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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 님, 안녕하세요?
봄비가 기분 좋게 내리네요. 아침부터 지금까지 마당에 꽃을 심었답니다. 꺾꽂이가 되는 나무의 가지들을 얻어다 심었습니다. 배나무도 한 줄기 심었는데 살아날까 모르겠습니다.

이제 님의 글을 보고 아주 의기소침하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듯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답글을 올립니다.

저는 '어린이글쓰기' 지도를 이렇게 합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품성을 가꾸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시를 외우게 하지 않고 윤동주 선생의 시를 많이 읽고 또 그 시대 시인들의 시를 읽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 프린트로 나누어주는데 집 식탁 유리 밑에 넣어두고 매일 밥 먹기 전에 읽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고전에 나오는 시 가운데서 지은이가 시를 지을 당시의 나이가 우리 어린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쓴 게 있으면 그것을 외우고 모방시를 쓰게 합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시는 읽은 다음에 그림으로 표현하고 다음에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글을 씁니다.

감상문은 독서, 미술, 음악 감상문을 씁니다. 절대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모델'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겨울방학 특강 때에 4학년 남자 어린이가 '운명 교향곡'을 듣고 쓴 글을 보고 참 놀랐습니다. 어린이가 제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운명이 뭐예요?"
  "글세, 운명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절대로 비켜가지 못하고
   맞서 싸우고 지나가야 하는 많은 일들인 것 같아."
  대단히 부족한 대답이었는데 그 아이는 감상문을 참 잘 썼더랬습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운명'은 첫 부분이 마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천둥이 치는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호랑이가 먹이를 낚아챌 때처럼 빠른 음악이다. 그런데 기분 좋을 때 듣는 것보다 슬플 때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첫 부분은 그렇지만 마지막 부분은 어둡기 때문이다.
  이 음악에는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슬픔과 기쁨과 행복과 괴로움이 들어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아이가 이번 학기부터는 올 수 없답니다. 센터 시간표가 바뀌어서 영어학원 시간과 겹친다는 겁니다. 이 아이는 글은 잘 쓰지만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엉망인 어린이인데 우리말 쓰기가 영어공부 때문에 밀렸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항상 분개하는 부분입니다.

음악이나 미술 감상문을 쓸 때는 음악회와 미술전람회에 갔을 때에 지켜야 할 예의도 가르치고 그것을 또 쓰게 합니다.

식물 공부를 많이 합니다. 화분을 사 가지고 가서 그 꽃이나 식물에 관한 지식을 내가 이야기로 풀어줍니다. 그리고 정리해서 쓰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 속의 인물들의 업적이나 어린시절 에피소드와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고 또 정리하라고 합니다. 신문 사설을 함께 읽고 유사한 기사를 쓰게 합니다.

세계지도와 우리나라 지도를 펴놓고 지명과 거리감을 익히고 특산물과 풍습 등을 이야기해 주고 쓰라고 합니다. 인기 드라마를 이용합니다.
'대장금'을 다 알고 있기에 우리 '한과' 세트를 가져가서 이름을 다 외우게 하고 만드는 법과 맛을 쓰게 했습니다.

생활문을 쓸 때는 글감이 없다고 하는 어린이가 많은데 한 가지 이야기를 정하게 하고는 어린이마다 겪은 일을 앞에 나와서 발표합니다. 내가 먼저 많은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상황이나 당시 사물을 보았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고 발표력을 키워줍니다.

봄, 여름, 가을에는 야외수업을 했습니다. 가까운 공원에 가서 또 식물에 관한 글을 씁니다. 한자공부도 합니다. 회의 자를 외우게 합니다. 예를 들면 쉼휴(休)를 가르치고 옛 사람은 나무 아래서 쉬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어디서 쉬는지 쓰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글의 구성을 가르치지만 틀에 매이지 않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매일 공부합니다. 퇴고(堆敲)의 어원을 설명하고 자기 원고를 여러번 퇴고하여 좋은 글은 한 번에 얻는 게 아니라고 이해시킵니다. 그리고 또 많은데 다 쓸 수 없네요. 매번 쓰기 전에 토론을 하면서 아름답고 바른 언어를 습관으로 익히도록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학기(6개월)가 끝나면 문집을 만들어서 나누어줍니다. 이것은 센터 측에 무지막지하게 좋은 광고가 됩니다. 문집을 만들어서 학교마다 나누어주고 은행, 병원...... 뭐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갖다 둡니다. 그리고 문집 뒷면에는 문화센터 어린이프로그램을 다 소개합니다.

제가 서울서는 그렇게 했습니다만 여기서는 아직 못했습니다. 방학특강은 12회 강의라 맛보기였습니다. 얌체 엄마들은 글쓰기는 방학특강 때만 오겠다고 합니다. 어째서 우리말 쓰기를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는지요. 이젠 절대로 방학특강은 하지 않을 겁니다.

센터 측에서 특강 때 한 시간에 30명의 수강생을 접수해 놓았는데 하루에 60명의 어린이를 두 시간에 걸쳐 지도해야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인원의 두 배였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모자라서 수업을 연장하고 90분 동안에 30명의 어린이들에게 글 한편씩 쓰게 한 뒤
나는 또 그 30 편의 글을 읽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교정해주고 문장을 첨삭하면서 바른쓰기를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쉬는 시간 없이 90분 수업이었습니다.  

아이구, 속상해 못산다.  나는 대구가 싫습니다. 새학기 봉사 끝나면 쓰기 지도와는 결별하고 싶습니다. 아이고, 이런 글 여기 올려나 되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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