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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대 의장, 가시는 뒷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정재돈
                                          (고 권종대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호상,
                                                                      한국가톨릭농민회 회장)

권종대 의장은 식민지 나라에 태어나 해방정국의 혼돈과 전쟁을 겪으시고 분단된 조국에서 미국과 군사정권이 이 땅의 민중을 혹독하게 탄압하는 고난의 한 시대를 투쟁으로 사셨습니다. 한국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장과 전국부회장을 거쳐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초대·2대 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초대·2대 상임의장을 지내면서 우리 농민운동의 역사와 더불어 자주·민주·통일 운동의 중심에 서셨던 권종대 의장. 선생께서는 수배 중에도 각종 회의와 집회에 등장해 한창 빛을 발하던 그 무렵, 돌연 간암이라는 병을 얻어 고향집으로 낙향하셨지요. 술 담배도 마다하고 일밖에 모르셨던 선생께 불안정한 수배생활과 복잡한 조직활동의 스트레스가 선사한 잔인한 선물이었습니다. 처음 대수술 후 6년만에 재발하여 그 해 한번의 색전술, 다음 해 두 번, 작년에 세 번, 그런 와중에서도 무슨 심포지움이다 세미나다 자료 좀 구해 보내달라고 하셨습니다. 구해 보내드리면 밑줄 그어가며 읽으시고 인터넷을 통해 매일 운동판 돌아가는 모습을 낱낱이 보고 계셨지요. 12월초 마지막 시술 후에도 제게 전화를 하셔 신영복 선생께서 하신 '황해문화' 대담내용이 좋으니 한번 보라고 하시더니, 연하장대신 저희 식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가며 신영복 선생 그림달력을 보내주셨어요. 답장으로 연하장을 써 놓고 부치려 할 때, 안동에 계신 선생의 숙부의 전화를 받고 삼성병원으로 달려 가보니 벌써 혼수상태이셨습니다. 가족들의 정성어린 간병 덕분에 정신은 드셨으나 회복이 힘들다고 판단하신 선생께서는, 장례를 간소하게 준비하라고 하시고 여러 날 째 곁에서 밤잠 새우던 가족들이 애처로우셨던지, '일체의 투약을 중지해라. 이런 것도 필요 없다. 이제 끝내고 가자'며 산호호흡기를 당신 손으로 벗기신 지 4시간만에 운명하셨습니다. 이번에도 곧 일어나시려니 했는데 믿기지 않았습니다. 보내지 못한 연하장은 어디로 보내야 하나요? 그러나 가시는 마지막 모습조차 권종대 의장답게 아름다웠습니다.  
    
'권종대 의장께서 10년 가까이 운동현장에 나서지 못한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빈소를 찾아주시고 영결식에 자리를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민주사회장으로 장례위원회를 꾸리고 여러 날 온갖 절차와 실무를 맡아오신 관계일꾼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렸을 적에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오면 늘 엄마가 계셨던 것처럼 권의장도 늘 그렇게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몸이 편찮으셔도 늘 거기 그 자리에 웃으면서 계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시니까, 처음에는 늘 계시던 엄마가 없는 빈집에 들어왔을 때처럼 와락 외롭고 슬프고 두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며 권종대 의장과 뜻을 함께 하시던 많은 분들을, 수많은 권의장의 분신들을 뵙게 되어 오히려 힘이 납니다. 이제 권종대 의장을 떠나 보내면서 우리 모두 권종대 의장이 그리울 때마다 우리 안에 그분이 살아 숨쉬게 하여, 그분의 유지대로 우리운동의 주체를 옳게, 우뚝 세우는 일에 힘씁시다. 감사합니다.' 2004년 1월6일 저녁 영결식 및 발인제 때 호상 인사를 이처럼 하고 많은 조문객들을 뒤로하고 장의차에 올랐습니다. 밤새 경북영덕 관어대 장지를 향해 달리면서 주마등처럼 권종대 의장과의 살아온 길을 거꾸로 달렸습니다.

