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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4.04.20 00:51

비오는 날의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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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비가 내렸다.
보슬 비는 아침에도 그치지 않았다.
오늘은 4학년이 용인 민속촌으로 현장학습을 가는 날이다.
전화가 울린다.
비가 오는데 예정대로  오늘 현장 학습을 가는지
문의하는 전화다.

  비오는 날의 소풍,
누구에게나 어릴적  소풍날 아침,
비가 내리는 경우를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비오는 날 소풍이 아니라, 6학년 단 한번밖에 없는 수학여행길이었다.
시골의 초등학교,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그 무렵
기차를 한번 타려면 20 리길(8km)을 걸어야만 했다.
그 때 수학 여행 목적지는 꿈에도 그리던  서울이었다.

당시 여학교를 다니던  누나가 기차역이 있는 시내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던 관계로
전날 미리 누나와 함께 버스를 이용 시내로 가는 행운(?)을 나는 갖게 되었다.
우선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20 리길을 걷지 않아도 되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학교에서는 버스비를 아껴야 했거나, 기차 시간과 맞지 않았거나, 많은 수가  한꺼번에 버스에 탈 수 없어서 였는지 알 수 없으나 걷는 것은 당시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누나가 준비해준 새 옷가지와 운동화를 머리맡에 놓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누나는 부엌에서 내일 가지고갈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내가 잠들 때까지도 들어오지 않았다.
  칙칙폭폭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신나게 달리는 기차를 탄 꿈을 꾸고 있었다. 얼핏 기차 바퀴소리가 더 가까이 들리는듯 하여 잠이 깨었다. 그 소리는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였다. 여행 떠나는 날 아침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쏟아 붓듯이 내렸다.

  누나와 나는 약속된 새벽 6시 30분 기차 시간에 맞추어 기차역으로 나갔다. 그러나 아이들과 선생님은  역에 없었다.    
할 수 없이 누나와 나는 자취 집으로 돌아 왔고, 누나는 시간이 되어 학교를 가며, 다음 열차 시간인 10시 30 분에 맞추어 역으로 나가보라고 당부했다.
  나는 누나가 학교를 가자마자 역으로 나갔다. 역앞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 기다리는 시간은 나를 몹시 지치게하고, 조바심나게 했다.  많은 시간이 경과했다고 생각하며 역 건물에 있던 커다란 시계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마침 까만색 큰바늘과 작은 바늘이 서로 겹쳐져 있었다.
  내가 올려다 본 시간은 '10시 50분'이었다. 기차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도 아이들과 선생님이 오지 않은 것으로보아 '비오는 소풍 날' 처럼 수학 여행을 하루 연기한 것으로 나는 판단했다.   누나네 자취 방을 들려 집으로 간다는 메모를 남기고 다시 학교로 갔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어야 할 우리반 친구들은 교실에 없었다. 교실은 텅비어 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비가 오는 관계로 한-두시간 일정을  늦추어 수학 여행을 떠난 것이다. 내가 기다리다 지쳐 올려다 본 시간은 공교롭게  두 시계바늘이 겹쳐진 순간, '9시 50분'을 열차 시간이 지난 '10시 50분'으로 잘 못 본 것으로 지금에야 추측한다.

내가 터덜터덜 기운 없이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야단 맞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누나가 밤새워 싸준 도시락을 열었을 때, 기차 바퀴를 닮은 까맣고 동그란  연근 조림이 거기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들은 신기한듯 그것을 먹어보며 맛있다고 깔깔댔다.    

  '비오는 날의 소풍', 또 전화 벨이 울린다.  지금 처럼 전화만 있었다 해도.........  
  나는 지금도 기차 바퀴를 닮은 진 갈색 연근 조림만 보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올려야 할  수학여행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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