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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정말이지 이렇게 더 있다간 미치는 줄 알았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사람들, 작업복을 입자마자 시작되는 소음과 어수선함 그리고 서로에 대한 정이 담기지 않은 매마른 시선들.

매표실에 들어가면 나의 열손가락은 제 각자 맡은 일을 해야 했다. 한 손으로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기에 각자의 역할이 있어야 했다. 가장 많이 나가는 700원짜리 승차권과 동전은 어떻게 해서든 두 번의 손동작이 안되도록 매표실에 적합한 테일러시스템을 강구해야 했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표를 나르는 동시에 엄지 손바닥으로 300원을 떠밀고, 무임권과 500원 50원 동전, 승차권 생산은 왼손에서 전담하도록, 그리고 카드에 충전하는 일은 오른손 엄지로 하되 각 단위의 돈의 액수 입력은 또 중지와 네 번째 손가락, 그리고 몇 초씩 남는 자투리 시간에는 거스름돈 준비와 쏟아져 들어오는 돈 정리, 뭐 이런 식으로 역할분담을 해야만 3일을 버틴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손목과 손가락의 뼈마디, 어깨 이런 곳이 얼얼해지기 시작하고, 금요일이나 토요일이 되면 소줏잔을 오른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노동강도가 세고 어수선한 곳이 신림역이었다.

그 줄이 길게 늘어선 것도 아랑곳 없이 자기 권리인 듯이 수표를 내는 사람도 있다. 이럴 경우는 또 전화기는 어깨쪽으로다 걸치고 조회를 하면서 표를 팔다보면,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저놈이 사적인 전화하느라 불친절’하다거나 표를 늦게 판다고 삿대질인 게 하루 하루 내가 겪어야 하는 신림역 풍경이었다. 참꼬, 참꼬 해서 업무는 그런대로 견딜만 했더라도, 이놈에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도떼기 시장 같은 곳에서 어떻게라도 내가 인간임을 지켜볼려고 나만의 매표실용 책받침대를 만들어 시집이라도 걸쳐놓았었다. 설사 읽지는 못하더라도 그 방식이 '난 사람이 아니라 노동기계이다'라고 해야 버텨낼 수 있는 그곳에서 내가 버티는 방식이었다. 이렇게들 매표실에서 버티는 종류도 가지 각색인데, 매표실에다 작은 컴포터블을 갖다놓고는 어떤 사람은 뽕짝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데서 파는 테잎을 틀어놓고, 심지어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은 찬송가를 크게 틀어놓고 일을 한다. 어떤이는 승객이 한 마디 하면 두 마디 세 마디 더 큰 소리로 기선을 제압해서 마치 싸우려고 앉아있는 표정을 하고 있는 이도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참으로 역무원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들 하지 않으면 그들 역시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니, 참으로 기가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여하간 나는 ‘책을 읽지 못해서 너무 너무 고통스럽다’는 내용의 고충처리를 해당부서에 신청해서 4호선 이촌역으로 온지가 20여일이 되어간다. 아마 어디 몸이 아파서, 또는 집이 너무 멀어서 등의 이유가 아니라. 책을 읽지 못해서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역을 옮겨달라고 한 이는 지하철에서 나뿐이지 않나 싶다. 그런데 나의 뜻을 이해해 주는 분이 있어 용케도 실현되었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운 일은 함께 1년을 더 고생해야 함에도 동료들이 ‘장경태씨는 그런데 가서 책을 읽어야한다’거나 ‘글을 많이 써서 엉터리 지하철을, 고생하는 역무원들을 많이 대변해달라’는 가당치 않은 격려와 '한가한 역으로 가서 잘되었다'는 고마운 덕담을 듣고 떠나게 되었던 거다. 머리가 희끗 희끗하신 역장님도 서운하신듯 눈가에 이슬이 맺혀서는 내 손을 놓지 않고 '고생하다가 여기를 떠나게 되서 다행이고 여기서 하던 것처럼 신림역직원을 위해서 열심히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하시는 거다. 역장이면 지하철이 그의 인생 전부나 다름 없을 텐데 나보다 지하철에 더 답답함을 느끼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듯 모든 직원들이 일터로부터 마음을 떠나고 있는데 사장 혼자 '흑자경영원년'실현을 위해 대합실을 호텔수준, 국제공항수준으로 만들겠다. 지하철을 구하겠다고 해외로, 세계로 출장만 다니고 있으니 딱할 노릇인 거다. 정작 지하철을 위해서라면 지하철의 구성원이 어떤 심정으로 일을 하는지 마음을 읽기 위해 안으로 들어와야 할 텐데, 그는 자꾸 밖으로 밖으로 나다닌다.  

