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어머니

by 신복희 posted Nov 0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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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만들었다. 서울에 살 때는 두꺼운 솜이불을 일부러 없앴는데 시골로 오니 꼭 있어야 될 물건이라 다시 준비해야만 했다. 시장에서 파는 이불은 거의 침대용으로 얇다. 그래서 목화 솜을 사다가 만들기로 한 것이다. 혼자 일하기는 벅차서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오래된 손재봉틀을 꺼내고 나는 안방에서 솜싸게부터 만들었다. 늦가을 날의 햇살이 하도 좋아 안방 문을 열어놓고 일했다. 어머니는 마루에서 새로 사온 솜을 손질하셨다. 파란 하늘에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환하게 보이는 방안 가득히 귀에 익은 재봉틀 소리가 울리니 세월 저편에 남기고 온 추억이 단번에 넘어와 어머니와 나를 기웃거리는 것 같았다.

삼십여 년 전에 내 결혼식 날이 잡히자 어머니는 나의 혼수이불을 손수 만들어 주셨다. 그 날 어머니는 지금 내가 앉은 자리에서 재봉틀을 돌리셨고 나는 곁에서 도왔다.  

그날 어머니가 하듯이 오늘은 내가 햇살이 넓게 퍼지는 마루에서 솜싸개를 펴놓고 솜을 편편히 폈다. 그리고 뒤집어서 시침을 뜨고, 미리 만들어 놓은 이불 껍데기를 대고 호청을 씌우니 예쁜 이불이 완성되었다. 이젠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 집에서 쓸 이불을 만들고 남은 재료로 어머니가 쓰실 이불을 하나 더 만들기로 했다. 처음부터 두 개 만들 생각을 한 건 아닌데 내가 대중없이 솜을 너무 많이 사서 어머니 이불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어머니는 새 이불을 만들어 드린다니까 생각보다 아주 즐거워하셨다. 자투리 천으로 만들려니 조금 부족한 듯싶어서 헝겊 보따리를 가지고 나와 쓸만한 것은 다 꺼내어 색깔을 맞추어 조각이불을 만들기로 했다. 남은 천으로 만드는 이불이건만 그 옛날 어머니가 밤새워 만드는 설빔을 기다리던 어릴 적 나보다 어머니는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어느새 지나온 긴 시간을 건너가 자신의 혼수 이불을 만들던 날을 기억했고 지금 사용하는 이불은 색깔이 많이 바래서 벌써부터 새로 하나 장만하려던 참이었다는 속마음도 비치셨다. 이야기에 열중한 어머니의 얼굴은 이 가을 마지막 향을 뿜으며 뜰에 핀 과꽃 마냥 화사해 보였다. 그러나 내 이불부터 만들고 자투리로 어머니 이불의 조각을 맞추는 내 마음은 돌담 그늘을 지나는 바람보다 설렁했다.

조각을 잇대어 만드는 어머니의 이불은 아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다음날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조각이불은 완성되었다. 알록달록한 이불은 새색시 예단처럼 고왔다. 어머니는 새이불에 얼굴을 묻어 보다가는 펼쳐놓고 마당에 서서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더니 조용히 나를 향해 말씀하셨다.  

  "야야, 너무 애썼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이불만 덮을란다."

어머니는 웃는 듯하다가 흐느껴 우셨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당에 가득한 가을은 온화한 햇살로 충만 되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데 내 마음은  회초리로 매를 맞는 듯  따갑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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