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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개한 성공회대 노동대학 강좌에 김동춘 선생님의 강의가 세번 있는데, 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감을 잡아보라고 선생님의 글을 올려봅니다.

전통적인 한국적 정서를 갖고 있는 이 분이 지난 1년 미국에 가셨는데, 학자로서 견문을 넓히고 저쪽 동네의 학계동향을 살피거나 자기 시간을 갖고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얼마나 좋을 까보다는, 막걸리 생각에 제대로 견디시기나 할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홈페이지에 우리의 산에 대한 정겨운 마음씨와 따뜻한 추억으로만 기억할 수밖에 없도록 망가지는 국토에 대한 착찹한 심경이 엉켜있는 글이 있어 이곳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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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밤에는 박경리의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의 최참판 댁에 간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머리속에 그리고 있는 한국의 최고의 명당 자리입니다. 언덕의 중턱인 최참판 댁에서 보면 동네 앞으로는 언덕이 완만하게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고, 언덕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한 20리 정도 이상되는 넓은 평야가 광할하게 펼쳐져 있고, 평야의 왼쪽에는 소백산맥의 끝자락인 지리산의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 쪽 저 멀리에는 섬진강이 뱀처럼 굽이치면서 한가롭게 흘러가고 강 건너에는 옛날 빨치산이 활동했던 회문산이 희끄무레 하게 보입니다. 그 곳은 한폭의 그림입니다. 봄이되면 동네마다 핀 복사꽃, 벚꽃으로 더욱 장관을 이룰 것입니다. 산과 평야, 그리고 강이 어우러져서 생활의 터전을 이루어 있는 한국의 남도 지방의 전형적인 풍경입니다. 한국의 산은 우리가 별다른 등산장비 없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험하거나 높지 않고, 한국의 강은 대체로 흰 백사장을 끼고서 흐르고 있으며, 하류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깊지 않아서 가뭄 때는 다리를 걷고 건널 수 있고, 들판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은 단숨에 내지르기는 어렵지만, 쉬엄쉬엄가면 걸어서 끝자락까지 갈 수 있을 정도로 그다지 넓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언제나 가까이 있고, 언제나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자연입니다.
   내가 자란 영주에는 서북쪽으로 소백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안동의 학가산이 있습니다. 소백산은 제일 왼쪽의 도솔봉에서 시작하여 움푹들어간 죽령이 있고, 그 다음으로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이 있습니다. 영주 분지를 병풍처럼 둘러싼 소백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삶의 터전들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겨울이되면 우산 처럼 솟은 비로봉 정상에 흰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나는 눈을 감아도 이 소백산과 학가산의 능선을 그릴 수 있습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이 소백산에 수도 없이 오르 내렸습니다. 하루에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정도의 높이라 친근하고, 또 어느 편에서 보더라도 삐죽 튀어나온 바위나 절벽을 볼 수 없어서 등산할 때 사고를 당할 위험성이 없습니다. 산 기슭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중턱에 올라가면 소나무의 향기가 정신을 맑게 해 줍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보니 이러한 자연이 그립습니다. 미국은 서쪽의 로키산맥과 동쪽의 노년기의 애팔래치아 산맥을 제외하고는 대륙 자체가 거대하고 광활한 평원입니다. 이 평원은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해발 100M 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자체가 전부 약간의 굴곡만이 있는 구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시야에 산이 들어오는 일은 없고 끝없는 평야와 질릴 정도로 잘 보존된 숲들이 있습니다. 중부 지역에는  끝없은 옥수수 밭과 밀밭이 캘리포니아에는 오렌지 밭과 포도밭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져 있습니다. 길가의 숲 속 여기저기에는 큰 농가주택이나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저택들이 즐비합니다. 이 넓은 평원은 도저히 걸어서 갈 수는 없습니다. 옛날 개척시대에는 서부영화에서 볼 수 있는 웨건이나 말을 타고 다녔겠지만 오늘날은 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북부 오대호 근처의 평원에는 크고 작은 호수가 곳곳에 있어서 호수 근처에 가면 보트를 뒤에 메달고 달리는 여행차량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산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제한되어 있는데, 따라서 산을 찾아서 가는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부의 로키산맥이나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경우는 완전한 등산장비를 갖추고 며칠 캠핑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등산을 해야 할 산들이고, 그냥 도시락 싸서 운동화 신고 갈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산 중턱 정도에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거나 그냥 경치한번 보고 지나가는 것 이상으로 산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미국사람들에게 산은 전문적으로 등산을 해야 할 곳이거나 그냥 구경의 대상일 것입니다.  
