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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어김없이 대입 수능 시험은 대소동으로 끝났다.  특히 출제위원 가운데 학원강사 가 있었다는 보도는 많은 시민들을 격분 시켰다.  한국의 양심적 시민 세력을 대표하는 어느 시민단체가 바꾸어야 할 각료 명단에 교육부총리를 포함시키면서 제시한 경질 이유 속에도 수능 출제위원 인선을 제대로 못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입시 관리라는 신성한  공공의 목적을 위해 헌신해야 할 수능 출제위원이 염치없게도 자기 개인의 몸값을 올리는 방향으로 문제를 냈다는 것이 비난의 요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수능 출제위원이 될 정도로 훌륭하고 유능한 인재를 챙기고 있는 학원이 어느 곳인지 궁금해 하는 학부모도 많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 대학 동창들이 모인 망년회 자리에서 문제가 된 학원강사 출신 수능 출제위원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40대의 철학박사로 지난 여름까지도 관악산 기슭의 어느 국립대에 소속된 전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월 200만원 수준의 인건비를 교육부의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지급하는 기초학문 지원 프로그램의 적용을 받아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며 1년 단위로 계약이 경신되는 비정규직 교수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눈치 빠른 사교육 업계가 고급 입시 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많은 비정규직 철학자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고소득을 제시하며 스카우트 해갔다. 그러나 학문적 능력을 인정하고 있는 선배들도  그를 수능 출제위원으로 지명했다. 한국의 대학사회에서 정규직 교수가 되지 못한 사람이 선배의 요구를 거절한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자살이다. 여기에서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고 유능한 젊은 철학자는 순식간에 파렴치한으로 전락했다.  즉, 돈이 아쉽고 선배의 요청을 거절할만한 배짱도 없었던 철학박사는 사회적 죽음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실제로 그 대학에서는 정규직 교수가 될 전망을 상실한 연구원의 자살 사건도 있었다.                        

우리 모두 처지가 딱한 박사 실업자에게 돌 던지는 것을 멈추고 냉정하게 생각을 다시 해 볼 것을 제의하고 싶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법학 교재를 집필한 교수가 사법시험 출제위원이 되었다고 말썽이 난 적은 없다. 그 교수가 대학에서 출제한 문제와 사법시험 문제가 비슷하다고 시비를 건 고시 낭인도 없다. 오히려 교수진 가운데 사법시험 출제위원 경력자가 많은 대학 근처에는 귀동냥이라도 해보려는 법률가 지망생들이 모여들어 고시촌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만일 지금의 여론을 국정에 반영한다면  내년부터 수사정보기관을 총동원해 수능 출제위원의 뒷조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출제위원이나 장관 개인을 매도하는 것은 쉽고 신나는 일이며 민주사회에서 보복을 겁낼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바탕 스트레스를 풀고 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비슷한 사건이 주기적으로 재발한다.  입시제도를 아무리 손보아도 대학의 구조나 고용관행에 대한 개혁이 수반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지금과 같이 복잡한 정치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근본적인 개혁은 논의도  시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행정적으로 생색내기 쉽다고 수능 제도나 입시 관리 방침을 조금씩 뜯어 고치면 입시 준비가 더욱 복잡해지고 이것만 생각하는 학원가의 전문가들이 큰 소리를 치고 나설 수 밖에 없다. 사교육 산업을 세무조사나 행정 단속으로 규제해 보아야 비공식 프레미엄만 올라간다. 올해도 수능 출제위원의 주력이 서울에 있는 특정 대학 출신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따라서 갑자기 안 보이는 교수들의 평소 언행을 수집하여 문제를 유추하는 정보활동이 쉬웠기 때문에 유출 의혹이 발생했고 힘없는 미취업 박사 개인에게 책임이 전가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필자는 쉽게 실행할 수 있는 응급조치를 하나 제안하고 싶다.  이 것은 우선 수능 출제위원에서 수도권 소재 대학에 있는 교수를 배제하자는 아이디어이다.  수도권에서 고급 입시정보를 획득할 수 없게 되면 지방 고교생들이 방학 때 서울의 명문 학원으로 단기 유학을 오는 진풍경도 없어질 것이다. 나아가 강남의 땅값 잡기도 쉬워질 것이다. 전형자료의 다양화라는 명분으로 내신이나 면접과 같은 주관적 평가 요소를  중시하도록 유도하는 행정규제를 없애면 사교육비는 더욱 절약될 것이다.  고교 시절부터 모든 것을 잘하는 슈퍼맨을 대량으로 키운다고 국가 경쟁력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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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게 아니고, 성공회대 사회학과의 이종구 선생님의 글입니다.
[중앙일보]홈페이지에 가시면 "이종구 교수 통념깨기"라는 칼럼란이 있습니다. 다음번에 올라갈 글이라 하시더군요. 이종구 선생님은 노동문제와 지역사회,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신 분입니다. 교육운동에 근본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갈무리 출판사에 발행하는 "교육비평"에 연재도 하신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네요.

수능을 두고 피우는 사회적소란은 참으로 가관입니다. 이 문제에 자유롭지 못한 분들에겐 미안한 소립니다만. 흡사 거대한 야바위시장에 몰려들어 죽자사자하는 꼴입니다. 사실 그 출제시스템도 야바위질서와 크게 다르지 않는데요. 고만고만한 서울대 출신으로 뭉쳐있는 교육관료세계에서 출제할 사람 선정 또한 전공(전문가주의)의 벽과 관료의 틀안에 사고가 가로막혀 아주 좁은 인력풀 속에서 반복되는 상황에서 올해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요. 수능의 출제에 입시학원 강사출신이 연루되어 곤욕을 치루는 일은 고질적인 한국사회의 병의 일부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40대 철학박사가 생활의 불안에 쫒겨 입시학원에 몸을 담고, 정규직 교수가 된 선배의 요청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지식사회의 질서, 의사시험, 각종 고시, 기술사 시험에선 전통적인 관례화가 되어버린 유능한 교수들의 출제에는 묵인하고 입시학원 강사의 수능출제는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흡사 사회적 미신에 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통념깨기"의 맛뵈기로 올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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