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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4.04.18 17:14

[re]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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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으면 그립고 가까이 있으면 부대끼는 것.
그것이 '그리운 것' 아닐까요?
바깥에 있으면 그리운 게 어디 산천뿐일까? 그중 제일은 '동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동무, 길동무...등등의 동무.
저는 그럴때 '짝사랑'을 합니다. 좋아하는(했던)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저자에게 "당신은 행복한거야. 이렇게 나처럼 말귀 잘 알아듣는 독자를 가졌다니" 하면서 어딘가에 내가 공감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했었습니다.
설령 내가 그에게 미치지 못한들 어떠리 그게 짝사랑의 매력인걸....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마음 든든히 갈무리 하시어 '마음의 평화'
가꾸시길 빕니다.  




Name Memo      


>기다리는 마음
>
>외출에서 돌아와 주방으로 들어서는데 아내가 음식준비에 부산합니다.
>“아니, 무엇을 하는데 이리 분주해. 둘밖에 없는데 대충해서 먹지”하며 식탁에 앉는데 큰 상이 비좁게 갖가지 나물들이 나옵니다.
>“아니, 왠 나물들이야?”
>“그냥 했어요. 혹시 갑자기 손님이라도 오면 쓸려고 갈무리를 해 두었던 나물들인데 오늘은 당신에게 대접하려고요. 그리고 가을이니 다시 새 나물들을 말려야지.”
>오늘 저녁은 아내가 온종일 불리고 장만한 고사리, 도라지, 박나물, 호박나물과 아주까리 잎 대신에 볶았다는 깻잎나물하며 쇠고기고명, 계란부침까지 올려진 골동 반에 고추장 한 수저 넣고 비벼서 모처럼 전통 한식으로 먹을 것 같습니다.
>대청 서까래에 굴비를 걸어 놓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다 오래도록 손님이 오지 않으면 상하기 직전의 굴비를 내려서 식구들끼리 먹은 후 또다시 귀한 손님 몫으로 새 굴비를 사다 걸어두는 옛 인심이 이러하였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민 초기에는 몇 안 되는 이민자들이 아직 일정한 직업이 없이 관망하며 살던 때라 자주 모여 바비큐를 하며 서로 정보도 나누었는데 지금은 초기 이민자들의 반 정도가 호주나 캐나다로 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 바쁜 삶을 사니 만나서 함께 식탁에 앉을 기회가 흔하지 않습니다.
>둘만 먹기엔 나물이 너무 많다며 아내는 나물 밥이나마 함께 먹자고 이웃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
>지금 이곳은 가을입니다. 공원의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 낙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노라면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문수 역이 생각납니다. 문수는 영주에서 안동 쪽으로 한 정거장 아래에 있는 완행열차만 서는 조그만 시골입니다. 타고 내리는 손님이라고는 몇 되지 않는 한적한 곳이지요.
>기차에서 내려 목조건물의 아담한 역사를 나오면 한 줄기 흙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왼쪽 산자락으로 꺾어서면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농로가 나오고 이십여 분쯤 걸어 언덕 쪽으로 올라가면 ‘사느레 과수원’이라는 푯말이 보이며 양지바른 언덕 아래로 잘 자란 과목 숲이 펼쳐있습니다.
>붉은 사과와 봉지에 싸인 배가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 볕에 단맛을 더하며 익고 있는 과수원으로 들어서면 언덕길이 제법 시원스레 닦여져 있고 사과 밭 안에는 청포도 넝쿨이 얹혀진 아담한 과수원 집이 보입니다.
>이곳이 80년대 초, 추석이나 설 명절 때 귀성 표를 구한다고 청량리 역에 나가 이른 새벽부터 이리저리 밀리는 난장판 속에서 겨우 구한 열차표를 가지고 아내와 아들 손을 잡고 가던 처가입니다.