첫 만남이 당시 천주교안동교구 농민사목부로 제가 가자마자, 1977년4월 22일 광주 계림동성당에서 열린 '함평고구마 피해보상을 위한 기도회'에서 였습니다. 함평 고구마사건은 당시 관제 농협의 부조리한 실상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며, 생존권적 요구마저 물리력으로 억압하던 유신독재의 한 단면이었습니다. 600여명의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기도회를 마치고 농협 전남도지부장을 면담하기 위해 거리행진에 나섰으나, 경찰이 차단하는 바람에 각자 흩어져 농협도지부에 재집결하여 도지부장 면담요구 연좌농성을 했지요. 모두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들은 정의파다' 등 노래를 하다가 전경에 의해 강제해산 당하고 몇몇 대표들만 도지부장과 면담할 수 있었습니다. 경북 영해에서 천리 길을 달려온 선생이었습니다. 그 후 제가 경북일대 마을 실태조사차 영해에 들렀지요. 한국전쟁 시기에 남편이나 아들들이 빨치산으로 산에 갔다가 죽거나 월북하여, 한 날 제사가 있는 집들이 많았고 과부들만 사는 집도 여럿이었습니다. 해마다 장을 담을 때, '아지매요, 식구도 없는데 왜 그리 많이 담그나?'하고 물으면 '언제 올동 아노!'하며 수십 년 세월 북에 간 식구를 기다려 왔었구요. 그런 속에서도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 창간사를 헌장처럼 외우며 공동 모내기를 하는 마을 분위기를 전해듣고 놀랐었습니다. 당시 영덕여자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하시던 선생께서는 여러 잡지에 실렸던 유인호, 김병태, 박현채 선생 등의 각종 농업문제관련 논문들을 두껍게 모아 철해 놓고 계셨어요. 그 때 선생께서 과학적인 인식과 실천을 갈구하시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만난 후부터 영덕엘 자주 드나들게 되고 선생께선 안동이다 대전이다 출입이 잦아 지셨습니다. 그때 영덕에 제가 가기만 하면 큰딸 호경이가 해주던 닭백숙이 그렇게 맛있고 정겨웠습니다. 그 무렵 크리스챤아카데미 농민교육과정에 추천하여 다녀오시고는 좋은 분들 만나게 되었다고 얼마나 신나 하셨습니까? 경북북부에 안동 가톨릭농민회를 창립하고 당시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음에도 초대 회장에 뽑혀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에 뛰어 들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버스나 교통수단이 안 좋을 때라, 해가 지면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생전 보도 듣도 못하던 마을을 찾아 깃들어 통성명하고 밥 얻어먹고 술 한잔씩하며 같이 자면서 얘기를 나누며 만리장성을 쌓았지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동지로 만들었으니 운동에서 사람이 중요하다는 전통을 몸으로 배울 수 있었지요. 안동농민회관을 지어 그곳에서 3박4일이나 2박3일 짜리 농촌지도자연수회를 이십 몇 차까지 하면서 강의하고 밤새 토론하기를 몇 날 며칠이었던가요? 전인적인 만남과 교육이 되어야 한다며 평가회를 철저히 하고 뒷날 일하는 사람을 위해서 각종 보고서도 늘 챙겨 두셨지요. 그리고 수료생들 찾아 함께 출장 다닐 때, 한 여름 땡볕에도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어요. 하염없이 걸으며 '현지지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셨고 함께 개울에 뛰어들어 목욕도 하던 그 시절, 아름답던 추억이 되살아나 굳었던 마음이 풀어집니다. 전국쌀생산자대회를 영호남과 중부로 나눠 순회 개최할 때, 실무자였던 저보다 더 세세하게 점검목록을 작성해서 하나하나 준비하시던 모습은 그 뒤로 내내 일하는 사람의 자세에 귀감이 되셨습니다. 그 때 상주 함창일대에 농민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릴 만큼 농민회가 확장되어 갔고 함평고구마피해보상에 이어 영양 청기감자피해보상운동이 성공하여 전국에 알려지자 이를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유신정권 당국에 의해 세칭 '오원춘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어요. 연행되던 그 날도 예천 대죽마을에서 현지교육이 있었지요. 대구 대공분실에 같이 연행되어 조사 받을 때 오원춘 형제가 조서용지에 써서 전해온 소위 '제2의 양심선언'을 밖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 둘 중 누가 하나 나가야 했는데, 그 때 그 일로 선생은 수배를 받고 여러 날을 피해 다니셔야 했구요. 