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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마녀 사냥은 끝나지 않았는가?



감리교 신학대학의 두 여교수 임용탈락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입학을 앞둔 지금까지 재단측의 입장이 바뀌지 않아 감리교 여성민주화 운동의 대모격이신 조화순 목사님을 필두로 결성된 공동 대책위원회와 범여성단체들이 연합하여 매주 목요일마다 평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모습 ©이명옥


여성들은 결코 폭력, 무력, 부당한 권력을 등에 업고 부적절한 것을 얻어내려 하지 않는다.

대화와 소통과 연대를 통해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차별 없는 사회, 인류 평등의 양성 사회를 실현시키고자 할 뿐이다.

이 사건이 끊임없는 마녀 사냥과 여성 차별의 수치스러운 역사에 막을 내리고 새로운 양성평등의 장을 여는 획기적인 일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라며 우리의 꿈이 시현되는 그날까지 여성들은 연대할 것이고 대화할 것이고 소통을 시도할 것이다.

감신대 사건을 통해 인류 역사 이래 끊임없이 반복된 '이브 왕따시키기'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이브의 죄명은?

감신대 두 여교수 임용 탈락 사건은 인류역사 이래 이런 저런 미명하에 자행되었던 마녀사냥의 연속에 다름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늘 사용하던 아담들의 뻔한 권력수호 수법의 반복인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인간으로서의 자각이 시작된 순간 아담은 하나님이 두려워 숨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던 그 물음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있는 곳을 진정 몰라서 물으셨을까?

아담에게 자신의 위치와 책임의 소재를 물으셨을때 아담은 처음부터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이며 책임을 회피한다.

선악과를 따먹은 책임을 아담은 이브를 만난 날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고백했던 입으로 아래와 같은 궁색한 변명을 하게 된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선악과 사건 이후, 늘 계속되어온 아담들의 궁색한 변명의 레퍼토리는 지금도 단 한마디도 변한것이 없음이 오히려 서글프다.

이번 감신대 사건을 접하면서 인류의 조상인 이브의 진정한 죄명이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게 된다.

감신대 두 여교수 임용 탈락 사건도 이브의 선악과 사건에 다름이 아니다.

당연히 여교수들의 위상도 높아져야 하고, 그들도 지식의 나눔에 함께 동참해야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다만 아담의 후예를 자처하는 남성들이 그 나눔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이브의 알고자 하는죄, 사람 같아지고자 하는 죄명을 거론한 것 뿐이다.

그렇다면 이브의 죄명은 과연 무엇인가?

이브의 죄명은 이른바 알고자 하는 것,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 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원대한 계획의 일환으로 정해진 수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그 거대한 계획의 일환으로 선악과를 두셨다.,언젠가 인간이 자각에 의해 로봇같은 존재가 아닌 자유의지를 통한 자각, 그 후의 인간경작 과정을 통해 선악을 모두 경험한 뒤 선, 진리, 사랑의 소중함을 알고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사랑과 존경과 감사가 담긴 마음 중심의 순종과 사랑을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드릴수 있는, 그런 자녀를 당신의 사랑을 나누는 대상으로 삼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인류의 범죄, 아니 이브의 선악과 사건은 그래서 하니님이 형상을 완전히 닮아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했던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그 과정을 통하여서 인류는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비로서 인간으로서의 참 공부를 시작한 셈이니 인류는 이브 할머니의 탁월한 선택에 감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선 인간을 이 땅에 유학 보내시곤 그들의 지적 성장 과정에 눈길을 떼지 않으시고 사랑과 관심을 가지시고 지켜보시고 보혜사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사 진리를 깨우쳐 주시고 마땅히 빌 바를 알게 하시는 따뜻한 위로도 잊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럼 우리의 할머니 이브가 죄인이었을까?

아니다, 이브 할머니는 인류 경작의 시간을 앞당겼을 뿐이다.

사실 그녀는 아담 할아버지보다 지혜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하고 적극적이었다.

언젠가 거쳐야할 과정을 지혜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이브 할머니가 먼저 문을 열었을 뿐이다.

그 결과 인류는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축복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지만 축복의 길을 연 이브 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담을 타락시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한 존재요,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일해야 먹고 살도록 저주를 받게 한 장본인으로 지금까지 원망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으면 인류는 영원한 참 행복을 알지 못한 불쌍한 존재였을 것이다.

