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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3.10.29 21:33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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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늦은 아침상을 치우는데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린다. 아련히 들리는 북소리는 너무 구슬프다. 설거지하던 손을 멈추고 소리에 귀 기울이니 상여가 나갈 때 울리는 소리 같았다. 며칠 전에 마을 어귀 마당 넓은 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들리더니 오늘 아침 그가 집을 떠나는 모양이었다.
  
나도 몰래 대문을 나서 소리나는 쪽으로 달렸다. 큰길에 이르자 북소리는 사뭇 가깝게 들리더니 산중턱 고개를 돌아가는 상여가 보였다.  누가 부르는 듯이 산으로 내달았다.
  
산등성이로 접어드는 좁은 길 곁 밭에서 남자 몇이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게 보였다. 얼굴이 불그스레한 남자가 못마땅한 듯이 뱉어내는 소리로 보아 무엇을 흥정하는 듯했다. 입고있는 옷을 보니 문상객은 아닌 듯하고 상여를 건네주러 온 이웃마을 사람들인 것 같았다.
  
산모퉁이를 돌자 싱갱이를 벌이는 남자의 목소리는 북소리에 묻히고 상여를 따르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더욱커지자 조그마한 상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정도 아닌 머리가 허연 남자들이 멘 상여는 꽃상여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어린 날 보았던 크고 화려한 상여는 아니었다.
  
작은 상여는 몸체를 화려하게 장식한 단청도 없고 그나마 치장한 꽃들은 모양도 크기도 들쭉날쭉 이상한 것이 급하게 지나간 손길이 역력했다. 긴 장대 끝에서 나부끼는 만장[輓章]과 상두꾼들이 부르는 구성진 만가가 북소리와 장단을 맞추는 장례행렬은 이제 사라졌는지 상여만 뎅그러니 나간다. 상주들의 모습도 변했다. 상주는 굴건도 쓰지 않았고 상장(喪杖)도 짚지 않았다. 애가 끊이도록 곡(哭)하던 주부(主婦)도 없다. 모두 맨머리에 흰두루마기도 아닌 검은 양복으로 간소화했다.     상여는 꽤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건만 정상(停喪)도 없이 멈칫하지도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오로지 북소리 하나만을 따르는 상여가 사라지는 산길 밭둑에는 여름 내 새하얀 꽃을 피우던 박꽃이 황톳물을 쓴 듯 누렇게 지고 있었다.
  
산중턱까지 따라와 상여를 보내는 마을사람들은 저마다 일그러진 얼굴로 옷소매 끝으로 눈물을 찍어내었다. 그들은 한 많은 인생을 살다가 가는 할머니의 삶을 되돌아보기 때문이리라. 하기야 산골마을 집마다 서러운 사연 굽어보지 않은 처마가 있으랴마는 할머니는 더욱 이승의 삶을 마디마디 힘겹게 넘어온 사람이었다.
  
청상은 어찌 그리 흔한가. 외아들은 또 왜 그리 많은가. 그 아들에게 쏟는 어머니의 정성은 어쩌면 한결같이 닮았는가. 오늘 마을을 떠난 할머니도 그렇게 살았다. 척박한 밭고랑에 우거진 잡풀을 뽑듯 그렇듯 옹골지지 못한 인생에 우거진 덤불을 가려내고 외아들이란 알곡을 키웠다. 번듯하게 장성한 아들 장가보내면 호강할 줄 알았는데 대처로 나간 아들은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넘어가는 사업체를 살려보려고 고향에 올 적마다 전답을 팔아갔다. 남편 없이 키운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인데 무엇이 아까웠을까. 맨주먹으로 일군 토지는 가을 묘사떡처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남의 땅이 되었고 급기야는 집마저 넘어가게 되었다. 더 이상 줄 게 없는 할머니는 병이 났다. 이따금 찾아오는 며느리의 시중을 일 년여 받다가 이승에 두고 갈 외아들 걱정으로 눈은 어떻게 감았는지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땅에서 삶을 일구었고 아들은 도시에서 땅을 팔아서 생(生)을 부지했다. 이제, 땅은 있으나 일손이 없는 농촌엔 빈집이 스러지고 흙은 있지만 작물이 자랄 수 없는 도시엔 인간만을 채우고 비대해져간다.    
  
북소리는 더욱 구슬프게 들린다. 고향의 땅을 깎아먹으며 화려한 불을 밝히고 유혹하는 도시를 원망하듯 그렇게 울면서 둥둥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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