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신발'

by 조원배 posted May 2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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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모르고 당당히 가던 길 있었지

가파른 비탈이지만 의연히 걷던 길 있었지

사명감에 골똘히 앞만 보며 치닫던 길 있었지

외로움의 칡뿌리 씹으며 터벅거리던 길 있었지

대낮에는 사라지고 별빛에 은은히 빛나던 길 있었지.


- 최두석, < 길> -





신발 잃어버린 꿈을 꾸고 나서

새삼 살아오면서 닳아 없앤 신들과

습관처럼 자주 잃어버린 신들을 생각한다

불깡통 돌리며 쥐불 놓던 날의 먹고무신

철길 걸으며 휘파람 가다듬던 날의 운동화

최루탄 맞고 도망가다 잃어버린 구두를 떠올린다

이미 걸어온 길 때문에 가지 않은 길과

가지 않은 길 때문에 계속 걸어온 길을 되새긴다.

또한 어떻게 신발끈을 조이고

부끄럽지 않게 앞길을 가나 생각한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이없이 신을 잃고 헤매다가

어디서 남녀로 짝짝인 흰고무신 얻어 신고

어기적거리다가 꿈을 깬 날 아침에.


- 최두석, <신발> _





이 시들은 최두석의 최근 시집인

<꽃에게 길을 묻는다>에 실린 시들이에요.

시집이 맘에 들어서 출퇴근길에 끼고 다니며 읽는지라

요즘 내 지하철 길동무이기도 하지요. ^^


이 시를 읽다가 나도 시인처럼

생각했습니다.

내가 신었던 '신발'과 걸었던 '길'에 대해.


'이미 걸어온 길 때문에 가지 않은 길'과

'가지 않은 길 때문에 계속 걸어온 길'에 대해.

'대낮에는 사라지고 별빛에 은은히 빛나던'

그 길에 대해.



그리고 또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신발끈을 조이고

부끄럽지 않게 앞길을 가'야 하는지

오래도록

오래도록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추신 : 샘터사에서 나온 <열 네살>이란 두 권짜리 일본 만화도 참 좋습디다.

         나한테 속는 셈 치고 꼭! 한 번 보시기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그 섬세하고 감탄스런 그림도 그림이지만  웬만한 소설보다 나은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감동이 보는 사람들을 빨아당기죠. 프랑스에서 열린

         앙굴렘 국제만화패스티벌에서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받을만큼 빼어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만화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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