어느 부모가 세상이 험하고 공부는 힘이 드니 그저 어린아이의 모습대로 늘 보호받으며 평생을 로봇처럼 살아라 내가 너를 어린아이로 성장을 정지 시킨 채 먹이고 입히겠다. 할 것인가?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힘든 공부나 세상의 갖가지 어려움을 어찌하든 자녀 스스로 통과하기를 바라며 격려에 앞서 사랑의 매서운 꾸짖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이브 할머니의 선택은 탁월했고, 그 탁월함으로 인해 마녀 사냥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번 감신대 사건의 주인공들에 대한 처우도 그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눈에 드러나는 이브의 성장은 용남하지 않겠다는 아담의 의지의 반영일 뿐인....

성경에 나타난 여성들을 더듬어 보며...

비겁자 아담들의 행적은 성경 곳곳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와 더불어 진정한 의미로 주님을 이해하고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과 신앙심 깊은 여성들에 대한 기록 또한 성경 곳곳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기록들을 더듬어 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으로 인해 이웃 여러 나라에게 박해와 학대를 받을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두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 하셨다.

그 중 에훗의 아내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사사로 백성들의 재판을 주도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용감한 사사이다.

드보라가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아비노암의 아들 발락에게 납달리 자손과 스블론 자손 일만명을 이끌고 나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과 결전할 것을 명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여 승리를 주신다고 약속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겁쟁이 발락은 드보라 선지자에게 같이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노라고 말하고 드보라 선지자는 함께 동행하며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너는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드보라 선지자의 말대로 시스라는 야엘이라는 여인의 손에 붙여져 죽음을 당하였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살린 왕비 에스더는 어떠했던가?

인도부터 구스까지 대제국을 다스리던 아하수에로 왕의 두 번째 왕후였던 에스더는 고아출신의 유대인이었다.

그의 삼촌 모르드개를 질투하던 하만이라는 대신은 유대인 모두를 멸할 계획을 세우고 왕의 승인을 얻어 결행을 하기에 이른다.

모르드개는 왕비 에스더에게 왕앞에 나아가 목숨을 담보로 유대인을 구할 것을 간청하고 에스더는 삼일 금식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으로 왕앞에 나아가 유대 민족을 살려내 성경의 한권을 기록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예수를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는 또 어떠했나?

그 당시 율법으로는 동정녀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각오가 아니면 주의 임하심을 순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이루어 지이다.” 고백하였고 인류의 대속자 예수님께서 대리모 마리아의 배를 빌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렸던 마리아 또한 2000년 전 중동의 역사를 상기해 보면 모든 비난과 조롱과 힐책을 감내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던 용기있는 행동으로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그녀의 아름다운 행함이 함께 전파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장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도망하고 멀리서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때 골고다 처형장에 끝까지 함께 한 이들도 여인들이었음을 상기하자.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신 부활의 첫 새벽 부활의 주님을 맨 처음 뵈온 영광을 누린사람 또한 전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고 목숨다해 사랑하며 따랐던 여인 막달라 마리아의 몫이 었다.

로마의 기복교 박해 시절 복음의 숨은 전파자들이요 도움자들 또한 로마의 귀부인과 여인들이었으며 구 한말 천주교가 전파되었을 때 대원군 부인 민씨를 비롯하여 복음을 영접한 믿음의 여인들의 뿌리가 지금의 1200만 기독교 신자를 만들어 냈음을 그 누가 부인할 것인가?

그렇다면 현재 기독교인의 비율은 또 어떠한가?

아마 80% 정도는 여성신도일 것이다.

그런데 기저귀 운운하는 해프닝이나, 성차별에 의한 교수 임용 탈락이라는 시대와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일들이 법의 이름으로 지금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다시 한번 인류 역사의 계보를 묻다.



인류 역사 시작의 문을 누가 열었던가?

모계사회였던 과거를 논하고 싶지 않다. 현재 과학이 증명하는 대로 인류 역사 발전에 여성의 공이 훨씬 크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다시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아담들에게 묻고 싶다. 자신은 누구의 배로부터 나왔는가? 누구의 젖을 먹고, 사랑을 먹고, 인간의 전반적인 인격이 형성되는 5세 이전을 보냈는가?

당신을 키운이는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치리 영역을 다 보살피시지 못하여 만드신 또다른 하나님의 마음이요 눈인 것이다.

이 시대의 바리새인이요, 율법학자요, 서기관들이신 아담들께 여쭙고 싶다.

예수의 고난의 삽자가 아래, 복음 사역 현장에, 부활의 현장에 누가 있었던가?

이제 다시 한번 진지한 물음을 이 시대의 아담들에게 던지고 싶다.

주께서 잡히시어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날에 “아담들이여,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 그 자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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