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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광순씨의 이유있는 고자질을 소개한다  

여성의 눈으로 그린 '한국에는 남자들만 산다' 책내  

이명옥  
  
서방을 팝니다.
헌 서방을 팝니다.

반 백 년쯤 함께 살아
단물은 빠져 덤덤 하겠지만
허우대는 아직 멀쩡합니다

키는 6척에 조금은 미달이고
똥배라고는 할 수 없으나
허리는 솔찬히 굵은 편
대학은 나왔으나
머리는 깡통입니다.

직장은 있으나 수입은 모릅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출근하고
밤늦게 용케 찾아와 잠들면 그뿐
잔잔한 미소 한 번,
은근한 눈길 한 번 없이
가면 가는 거고 오면 오는 거고
포옹이니 사랑놀이니
달착지근한 눈맞힘도
바람결에 날아가버린
민들레 씨앗된 지 오래입니다.

음악이며 미술이며 영화며 연극이며
두눈 감고 두 귀 막고
방안의 벙어리된 지 오래입니다.

연애시절의 은근함이며
신혼초야의 뜨거움이며
생일이며 결혼기념일이며
이제는 그저 덤덤할 뿐
세월 밖으로 이미 잊혀진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일 뿐
눈물방울 속에 아련한
무늬로 떠오르는 무지개일 뿐
추억줄기일 뿐.

밥먹을때도 차 마실때도
포근한 눈빛 한번 주고받음 없이
신문이나 보고 텔레비나 보지
그저 담담하게 한마디의
따끈따끈한 말도없고.

매너도 없고, 분위기도 모르는지
그 흔한 맥주 한잔 둘이서
나눌 기미도 없고...

일요일이나 공휴일의
들뜨는 나들이 계획도 없이
혼자서 외출하기,
아니면 잠만자기.

씀씀이가 헤퍼서 말도 잘해서
밖에서는 스타같이 인기있지만
집에서는 반 벙어리,
자린고비에다 술 주정꾼
서방도 헌 서방이니
헐값에 드립니다.

사실은 빈 가슴에 바람불고
눈 비 내리어 서방팝니다
헐값에 팝니다

주정거리듯 비틀거리며
말은 하지만 가슴에는 싸한 아픔
눈물 번지고 허무감이
온 몸을 휘감고돌아
빈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서방팝니다

헌 서방팝니다며 울먹입니다.
흩어진 마음 구멍이 송송 뚫린듯한
빈가슴을 두드리며
안으로만 빗질하며 울먹입니다.
*

각시를 팝니다
헌 각시를 팝니다.
반 백 년쯤 함께 살아
단물은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껍데기는 아직 쓸만해
보이기는 합니다.

키는 5척이 조금 넘고
똥배라고는 하기에는
너무도 가슴이 아프지만
배꼽찾기가 조금은 어려운 편,
가끔은 화장실에서 나와서는
어지럽다고 합니다.

대학은 나왔으나 머리는
완전히 깡통입니다.

직장도 없으면서
돈은 나보다 더 씁니다.

낮에는 종일 퍼져 자는 것 같고
밤늦게서야 잠안자고
세탁기며 청소기 돌립니다.

깜찍한 눈웃음 한 번,
애교스런 코맹맹이 소리도
이제는 듣기조차 어렵고
눈만 마주치면 돈 타령입니다.

매일 출근때 마다 현관에서
뒷통수가 아립니다.

포옹이니 사랑놀이니
하던 예전 생각에
들쩍지근한 볼맞춤이라
한번 해줄라 치면 아랫배에
먼저닿는 묵직함에
볼은 너무도 멉니다.

젖꼭지는 왜 아래를 보고 있는지...!
음악이며 미술이며 영화며
연극이니 하는 것 보다
백화점 바겐세일하는
날짜 꼽는 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

연애시절의 애교스러움이며
신혼초야의 간지럼타는
척하는 내숭도 사라지고
생일이며 결혼기념일이라도
다가오면 며칠전부터
밖에나가 밥사달라,
선물사달라는 독촉기념일일 뿐

밥상머리라도 앉을라치면
애교 띤 눈길로
반찬 골라집어주는 것도 없이
옆집에 들여 온 새 가구며,
아이들 과외비 타령입니다.

