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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4.05.15 10:17

관음죽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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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 그리 많지 않은 화분 가운데  관음죽(觀音竹)이라는 관상수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관음죽은 야자과 상록수로 줄기에 그물 같은 섬유질 껍질로 쌓여 있는 관엽수라고 한다.  먼저 돋아난  잎이 어느 정도 시들해지면 잘라내고 그렇게 해서 줄기가 자란다.
  내가 관음죽을 좋아하는 것은 잎이 대나무 잎처럼 반듯하게 자라며, 보통 다섯잎 정도로 펴지는 데  윤기 있는 잎사귀 모습이  보기 좋아서이다.  또 관음죽은  웃자라서 우거지거나 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정말 마디게 자란다는 점이다.  
   어느  때 일주일 이상 집을 비어두고 물을 주지 않아  잎이 쳐지고 메말라 있다가도,  다시 물만 주면 금세 활기를 되찾아 손바닥을  펴보이 듯 이파리들이 생기를 되찾곤 했다.
  가끔 들어오는 현관에 손님맞이용으로 화분을 내다 놓고는 했다. 그곳은 햇볕이 잘 들지 않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처음 싱싱했던  화분들도 얼마 못 가 시들해지고 결국 죽고마는 것이었다.  다만 유일하게 관음죽 만큼은 놀랍게도 의연하게 죽지 않고 버텨내었다. 하여간 관음죽은 나로부터  가장  아낌(?)을  받는 화분 가족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에 동양란이 새 식구로  한 개, 두 개 들어오고 나중에는 그 숫자가 꽤 늘어났다. 대개의 동양란이 그렇듯이  잎이 길게 피어 올라오는 모습은 '사군자'(四君子)라고 불리우는 까닭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어쩌다  잎줄기 사이로  꽃대가 올라오고, 어느날 아침  우아한 자태로 향기로운 난 꽃이 피어난 것을 보면 온 가족이 반겨 했다.  그리고  꽃대가 올라온 난 화분은 거실로 들여져  탁자 위에 올려놓아지는 영광(?)을 누리게도 하였다.
   자연 나의 관심은 난 화분에 쏠리게 되었고,  난 화분을 놓는  받침대가 베란다 한가운데를 차지하게 되었다. 자연, 나머지 화분들은 베란다 한쪽 가장자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물주는 일도, 보살펴주는 일도 그랬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구석에 자리한 관음죽 화분의 잎이 하나같이  축 늘어뜨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윤기 있고 빳빳했던 잎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관음죽 화분 두개가 나란히 있었는데, 두 화분 모두 그랬다.   나는 놀라 물 호스를 끌어다가 퍼붓듯 물을 주었지만 아무리 물을 뿌려도 시들었던 잎은 다시 펴지지 않았다. 원 줄기마저 죽지 않았나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꽃가위를 가져다가 줄기 부분을 잘라 보았다. 줄기 속도 이미 초록색이 아니었다. 옆의 줄기도 잘라 보았다. 다른 줄기도 그랬다. 몇년을 두고 자란 키큰 줄기 모두가 그랬다. 다행스럽게도 키가 땅에 닿을 듯 작은 줄기 몇 개가 잎은 시들었지만 그래도 줄기 속은  아직 살아 있었다.  결국  키 작은 줄기  몇 개가  덩그런이 남게 되었다. 물을 매일 주며 들여다보기 사나흘,  몸살을 앓고 나온 듯 꼬깃꼬깃 접힌 잎이 어렵게 피어났다. 안도의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죽지않고 살아준게 고마웠다.

  옛말에 '곡식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 내가 미루어 생각하는 것은 말 못하는 그런 식물일지라도 자기에 주어지는 관심에 대하여 나름대로 어떤 느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관심 여하에 따라 사람과 똑같이 서글픔과 아픔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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