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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4.04.13 23:51

동백나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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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베란다에 동백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최선생님이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간다고 하여  인사차 들렸다.
포장 이사로 짐은 거의 다 꾸려있었고,  올라가는 계단 한편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화분속에 서 있었다.

'선생님,  여기 동백나무 화분이 아직 있네요.'
'화분이 너무 커서 못 가지고 가겠어요.'
'그냥 놔두시고 가게요?'
'예....'
'그럼, 제가 갖다 키워볼까요.'
'그러세요.  이사 가는 와중에 밖에 내놓고, 물줄 겨를도 없었는데, 죽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화분에 담긴 흙은  말라 있었지만  나무 이파리는 아직  윤기가 남아 있었다.
어렵게  차 트렁크에 싣고와  마침 비어 있던 파란 색 자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주고  우선  물을 흠뻑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시들시들하던 동백나무  잎에 물이올라,  차츰 윤기가 돋고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겨울이 지나고 다음  봄을 맞을 때였다. 놀랍게도 작고 동그란  꽃망울이 하나 둘 솟아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꽤 오래 뜸을 들이고, 나중에는 내가 안달이 날만큼 기다리게 하고서야 어느날 아침 드디어 한송이 빨갛고 화사한 동백꽃이 피어올랐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가 한 일이라곤  잊을만하면  겨우 물 한번씩  주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났다는 것도, 윤기로  반질반질한  초록색 이파리를  볼 수 있게 해준 것도, 거기다  탐스럽고 화사한 동백꽃을 피워 준것이  고맙고  대견했다.
  그 뒤로 한 송이, 또 한송이  연이어 피고, 지고를 반복했다.
본래 나무가 가늘고  연약해 보이는  가지에서 어쩌면 그렇게 많은 꽃을 피워낼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언젠가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어 교실문을 열었을 때, 방학하기 전 창가에 놓아둔  방울 토마토 화분을 보게 되었다. 가끔은  당번 아이들이 물을 주기도 했을 테지만 줄기는 이미  메말라 있었다. 그런데도  빨갛게 익은 방울 토마토 세 개가 앙증맞게 메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처럼  한줄기의 작은 식물일지라도  생존을 위해 한 여름을  창가에서  목마름과 사투를  벌이며, 끝내 포기하지 않고 탐스런 열매를 맺어 놓은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
  동백나무 역시  단순히 꽃을 피워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이루어내는,  자신의 생(生)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나를 일깨웠다.
  나는 올해도 숙연한 마음으로 동백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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