그저 내용없는 수다로
애들 친구네 엄마 험담이 우선합니다.

벌써 동네아줌마들 다섯번씩은
돌아가며 다 씹혔습니다.

모처럼 분위기한번 잡아볼라꼬
집에서 소주 한 잔이라도 부탁할라치면
잔소리가 먼저 쏟아집니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모처럼 집에서 좀 쉴라치면
한쪽 구석에서
궁시렁대는 소리하며
부엌에서 설겆이하는
소리가 유별납니다.

애들 학교 자모회 같은데는
안 빠지고 미시같이 옷자랑하는지
동네를 한바퀴 돌아 들어오면서
집에서는 북데기 보릿자루!
구멍난 서방 트레이닝복
바지에 내의도 없이 티셔츠만!
냉장고에는 엊저녁 김치사발이
뒤척임도 없이 그대로 입니다.

각시도 헌 각시니 헐값에 드립니다.

사실은 빈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아
예전에 잊었던 애인될 뻔했던
동창생이 그리워져서는 각시팝니다
조금 싸게 팝니다

평소 한대 콕 쥐어박아 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도로 죽음이!
괜히 가슴이 허전하고
허무감이 온 몸을 휘감고돌아
빈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각시팝니다

하면서 허공에다
담배연기에 섞어 흐트려봅니다.

아쉬움 마음, 웬지 걱정이
더 앞설것만 같은
허전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곪고 삭은 한숨을 내 쉽니다.

하지만 쓸어안고 같이 넘어야할
인생고갯길의 동반자라
앞서 한 말 모두 거둘랍니다. (이향봉)

<사랑하며 용서하며>, <생활선 당신도 부처가 될 수 있다>, <움직이는 것은 아름답다> 등의 책을 쓰신 이향봉님의 시다. 헌 서방을 판다는 각시나, 헌 각시를 판다는 서방이나 모두 세월이 흐르면서 낡아진 사랑을 아쉬워하는 필부필녀의 이야기이다. 인터넷 여기 저기에 퍼날라져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모양이다. 짐작컨대 아마도 이향봉님은 남편에게 실망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한숨이나 아내에게 실망하는 수많은 남성들의 아쉬움을 접하고 그들이 소통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당신이 실망하는 상대에게도 아직 뜨거운 구석이 남아있으니 실망하지 말고 소통하며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 모양이다. 이향봉님의 따듯한 마음에 동감하며 이렇게 소통해볼 것을 제안한다.


서방님
당신을 팔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허우대는 멀쩡해도
책 한 권 보지 않고
아침에 겨우 일어나 출근하고
밤늦게 용케 찾아와 잠들면 그뿐
잔잔한 미소 한 번,
은근한 눈길 한 번 없이
가면 가는 거고 오면 오는 거고
포옹이니 사랑놀이니
달착지근한 눈맞춤도 입맞춤도 사라져버리고

연애시절의 은근함이며
신혼초야의 뜨거움도 사라지고
밥먹을때도 차 마실때도
포근한 눈빛 한번 주고받음 없이
신문이나 보고 텔레비나 보지
그저 담담하게 한마디의
따끈따끈한 말도 없을 때
당신을 팔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
오호라... 그랬었군요.
회사부도, 불경기 걱정 걱정 걱정...
당신의 정신을 모두 빼앗아가니
아내도 배고플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함께 먹자고 권해주셔요.
마누라도 먹어야 살고 함께 먹어야 더 힘이 날테니.

에구구... 그랬겠지요.
가뭄걱정, 홍수걱정, 병충해걱정...
당신의 에너지를 모두 빼앗아가니
불타는 밤, 뜨거운 말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나 한숨 속에라도 촉촉한 미소 한 번 보여주셔요
타는 내 가슴도 조금 식어지게요.

