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국가 보안법에 관계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 입에서 국가 보안법 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만도
1000번은 넘는 것 같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역시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또 산을 넘는 일입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또 다른 문제를 만났습니다.
최근 국보법 위반 구속자의 70%는 한총련 대학생들입
니다.
저희도 한총련 대학생 중 한명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의 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지난 해 5월부터 수배의 몸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학생의 건강이 안 좋다는 것입니다.
심할때는 하루에도 세번이나 쓰러지고,
몸이 힘들어서 학교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배의 몸인지라 병원을 다닐수도 없습니다.
대학 병원이 있는 학교라서, 학교 병원에 가면 안되냐고 했더니
한번 갔다가 잡힐 뻔 했다고 합니다.
수배를 시작할 즈음 딱 한번 병원에 갔는데 신경 계통 질환이라고 했는데,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답니다.
병원 처방전이 없으니 약도 못 사먹고 있는 형편입니다.
학교 생활방에서 다른 수배자 3명과 함께 지내는 이 학생은
부모님도 지방에 계셔서 제대로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식사도 학교에서 해 먹는데,
밥은 친구들이 mt 갔다와서 남은 쌀, 집에서 가져다 주는 쌀을
이용해서 살아가고 있더군요...
그 학생과 통화를 하고나서,
촬영해온 테입을 보면서,
제 지난 날이, 또 저와 함께 그 시대를 살아왔던 선,후배 동료들이 생각나서
잠을 설쳤습니다.
언제까지, 정말 언제까지 내 후배들에게
그 꽃같은 20대에 수배 라는 이름의 너울을 드리워야 하는지...
그 보다 어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총련의 운동 방식이 그리 탐탁지만은 않다고 느꼈던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익숙한 것보다 서투른 것이 더 많을 나이인
20대의 그들을 탓하기 이전에,
그들의 청춘과 열정을 국가 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굳게 가두고 있는
우리를 먼저 탓해야 할것 같습니다.
맘 같아서는 그 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가고 싶지만,
그러면 검거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어 쉽지가 않습니다.
혹시 더불어 숲에서, 또는 다른 곳에 계신 분이라도
그 학생을 찾아가 간단한 진료라도 해 주실수 있는 분,
처방전이라도 써 주셔서 약이라도 먹게 해 주실수 있는 분 없으실까요?
더운 여름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견디기 힘들 만큼 올 여름은 덥다는데,
학생회관에서 올 여름을 보내야 할 그 친구에게는 또 얼마나 잔인한
여름이 될까요?
사족이지만 이건 방송과는 전혀 무관한 부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