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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4.01.25 10:51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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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정말 추웠습니다. 시골로 이사온 후 가장 추운 날씨였습니다. 까치설날부터 얼어붙기 시작한 날씨는 아직 다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큰댁에서 설쇠고 돌아오니 우리집에는 물이 모두 얼었습니다. 그래서 우물물을 퍼다가 랜지에 데워서 언 물을 녹이려니 가스마저 얼었는지 동이 났는지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물과 불이 없는 집에서 이틀을 보냈습니다. 마시는 물은 생수 몇 병이 남아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부엌에서 쓰는 물과 남편과 내가 씻는 물은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퍼서 차가운 채로 그냥 썼지만 견딜 만했습니다.

어제야 가스가 배달되었습니다. 불이 들어온 집은 금새 활기가 돌았습니다.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물에 세수를 하고 꽁꽁 잠겨 있는 수도꼭지에 더운물을 붓느라 한참 바빴습니다. 이제 금방 물이 나오기만 하면 잠시 불편했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은 참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경험부족으로 생긴 사고로 그런 소박한 희망마저 깨어졌습니다. 너무 뜨거운 물에 놀란 전동펌프가 '쩍' 소리를 내면서 금이 갔습니다. 이제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려면 읍내 가게에서 기술자가 와야 하고 복잡한 작업이 끝나야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제는 종일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서 밥 짓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예전 나의 어머니가 하시던 것처럼 큰다라에 물을 채우고 설거지 감을 담갔습니다. 한 번 씻은 그릇을 다시 렌지 위에서 펄펄 끓는 물에 헹궈서 정리했습니다. 좀 불편하긴 했지만 예전에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물을 아껴 쓸 방법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난밤에는 책을 읽다가 마당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혹시 우물물에 달빛과 별빛이 비치는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물은 깜깜한 채 물마저 어른거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대문을 열고 나가 뒷산에서 대숲을 흔들고 지나는 바람소리를 듣다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친구들 홈페이지에 우리집 '동파' 소식을 전하려고 게시판을 여니 음악이 흘러 나왔습니다. 가수 <유심초>가 부른 '사랑이여'였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노래는 참 아름다웠습니다. 게시판에 링크된 노래는 저절로 반복되면서 흘러서 수없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노래 가사와 멜로디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했습니다. 노래의 작곡자가 가요계에서 활동하는 프로가 아니라 숨어서 음악을 사랑하는 아마추어였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노래는 전주곡부터 애절합니다. 오케스트라처럼 편곡된 멜로디 속에서 기타 선율이 마치 솔로처럼 부각됩니다. 짧은 전주가 끝나면 둘이 형제라는 남성 듀엣 가수는 이야기를 주고받듯 한 소절씩 번갈아 가면서 부릅니다. 그런데 듀엣의 특성인 화음이 없습니다. 똑 같은 키로 유니송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의 목소리는 빛깔이 너무나 뚜렷해서 유니송이 갖는 아름다운 또 다른 화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기교를 되도록 절제한 순진한 목소리이고 또 한 사람은 천성적으로 떨림(바이브레이션)이 있는 우수가 깃든 소리입니다. 노래는 시종 물결 일지 않는 수면처럼 조용하게 흐릅니다. 가요에서 두드러지는 크래이맥스 부분인 '아~~ 사랑은 타버린......' 부분도 강하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듀엣이지만 그 부분을 오히려 솔로로 부르는데 정말 한 줄기 바람만 같습니다.

노래의 1절이 끝나고 간주로 흐르는 바이얼린 선율은 마치 차이콥스키처럼 비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애는 가사가 나오면 숨어버립니다. 드럼과 리듬기타의 리듬악기가 노래를 받쳐줍니다. 그러다가 노래가 끝날 무렵에 바이얼린은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1절 반주에서 반복되던 멜러디입니다. 작곡자가 편곡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 만나고 싶어집니다.또 작곡자는 당시 신인 가수였던 <유심초>의 고운 목소리를 기량껏 살렸다는 느낌이 듭니다. 두 사람은 가사에 맞추어서 깔끔하게 발성하는데 간결한 문장처럼 깨끗합니다. 그들은 어머니 말씀 잘 듣는 모범생으로 자랐을 것 같은 순한 사람들일 것이란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유심초의 사랑이여는 풀잎 같은 청순한 사랑이 끝난 후에 원망 없이 지난날을 오로지 그리움만으로 그리워하는 한 남자를 떠올릴 수 있는 곡입니다. 가사가 그렇기도 하지만 가수의 음색이 그렇습니다. 화려하거나 우울한 화음을 배제하고 유니송으로 구성된 듀엣이 그렇습니다. 거기다 편곡은 그런 주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작곡자는 아름다운 가사와 곡을 쓰고도 미덥지 않았던지 그렇게 글을 쓰듯이 꼼꼼한 편곡과 듀엣으로 곡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추어라고 했지만 활동하는 프로를 능가하는 숨은 프로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명곡 '사랑이여'를 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때 묻지 않은 아마추어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믿게 합니다.

어젯밤, 밤이 이슥하도록 듣고 또 들어도 싫지 않은 곡이었습니다. '사랑이여' 덕분에 물이 꽁꽁 얼어 붙는 집이 아름다웠습니다. 별빛을 담지 않은 깜깜한 우물에 뜬 별을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음악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이렇듯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오늘은 개울에 나가서 살얼음만 덮인 부분을 깨고 빨래를 해야겠습니다. 세탁기보다는 불편하지만 어쩌면 개울물에는 햇빛이 반짝일지도 모르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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