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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3.11.26 23:24

중국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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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가 얼마나 맛이 좋은지 서울 살 때는 몰랐다. 올 가을에, 감나무에서 완전히 익은 홍시를 따서 먹은 후로는 거의 매일 홍시만 먹는다. 일손이 바쁜 농촌이라 마을 사람들은 홍시 딸 시간도 없어 나무에서 금방 떨어질 정도로 농익었는데도 그냥 두고만 보았다. 일손이 넉넉한 남편과 나는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의 배려로 감나무마다 올라가서 홍시를 따 나누어 먹었다.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란 어느 과일도 따라오지 못할 '황홀'이었다.

동네 감나무를 모두 발가벗겨 놓고는 이젠 시장에 나가서 홍시를 사다 먹는다. 가게에서 산 홍시는 나무에서 따먹는 맛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과일보다는 낫다는 생각에서 거의 매일 읍내 과일가게로 나갔다. 읍내에 있는 과일가게는 이곳으로 이사온 후로 내내 단골로 가는 곳이다.

오늘은 가게 주인아저씨가 나에게 이것저것을 자꾸 물었다. 내가 원래 정보에 어둡고 인간관계에도 서툴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시골서도 그렇게 보이는가 싶어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참으로 이상한 말을 했다.

"와? 고향은 떠나 이렇게 멀리 와서 삽니꺼?"
"왜요? 저는 이곳이 좋은데요."
"좋기는 뭐가 좋아요? 그만하면 골짜기 마을에 시집오기 아깝꾸만."
"골짜기가 어때서요?"
"그래도 요새 색시들이 그런 데서 살라 캅니꺼?"
"저는 좋은데요."
"중국 동포지요?"
"??????????? 어떻게 알았어요?"
"지난번에 사과 배달하러 집에 가니까 호박 오가리 말리고 무 말리고   하는 거 봤는데 한국에는 촌사람도 요새는 그런 거 안 먹거든예."
"저는 그거 말리는 거 재미있고 맛도 좋던데요."
"중국에는 물자가 귀하니 그렇지요."
"제가 중국서 온 사람인 줄 언제 알았어요?"
"처음부터 알아꾸만요. 한국말 발음도 이상하고 옷도 너무 그렇고....
한국은 촌사람도요 색시처럼 그런 옷은 안 입어요. 운전도 못하고 자전거만 타고 다니는데 미안하지만 얼굴도 영 세련이 안됐거든요. 그라고 요즘은   맨날 헐짜배기 홍시만 사대요."
"예."
"중국서 온 색시들은 다 알뜰하더만요. 색시처럼."
"예."
"거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인교?"
"농사짓는 사람이에요."
"아이구, 고생이 많겠심다."
"예, 그런데 중국동포면 과일값 깎아준다거나 뭐 혜택 있습니까?"
"그런 건 없고요, 잘 안 팔리는 오래된 과일 있는데 주까요?"
"예, 주세요."
"고향이 어딥니꺼?"
"짜우와다우에요.(요상한 발음으로)"
"거기가 어딘데요?"
"있어요.저~~기"

다음에 다시 과일가게에 가면 아마도 그 아저씨가 나에게 중국말을 한번 해보라고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러면 이래야지.
"진따자와마른따운도와"(진땅에는 장화, 마른 땅에는 운동화)
내일이면 읍내에 있는 연변색시들 모임에서 회원에 가입하라고 전화가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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