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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요일 인천시 부평구 청천,산곡동 경계선에 있는 묏골공원에서 '동네야 놀자!'란 단오절 잔치가 벌어졌다. 청천동 산곡동에 있는 공부방들과 실업극복 부평센타 등 지역단체들이 주최가 되어 올들어 5년째 하는 행사이다. 태풍으로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에 걱정을 했는데 시작 때부터 끝날 때까지 비가 멈춰주어 다행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붐비고 행사도 준비대로 착착 진행되고 주민들의 참여 열기도 높아서 보기가 참 좋았다.

오늘 하려는 얘기는 어제 단오절 행사 그 자체보다 행사중 하나인 벼룩시장에서 장사판을 벌렸던 네 아이의 행태에 대해서다. 네 명중 두 명은 우리집 큰 애와 작은 애이고, 나머지 두 아이는 공부방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고자 순서대로 갑돌이(중1), 을돌이(초4), 병돌이(초5), 정돌이(초4)로 부르기로 한다. 이 애들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1학년까지인데 중1 갑돌이와 초등4학년 을돌이가 우리집 아들들이다. 이 아이들은 토요일 낮에부터 우리 집에 모여 벼룩시장에 가서 팔 물건 모으기와 가격 정하기, 간판 만들기로 분주하였다. 자기들끼리 역할 분담도 하였는데 팔 물건의 대개가 우리집 물건이라 그런지 그중 형이라서 그런지 갑돌이가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을돌이는 홍보부장을 맡았고, 나머지 두 아이는 물건 판매와 장부 정리를 맡는 재무부장을 각기 하기로 하였다. 직함이 지배인, 광고담당, 판매담당이 더 낫지 않겠냐고 조언하려다 자기들끼리 그냥 알아서 해보라고 내비 두었다. 가게 이름도 '세븐 마트'라 지었는데 같잖은 영어지만 내비 두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배분인데 똑같이 넷이 나누기로 하였다. 즉 균등분배주의가 채택된 것이다. 그리고 매출액의 20%는 세금으로 내놓기로 되어 있는데 그 돈은 이북의 용천소학교를 돕기로 하였다.  특히 병돌이와 정돌이는 당시 자기가 내 놓은 물건들이 없는지라 선뜻 승낙을 하였다. 병돌이는 우리집에서 자고 정돌이는 늦게까지 있으면서 내일 벌 돈에 대해 모두가 기대가 부푼 채 우애를 나누었다.

다음날 아이들 걱정과는 달리 오던 비가 그쳤다. 병돌이 엄마가 책과 아기 장난감을 많이 싸서 보냈고 정돌이네는 품목은 몇 안되지만 비싸고 좋은 물건을 보내서 상품은 더욱 많아졌다. 공부방에 모여서 출발하기 전에 처음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병돌이가 자기가 내 놓은 물건들이 많은 걸 알고 나서 '각자 갖고 온 물건을 판대로 각기 먹자'며 이미 결정한  균등분배안을 번복할 것을 요구하였다. 바쁘던 참이라 그 요구는 묵살되고 바로 공원으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병돌이 물건은 많지만 거의 싸게 팔 품목들이라서 돈이 안되는 것을 그 아이는 모르고 있었던 것인데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한나라당 같은 놈이네'하며 이의제의를 못하게 한 것이다.)  
  
아이들이 들떠서 가보니 단오 잔치는 벌써 북적거렸고 이미 그 동네 공부방 아이들이 천막 중 좋은 좌대 판을 잡고 장사를 벌리고 있었다. 우리 공부방 애들중 여자 애들도 따로 준비해와 같이 판을 벌렸다. 나는 아이들을 벼룩시장에 남겨두고 행사를 돌아 보면서 동네 사람들과 민주노동당 사람들(때마침 분회 모임을 가졌다)과 함께 어울렸다. 행사 중에 떡, 순대, 부침개, 삶은 돼지고기, 김치, 막걸리 등이 모두 무료로 제공되면서 사람들은 행사장외에도 공원 주변 여기저기에 모여 앉아 음식을 들고 있었다. 그런 중에 을돌이가 가게 광고판을 들고 공원을 돌면서 사람들에게 뭐라고 얘기하는 것이 눈에 띠었다. 벼룩시장에서는 아이들이 서로가 경쟁이 되어 소리높여 손님들을 불러들이고 있었고, 상품들도 200원, 500원, 비싸야 1,000원 짜리라 잘 팔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 정신없이 팔면서 판 물건과 금액을 열심히 장부에 적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사단이 난 것이다.