휴우우... 그럴겁니다.
감원걱정, 학원비걱정, 승진시험걱정...
머리는 굳어가고 몸은 무거워
섬세하고 감미로운 말씨, 맘씨 모두 모두 사라졌군요.
푸석해진 당신 가슴 부서지면 어쩌나요.
내 눈물로 당신 가슴 적셔 줄께요.
내다 팔고 싶었던 당신, 내 가슴으로 안아줄께요.

*
각시님
당신을 팔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허우대는 멀쩡해도
책 한 권 보지 않고
낮에는 종일 퍼져 자는 것 같고
밤늦게서야 잠안자고
세탁기며 청소기 돌립니다.
깜찍한 눈웃음 한 번,
애교스런 코맹맹이 소리도
이제는 듣기조차 어렵고
눈만 마주치면 돈 타령입니다.

젖꼭지는 왜 아래를 보고 있는지...!
음악이며 미술이며 영화며
연극이니 하는 것 보다
백화점 바겐세일하는
날짜 꼽는 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
집에서는 북데기 보릿자루!
구멍난 서방 트레이닝복
바지에 내의도 없이 티셔츠만!
냉장고에는 엊저녁 김치사발이
뒤척임도 없이 그대로 입니다.

*
아하... 그랬었군요.
다섯 살, 두 살배기 고목나무 매미 붙듯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변비가 생겼다구요
잠자리에 눕는 때가 당신의 퇴근시간이고
아침에 눈뜨는 때가 당신의 출근시간이었지요.
그러나 고된 근무중이라도 윙크한번 보내주세요
아이들에 질투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아뿔사... 그랬겠지요.
시어머니, 시아버지, 친정엄마, 친정아빠
노쇠하고 병약해져 당신 손만 기다려
어느 결에 미술, 음악, 영화 가까이 하겠나요
그러나 붉은 노을 내 팔짱끼고 바라봐요.
빛바랜 내 가슴도 붉어질 수 있게요.

아무렴... 그럴겁니다.
둥그런 똥배는 새 생명을 품었던 아름다운 흔적이구요
야무졌던 젖꼭지는 아기들의 신비로운 생명줄이었지요.
김치사발 뚜껑 안 덮은 건... 엇! 내가 한 짓이었군요.
소통 안되는 아이들과 힘들었지요? 이제 소통되는 나와 함께 이야기해요.
막혔던 우리 가슴 통하게 해요. 멈췄던 우리 사랑 흐르게 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합니다.



▲고은광순씨의 출판기념회 모습     ©이명옥  
호주제 폐지 운동을 6년이나 해 온 고은광순씨가 ‘한국에는 남자들만 산다’라는 의미심장한,  남자들이 모르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진솔한 언어로 펼쳐냈다.

개중에는 고은광순씨를 오해해서 극렬 페미니스트의 대명사나 되는 양 몰아 붙이지만 내가 만나본 그이는 솔직하고 담백하며 눈물 많은 이름 그대로 고은 사람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처음 책 제목을 접하며 까닭없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분들은 제발 속는 셈치고 한번 읽어주실 것을 권한다.

이 책을 소개하는 본인도 그 거부 반응자에 한사람이었으므로...

세상이 절반인 여성이 노예처럼 이등인간으로 취급되거나 소수권자여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 한번쯤 되짚어 볼 가치가 있다.

그이는 그이가 접한 또는 이 시대 정치권을 비롯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비인격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을 살아있는 언어로 조명해 준다.

그 책을 보기 전까지 “설마 그렇게까지야...”라던 의혹이 일시에 불식될 것이 확실하다.

그이는 결코 불합리하거나 비이성적인 요구를 하지 않음도 그책을 통해서 알게 되리라.

그이가 원하는 세상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이미 와있어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눈높이를 마주하고 소통과 연대를 이루며 나란히 걸어가자는 일에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닐까?

그이는 결코 성 차별주의나 여성 우월주의자가 아니다. 그저 같은 인격체로 참된 사랑을 나누며 소통하는 사회, 모두 함께 발전을 꾀하는 진정한 ‘윈윈게임’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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