>과수원 진입로가 제법 널찍하게 닦여진 것은 이 마을에서 새마을 사업으로 길을 넓힌다고 할 때 선뜻 과수원 한 자락을 내어 놓으시며 사위가 승용차를 타고 내려올 때 과수원 안까지 들어오기 쉽게 해주어야겠다는 장인의 사위 사랑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러나 한국에서 차를 가져보지 못한 저는 어쩌다 힘들게 구한 표로 열차를 타고 내려가거나 아니면 버스로 내려갔을 뿐 한번도 잘 닦여진 그 길을 저의 승용차를 몰고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이곳 과수원은 여름 휴가철이면 내려와 농가의 바쁜 일손은 아예 나 몰라라 한 체 마치 별장지기가 상주하고 있는 별장에라도 내려온 양 백년손의 세를 늘어지게 누리다 올라가곤 했던 저의 세 식구의 피서지였지요.
>기본 차 삯의 3배씩이나 하는 암표라도 구한 후 내려간다고 전화를 드린 명절에는 아침부터 들며 나며 잘 익은 과일을 골라 따놓으시고, 또 사위에게 잡아줄 씨암탉도 점지해놓으시며, 당신은 한 모금도 못 드시면서도 사위를 위해 숙성시켜 놓은 과일 주를 꺼내놓으십니다.
>외손주의 세발 자전거도 사다 놓으시고 고목 자두나무에 그네 줄도 달아 두시고는 저희들이 도착하기 몇 시간 전부터 과수원 언덕에서 서성이시며 친정 나들이 온다는 딸과 백년손인 사위를 기다리셨지요.
>과수원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커다란 밤나무가 있어 추석 때면 밤송이가 벌어져 알밤이 내비칩니다. 사위와 손자에게 직접 따는 재미를 주려고 장대까지 준비하여 두시고 우리를 기다리시던 장인은 어쩌다 명절이 지나도록 가 뵐 수 없을 때면 과일 상자들을 수화물열차 편으로 올려 보냅니다.
>그러나 그 애틋한 사랑도 다 내려 놓으시고 우리가 이민 온 그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외아들인 처남이나 막내딸인 처제보다 맏딸인 제 아내와 저를 끔찍이도 사랑하신 장인을 생각하노라면 한번도 갚지 못한 당신의 사랑에 마음이 아픕니다.
>
>학교 주차장에서 ‘한솥밥’을 건네주면서 친구로서 다가오는 분이 있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으나 김형이 가지고 있으나 마찬가지야.”라며 글씨를 건네주고 웃으며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욕심 없는 그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그의 부엌에 걸리었던 글씨를 감탄하며 주방에 걸어놓기에 참 어울리는 글이다 라며 부러워하였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제 속에는 누군가 친구로 다가오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까요?
>기다리는 마음은 바라는 마음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순수한 마음입니다.
>갑자기 손님이라도 올까봐 나물을 갈무리 해두었던 아내의 마음이나, 굴비를 대청 서까래에 매달아 둔 조상님들의 기다림, 그리고 딸과 사위가 올까봐 길을 넓히고서 과수원 언덕에서 기다리시던 장인의 기다림은 욕심 없는 아름다운 기다림입니다.
>귀한 글씨를 성큼 건네주고 가는 마음 또한 다같이 욕심 없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
>혹독한 추위의 겨울을 지낼수록 다가서는 봄이 따뜻하다지요.
>이제 4월의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비치는 고국의 산야에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활짝 피고 시장에는 밭둑에서 캐온 냉이, 쑥, 달래 같은 봄나물들로 가득하겠지요.
>이 봄은 많이 배우고 가진 자들만이 누리던 봄이 아닌, 도시의 변두리에 사는 가난한 우리의 이웃들에게도 골고루 찾아오는 진정한 서민들의 봄이길 기다려봅니다.  
>오는 봄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겨울 동안 묵혀온 내 집 마당의 먼지를 쓸어내고 이웃집 마당도 쓸어주며 우리의 마음속에 앙금 져왔던 응어리들을 하나 둘씩 녹이고 풀어내야겠지요.
>잔인한 4월의 봄과, 큰 생채기를 남긴 5월의 봄처럼 마음의 상처를 주고 간 슬픔의 봄이 아닌 희망과 환희의 기쁨의 봄이 오길 기다려 봅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아름다움이고 순수한 마음이니까요. (2004. 4.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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