난, 사실 매표실에 있을 때 말고는 거의 침실이나 매표실 구석에 기대거나 누워서 빈둥 빈둥 지냈었고, 은행볼 일, 하다 못해 손톱 발톱 깎는 일도 직장에 와서 했다. 직장밖에서는 창조적인 일을 하자는 것이 나의 심사였고, 중세노예노동체제에서는 인간인 이상 그런 직장에 열심히 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거다. 이렇게 어깃장을 노는 이유는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끊임없이 훼손하려는 지하철이라는 썩은 공기에 대해 내가 저항하는 방식이었다. 더불어 숲 사람들도 술 마시다가 내가 지하철 다닌다고 나보고 어디 어디 막차시간을 물어보면 되려 핀잔을 듣거나 혼난 이가 있을 거다. 난 지하철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고, 지하철과 관련해서 뭔가 신경같은 것을 쓰고 다닌다는게 짜증난다. 지하철에 대해 물어보는 일은 나에 대한 결례이기도 하다. 사실 난 김대중 정부시절에는 이런 나라는 빨리 망하고 다시 시작해야한다고 믿었으며, 마찬가지로 이런 지하철은 빨리 망하고 새로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의 이런 어깃장에 대해 처음 대면하는 사람들은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 방식대로 했을 뿐인데, 용하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인지 주변사람들로 과분한 기대와 신뢰같은 것을 받아왔던 게 그간의 지하철 생활이었다. 신림역 사람들은 더욱 서로 정과 생각을 나누고 그랬었던 듯 싶다.

그런데 참으로 불행인지 비극인지, 한가한 이촌역에서 적응하기 힘들 줄은 미처 몰랐다는 거다. 이촌역의 경우 신림역에서 1시간도 되지 않을 업무량을 하루 종일 하는 데, 글쎄 복닥거리는 신림역에 내가 적응이 되어버려서 술 취한 승객으로부터 시달림을 받는 일 없이 조용히 막차가 끝나는 일도, 줄 서지 않는 승객과 다툴 일도 없는 하루 하루가 적응이 되지 않을 줄은 정말 몰랐다. 여기는 표 사는 사람도 역무원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것도 적응이 되지 않고, 용산 미군기지 옆이어서 미국사람들을 많이 접하는데 이들은 아주 상냥하고, 인사도 미안할 정도로 해버려서 매표실에 들어앉은 내가 미안할 정도이다. 인간임을 끊임없이 시험하게 하는 그런 공간에 나도 모르게 잘도 적응해버린 것이었다.

사실 이곳으로 발령 났다고 하기에 잠이 오지 않았다. 드디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일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지루해서 견디지 못하는 그런 역에 가게 되었으니, 나의 새 생활이 열린 거나 진 배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와 거실, 이 방 저 방에 쌓아놓은 책들이 서로 자기를 먼저 만나달라는 아우성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행복한 결의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신림역에 있을 때는 책을 읽어야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서 누구를 만나는 일이 부담스럽고, 만나자고 하는 일이 생길까 두려웠었다. 이제는 이전 보다 가끔은 이곳에 들리는 일과 사람만나는 일에 신경을 쓰며 살려고 하는데 또 이 일이 서툴다. 누가 나에게 전화를 하는 이도 별로 없고,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할 지도 머뭇머뭇 거려지는 거다. 몇년만에 사람으로 돌아와 제 삶을 찾을 준비를 하느라 헤매는 것이 요즘인 듯 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짐은 늘 신림역에서 고생하는 나의 동료와 선후배들을 잊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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