  강 역시 미시시피 강과 그 지류들이 흘러가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쉽게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감히 근처에 갈 수 없는 깊은 물줄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면서 여기 강이 있구나 생각할 수 있을 정도 입니다. 그리고 강 섶으로 숲이 우거져 있고, 강 근처로 인도도 나 있지 않기 때문에 근처로 갈 일도 없습니다. 큰 여객선이나 화물선이 한가롭게 오가는 대도시 주변의 강은 멋진 풍경을 이루고는 있으나 큰 배를 타지 않고 강을 건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랜드 케년의 장대함은 자연의 신비에 경외감을 느끼게 해 주지만, 그냥 입구에서 경탄을  하는 것 이상으로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헬리콥터를 타야만 계곡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이에가라 폭포 역시 가까이가서 보면 탄성을 지를 정도로 장대합니다. 그러나 배를 타고 폭포수를 맞으면서 한 10분간 혼을 빼고 나면 저 그 웅장한 폭포는 저 멀리 사라져 갑니다.
   미국의 자연은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고, 사람을 압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자연은 한국의 자연과 달리 가까이 접근해서 오랜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대상은 아닙니다. 특히 산과 강이 그렇습니다. 이 엄청난 넓이의 사막과 평원, 그리고 눈이 쌓인 높은 산들은 사람들에게 도전심을 심어주었을 것이고, 미국인들은 높은 탐구심과 기술력으로 그것을 결국 정복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자동차와 비행기는 바로 자연의 도전에 맞서는 인간의 노력이 보여준 20세기 미국 문명의 가장 중요한 성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차를 몰고서 저 까마득한 평원과 사막을 단숨에 달려갈 때, 약간의 짜릿한 승리감과 쾌감을 맞볼수는 있겠지만 그 자연이 나에게 주는 감동은 크지 않을 듯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있는 뒷산, 그리고 학교 다닐 때 건너던 개울, 친구들과 콩사리 해 먹으러 다니던 들판의 동네 산의 추억을 갖는 것은 아마도 한국인들만이 갖는 독특한 자연의 개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마 본격적으로 도시화되기 이전의 한국의 자연을 알고 있는 우리세대는 그러한 자연을 즐긴 마지막 세대가 되겠지요. 가까운 사람들과 하루 계획으로 집에서 1시간 안에 있는 북한산이나 관악산에오르는 즐거움은 한국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동양의 많은 시인, 학자들이 지적하였듯이 자연은 우리에게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아기자기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도 이러한 자연은 점점 보기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넓은 논바닥 중간에 우뚝솟은 10 층 이상되는 아파트, 산자락 중턱에 큰 흉물스런 구멍을 지나 뱀 처럼 산을 휘감고 내려오는 고속도로, 검푸른 이끼들이 물결따라 춤추는 오염된 강물과 개울물을 보고 자라는 이후의 한국인들에게는 자연보다는 콘크리트 건물의 깨끗함과 편리함이 더 익숙하겠지요. 그리고 차창 옆을 지나는 산과 들판과 강은 그저 동해와 설악산에 가는 도중에 스쳐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이 자연 정복자들이 가르쳐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면서 마치 자신이 정복자의 한 일원이 됨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동해를 찾아 설악산을 찾아 떠나는 자동차 여행은 자연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영동고속도로의 휴게소, 동해의 콘도와 호텔이라는 문명을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자연은 배경으로만 있고, 단지 소비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여주 신륵사 옆의 끝없는  모래사장과 수양버들을 기억하지 못한 그들은 이제 서울에서 고속도로 타고 1시간 30분 걸리는 특정 ‘기호’ 로서 여주, 러브 호텔이 즐비한 여주 근처 남한강가, 그리고 맛있는 한정식 집이 있는 여주 어디어디 만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버스타고 굽이굽이 도는 길을 따라 한시간 넘어가던 소백산 죽령의 비포장길 옛도로, 우리 아버지가 일제말 중앙선 철도 공사 중에 걸어서 지나갔던 10리 죽령 터널, 우리 할아버지가 1930년대 조랑말타고 한양 구경하러 넘었던 소백산의 옛길, 우리 고조 할아버지가 과거시험 보러 괴나리 봇짐지고 넘었을 죽령의 기억은 이제 산 허리를 보기 좋게 관통하는 중앙도속도로의 위세 앞에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심어놓은 골프장의 잔디, 콘크리트 콘도 건물, 아스팔트 주면으로 자동차들이 왔다갔다 합니다. 제국의 문명은 이제 우리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제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제국의 문명은 우리마음 속에 남은 한 가닥의 자연의 교감의 기억도 모두가 쓸데 없는 낭만의 흔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오늘 꿈 속에서 한국의 자연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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