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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4.05.08 13:53

쌀, 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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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좀 지긋한 여선생님이 조퇴를 하시겠다고 한다.
친정 어머니께서 새벽길을 가시다가  팔에 골절상을 입어, 오늘 병원에 모시고 가기로 한 날이란다.
'선생님이 모시고 가시게요?'
'네,  딸만 넷에 맏딸인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요. 어머니가 골다공 증세가 있으셔서 넘어지기만 하면 골절을 입으시네요.'
'골다공증요...., 딸  키우시느라 많이 힘드셨나봅니다.'
'네-, 그 때는 모두가  살기 어렵기도 했지만  먹는 것 제대로 못드셨을거예요.
혼자 몸으로 우리들 딸 넷, 거두고  키워내시느라 ........'하고 말하다가,  선생님은  얼핏 눈시울을 적신다.

  어머니..... !  나는 가끔 혼자서 속절없이 그 이름을 불러보곤한다.
  어렸을 적 철없을 때, 생일이 돌아 올 때면 은근히  떡 해주길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해마다 쌀밥에 미역국이 고작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자그만치 팔남매에 그중 셋째라 서열로도 밀렸다. 어려운 그 때 생일이라고 쌀밥 먹을 수 있는 것만도 정말 감사하고  황송한 일이었다.

  어려서 보았지만 어머니는 자식 생일이나  무슨 날만 되면 꼭두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심신을 정갈히 하신 다음,  정화수 떠 놓고 자식들 안위를 위해 온갖 지성을 들이곤 하셨다.
그래도 철없던 어느 해인가 용케도 제 생일인 것은  알아가지고,  어머니를 보챘다.
'어머니, 내 생일에도 떡 좀 해주세요. 더도 말고 쌀 서 되(3 되)만......'
일년 내내 떡은 커녕 미역국에 밥 말아먹을만큼 효도한 일은 쥐뿔도 없었으면서,  어머니 속이나 안 썩혔으면 다행인 주제에......
우물에서 저녁 지을 쌀을 씻고 계시던 어머니께선 때뜸,
'떡은 무슨 떡, 바빠 죽겠구만.........'
하고 내입을 막으셨다. 그렇게 말씀은 하셨지만 뒤돌아 서선  '쌀, 서되만'하는 말이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나도 사실 떡을 좋아해서 그런것은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큰 형님 생일 날은 한가한 정월이어서 그러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그 날만큼은 어김없이 떡을 하셨다. 아마 그점이 어린 마음에 퍽 서운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일이 우습기도 하고 한편 어머니께는 죄송할 따름이다.
그 때 어머니는 자식이 오죽이나 바랬으면 어린 것이 쌀 서되가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했을까 싶었나보다.
어머니는 큰 마음먹고 떡을 하셨다. 시루는 한 시루로되 떡은 세가지나 되었다. 시루도 큼직막했다.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는 달콤한 호박 떡, 까아만 콩이 드문드문 있고 손에 쩍-쩍 달라붙는 찰떡, 거기다 보통하는 팥 떡까지,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떡 맛있다고 말할때, 그게 마치 내 덕인냥 우쭐댔다.

  오늘 퇴근길 올려다 본 달빛이 유난히 밝았다. 둥근 보름달이었다. 그런데 밝은 달빛이 가슴에 와 엉기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렇다고 생일 떡이 생각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던 그 때의 오늘, 어머니가 저 보름 달처럼 만삭의 몸으로 얼마나 힘들고 아픈 고통을 이겨내야 했을까? 지금처럼 병원에 가셨을리 만무하고 출산을 하루 앞둔 그날까지도 맏며느리셨던  어머니는 집안 일 거두시느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으리라.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아 겪어본 일 없는 출산의 고통을 감히 말할 수는 없으나, 산고(産告)만으로도 어머니에 대한 은혜를  평생 두고 다 갚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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