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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3.10.24 20:39

조카 이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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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동생이 둘째 딸을 낳았다. 첫째 딸 이름을 나한테 지어 달라고 했던 것처럼 둘째 것도 지어 달라고 했다.
첫 아이 이름 지을 때 생각이 났다. 어른들은 이름을 지을 때, 돌림자를 넣고 사주와 한자의 획수를 다 고려해서 이름을 짓는다. 이른바 '성명학'이다. 나는 그런 것에 맞춰 지을 능력도 없고 한자로 이름을 짓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이름을 지을 때 염두에 둔 것은 다음 네 가지다.

첫째, 우리 말로 지을 것.
둘째,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지 그 마음이 담겨 있을 것.
셋째, 듣기 좋고 부르기 좋은 이름일 것
넷째, 흔하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별나지도 않을 것.

이런 것들을 생각해서 지은 첫 아이 이름은 '신해강'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해강이 이름을 지을 때에도 세상은 전쟁에 대한 불안으로 뒤숭숭했다. 내 마음 한 구석에도 언제나 전쟁에 대한 불안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거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보다, 전쟁이 터져 아무 죄도 없이 불행하게 살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곧 '평화'를 원했다.

이름을 '평화'라고 해 보니, 기독교인들이 아이 이름으로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만의 개성이 없기도 하고, 성과 연결해서 발음해 보니 '신평화'가 되어 썩 좋지가 않았다. 그래서 평화를 느끼게 하는 이름으로 지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어느 때 평화를 느끼는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스물네 살까지 살았다. 서울 시내를 한강이 가로질러 흐르듯이 진주는 남강이 시내를 가로질러 흐른다. 우리 집이 남강에서 멀지 않아 나는 늘 남강을 보며 자랐다. 어릴 때는 남강에 빨래하러 가는 엄마를 따라 가서 곁에서 놀기도 했고, 여름날 동무들과 어울려 멱을 감기도 했다. 남강 둔치는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는 단골 자리이기도 했고, 고등학교 대학교는 날마다 남강을 건너 학교를 다녔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고속버스가 남강가를 휘돌아 터미널로 들어가기 때문에 늘 남강과 먼저 만나게 된다. 버스 창 밖으로 보면 남강에 햇살이 비쳐서 잔물결이 반짝이는데, 가끔 새들이 강 위에 동동 떠 있다. 대나무 숲 그림자와 흰 구름까지 강물에 비치는 날에는 오래오래 그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그 풍경에서 평화로움을 느낀다.

강보다는 바다가 더 낫지 않나는 생각도 잠깐 해 보았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해서 '바다'라 한다. 그 뜻은 좋지만 바다가 언제나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태풍과 해일을 일으켜서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켜 버린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바다를 두려워해 배를 띄우기 전에 용왕이나 이런저런 바다신에게 제사도 지내지 않나. 그런데 강은 늘 잔잔히 흐른다. 가끔 홍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도 있는 정도의 위험이다.

그래서 '햇빛 비치는 강'이 곧 '평화'를 상징한다고 보고, 첫 자와 끝 자를 따서 '해강'이라 지었다. 동생 남편의 성이 우리 집과 한자가 다른 '신'가라 이름이 '신해강'이 되었다. 다행히 동생네 식구들도 좋다고 했다.

이왕이면 한자도 붙여 달라고 해서 옥편을 뒤져 억지로 '偕(더불어, 함께, 굳세다) 康(편안하다, 온화해지다, 즐거워하다)'이라 붙여 주었다. 한자의 뜻풀이를 하자면 '사람들 더불어 온화해지고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라'는 뜻이다.

둘째의 이름은 '따뜻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다슬'이라 지었다. '해강'이와 마찬가지로 첫 자와 끝 자에서 따온 것이다. 동생에게 전했더니 해강이 할아버지 뜻이, 형제니까 '해'자든 '강'자든 한 자는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한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오늘 겨우 생각해 낸 이름이 '해나'다.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 이름이 '나무'였다. 그래서 '해처럼 밝고 따뜻하고, 나무처럼 푸르고 굳세어라'는 뜻으로 '해나'를 생각한 것이다. '신해나'. 이번에도 모든 식구들이 좋다고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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