월드컵 예선과 함께 축구붐이 제법 일기 시작하였다.

족구 정도로 직원들의 공 다루는 솜씨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직접 축구를 같이해 본 적이 없어 축구실력은 서로 잘 모르는 터에 옆의 동사무소에서 축구를 한번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제의한 동사무소의 직원들 명세를 살펴보니 제법 한다하는 얼굴들이 즐비하여 우리는 일단 한풀꺽인 자세로 제의에 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여직원들은 매일 좁은 공원에서 시끄럽게 족구나 하지 말고 넓은 운동장에서 멋지게 한번 붙어보라는 압력이 상당하였다.

우리는 여직원의 압력에 제의에 응하고 나니 그쪽에서는 또 축구게임 끝나고 식사비를 지는 팀에서 전액 부담하자고 한번 더 부담을 지우면서 압박해 왔다. 우리도 내친김이라 그들의 제의에 응하고 날짜를 정하였다.

일단 시합준비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하루밖에 없어 실전경험은 전혀 하지 못하고 각각의 포지션 선정만 하고 시합에 나세게 되었다.
시합날 운동장에 도착하니 우리는 일단 상대방의 위세에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기억으로는 상대방은 노란색 바탕에 까만 세로줄이 쳐진 상의에 까만 팬츠, 노란 스타킹, 그리고 전원 축구화로 중무장을 하였고 특히 골키퍼도 전용 옷에 장갑을 끼고 있어 적어도 조기축구회 이상의 위상을 보이고 있었다.
제각각의 색깔에 츄리닝 바지와 반바지, 전원 운동화, 다행히 상의만은 흔한 흰색으로 통일한 우리로서는 기가 질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합에 들어가 전반 10분정도 지나면서 화려하고 조직적으로 보이던 상대팀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각 포지션을 개인의 의사대로 맡겨놓은 터라 별 기대도 없었지만 우측을 돌파한 쎈터링이 이어지면서 헤딩슛이 성공되고(이때까지만 해도 운이라고 생각하고), 잠시 후 중앙공격수가  세사람을 제끼면서 슛이 성공하였다. 우린 서서히 들뜨기 시작했고 상대방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반전 끝날 무렵 우리가 얻은 프리킥을 내가 높게 올려주자 우왕좌왕하다 또 한골이 나오면서 우리는 발을 동동거리면서 좋아라 했다.

전반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우리 여직원들은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면서 올 때 까지만 해도 빈손이었던 여직원들이 어느새 이온음료와 물을, 발을 절룩거리는 사람을 보고는 물파스도 사다놓고 땀 닦을 수건조차 마련하지 않은 우리들을 위해 수건까지 가져오고, 요즘 흔히 사용하는 말로 뒤짚어졌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우리는 으쓱한 마음으로 후반에 접어들었다. 후반 들자 상대방의 역공이 만만치 않았지만 한번 오른 우리의 기세는 식을 줄 몰랐다. 후반 중반까지 두골을 더해 5대0이 되었다.
5:0이라는 스코어가 이겼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상대에게 좀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종료전 두골을 내주면서 게임은 끝이 났다.

몇 일간 사무실은 서로의 무용담으로 끝이 없었다.
이후로 우리의 승리가 소문이 나면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정신이 없었고 내친김에 유니폼과 축구화를 마련하였다.

얼마나 많은 게임을 했는지 축구화가 세켤레가 떨어지도록 열심이었고 네 켤레째를 사고 몇일 후 발령을 받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마지막 축구화를 살 당시에는 한결이가 첫돌을 지나고, 한솔이는 유치원생이었다.
그 마지막 축구화는 이후 신발장에서 잠을 자면서 한솔이의 발에 맞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그것도 잠시 한솔이 발에 적어 따로 한 켤레를 사주면서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그 축구화를 마지막으로 신은 것은 지난 봄 숲 운동회에서였지만 언젠가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신발장에 고이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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