덕분에 제가 감옥에 있는 새에 농부 '이시돌'이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으셨더군요.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농민회는 탄압을 받을수록 성장했습니다. 광주항쟁을 봉우리로 해서 민족민주운동은 한 단계 발전했습니다. 그 때 조직을 정예화한다고 학습을 강화할 때, 문건 하나라도 정독하며 단어 하나라도 정확한 개념을 공유하자고 돌아가며 자기가 이해하는 뜻을 토론하여 자기화시키던 선생의 학습방법은 지금 생각해도 가장 민중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제국주의와 군사정권의 모순이 격화되던 그 즈음은 탄압과 고난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민중의 힘이 분출되는 시대였습니다. 선생께서 앞장서 외국농산물수입저지를 외치던 소몰이 투쟁이 그랬고, 전후 최초로 미국대사관을 향해 경운기를 타고 봉기하던 전국동시다발투쟁전술을 구사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1987년 6월 각 지역 민주대항쟁의 선봉에 서셨고 7,8월 노동자대투쟁에 이은 농민들의 고추투쟁, 수세투쟁으로 농민대중의 투쟁적 진출이 새 날을 재촉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탄생한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의장 시절, 사무실에 쪼그리고 주무시던 날이 그 얼마던가요? 많은 명망가들이 현실정치로 빠져나간 뒤에 7전이라 불리던 주요 전국단체와 전 지역운동을 포괄해 다시 결성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상임의장 시절, 수배는 떨어지고 몸 둘 거처 하나 없이 빈민연합 비닐하우스에서 전전하던 날은 얼마인가요? 선생께서 앞장서셨던 민중들의 투쟁으로 이제는 민주세력이 정권을 담당할 만큼 정치민주주의는 조금씩 크게 진전되었고, 미국의 억압적 실체가 공공연히 폭로되었으며 국민의 자유는 크게 신장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다수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과 실업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선생께서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우리 농업은 날이 갈수록 무참히 파괴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가 반대하는 전쟁을 백주 대낮에도 일으키고 지구와 생명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미국의 핵전쟁도발 위협과 무역전쟁압력에 떨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마지막까지 그토록 안타까워하시던 우리 운동의 주체는 민족민주운동의 전략단위 전선체나 정당은 아직 채비를 못 갖추고 있습니다.

관어대 상대산에 선생을 묻으며, 부끄럽게 옆에 서있기만 했던 저를 꾸짖었습니다. 찬바람 맞으며 술이 확 깨었습니다. 하산하여 선생께서 머무셨던 방에 혼자 앉았습니다. 최근 자료까지 편철되어 꽂혀 있는 책꽂이 앞에서 결심했습니다. 몸 아프다 핑계대지 말자구요. 이제는 나서 뜻을 이어가자고. 그리운 권종대 의장님! 이제 선생께서 사랑하셨고 제가 사랑하는 후배 함종호의 조사를 다시 드리고 싶습니다.

'이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사셨음에도 권종대 의장님은 온유한 성품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나이가 들어 우리 속의 분노와 적개심이 우리 자신에게도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권종대 의장님의 온유한 인격의 향기가 가진 의미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종교인으로 경건하였으며, 선비의 후예로 온유하였고, 농민투사로서 치열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 후배들의 인격적 귀감이 되었습니다. 내일 해는 다시 뜰 것이며, 제국의 억압이 있는 한 정의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며, 그러한 한, 권종대 의장님은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 계실 것입니다.'


- '농민과 사회' 200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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