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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4.06.03 23:13

오동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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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길을 잘 몰라 무작정 택시를 탔는데 한참 가다보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정문이 눈에 띄었다. 정문 맞은편 동네는 내가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던 곳이다. 달리는 차에서 눈으로 더듬어보니 큰길가에 있던 이층집들이 그대로 있었다. 모양은 조금 변했지만 옛집 그대로인 것 같았다. 너무 반가워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느 집 마당인가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자란 큰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집들은 모두 일본식 가옥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그 집 근처 공터에 모여서 '술래잡기' '고무줄 뛰기' '깡통차기' 같을 놀이를 했다.

오동나무가 있는 집에선 저녁마다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초여름이면 보라색 꽃을 피우던 오동나무 아래서 '소녀의 기도' '엘리제를 위하여' '백조' '은파'같은 피아노 곡을 들으면서 놀았다. 오동나무의 보라색 꽃은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동네를 자욱히 덮고도 남아 큰길까지 번졌다. 그런 여름날에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노을을 보노라면 그 아름다운 향내가 노을에서 내리는 것인지 피아노 소리가 향을 뿜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오동나무는 우리 외갓집 뒷 마당에도 있었다. 여태껏 몰랐는데 어제야 기억이 났다. 내가 왜 오동나무를 좋아했는지도 알았다. 어린시절의 추억 속엔 항상 오동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 아래엔 아름다운 추억들이 가을 낙엽처럼 켜켜로 쌓여 있었다.

무의식 속에 자란 오동나무는 중년이 될 때까지 살던 아파트 마당에도 있었다. 그 나무의 꽃도 보라색이었다. 보랏빛 향기 짙은 그 나무 아래에는 우리 아이들의 유년과 소년과 청년의 추억이 덧칠된 유화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오동나무가 한 그루 자라는 집에서 살고 싶어했다. 많은 나무 가운데 왜 오동나무를 심고 싶어했는지 몰랐다. 옛 어른들은 딸을 낳으면 울 안에 오동나무를 한 그루 심고 시집갈 날이 정해지면 그 나무를 베어서 장을 만들어 보냈다고 한다. 오동나무의 아름다움과 그 쓰임을 알아서 집에 심고 싶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내가 살던 집은 언제나 오동나무가 피우는 보라색 꽃과 함께 했다. 은은한 향기와 커다란 잎사귀에 드는 빗방울 소리를 나무 아래 서서 즐기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어제야 깨달았다.

마음속에 자라온 나무 한 그루, 그것만 가져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 같다. 올 해는 우리집 마당에도 오동나무 한 그루 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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