파는 아이들은 쉴 틈 없이 파니까 떼돈을 벌고 있다고 착각을 하면서 불만과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좌판을 벌렸을 때는 손님이 없는데다 아이들도 숫기가 없어서 손님을 불러 모으지도 못했다. 재무부장 두 애가 판매부진의 책임이 홍보부장에게 있다고 닥달을 하면서 호객행위를 강요하였다. 그래서 을돌이는 할 수없이 광고판을 들고 공원 주변을 돌면서 아저씨, 아주머니들에게 벼룩시장에서 상품을 사 줄 것을 호소하고 다닌 것이다. 나는 그 애가 넉살이 그렇게 좋았나 하고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강요에 의한 삐끼였다. 을돌이의 광고 덕분에 손님들이 오자 재무부장 두 아이는 정신없이 바빠졌고 힘이 매우 든다고 생각했다. (업무의 비효율성으로 자기들만 정신이 없는 것인데 그 아이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개의 도시의 아이들은 거의 노동을 안 해 보기 때문에 조그만 일도 대단한 것처럼 힘들어 하곤 한다.)

힘이 들자 두 재무부장은 사장과 홍보부장에 대해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즉 사장과 홍보부장은 놀고 먹고 자기들만 뼈빠지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좌대 판이 좁아서 사장은 같이 상품을 못 팔고 뒤에 밀려 있었다. 홍보부장은 그 벼룩시장에서 유일하게 호객행위를 하러 다니고 있었는데 그 아이의 광고 효과가 두 판매자에게는 인식이 안 되고 있었다. 그래서 두 재무부장은 사장과 홍보부장이 없는 사이에 새로운 배분원칙을 세웠다. '판 사람이 팔은 대로 다 먹기'로 말이다. 일한 사람이 일한 만큼 가져가기인데 얼마나 멋진 평등주의인가! 직접 판매자(생산자)인 두 재무부장의 눈에는 사장과 홍보부장은 불로소득자로 보인 것이다.

두 재무부장은 옛정을 생각한 나머지 사장과 홍보부장을 각기 따로 불러 그나마 1,500원씩을 주었다. 지급된 1,500원은 청산금인데 사장과 홍보부장은 각기 달리 착각을 하였다. 사장은 판공비로 생각했고, 홍보부장은 1차 수익배분금으로 안 것이다. 홍보부장이 행사요원인 자기 엄마한테 가서 돈자랑을 하면서 이 청산공작의 음모가 노출되고 말았다. 공부방 원장인 우리 집사람은 바쁜 와중에 아이들에게 가서 '너희들 멋대로 돈 배분하지 말고 다 끝난 후에 계산해야 된다'고 일렀다. 경고를 했는데도 두 재무부장은 계속 밀어 부치기로 했고 다른 아이는 순진한 건지 미련한 건지 그 음모를 아직도 간파를 못한 상태였다.

끝날 즈음 매출액의 20%를 떼고 나서 두 재무부장은 판매대금을 움켜쥐고는 안 내놓겠다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했다.(아이들끼리 맡겨 놓은 다른 공부방에서는 아이들이 매출액 20%도 안 내놓고 판매대금을 각자가 챙긴 채 내뺀 놈도 있었다. 한마디로 세금 떼먹으려 생긴 난장판 꼴이 된 것이다.)        
두 재무부장은 '우리가 열심히 팔아서 번 돈인데 왜 딴 사람과 나누어야 하느냐?'며 먼저 사장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갑돌이형은 사장이랍시고 마음대로 1500원을 갖고 가서 음료수를 사먹고, 물건도 팔지 않고 뒷전서 놀기만 했다는 것이다. 갑돌이는 말이 정확치 못해 변명도 못하고 피하려고만 하여 내 성질을 더 건드려 놓았다.
"그럼 갑돌이는 공금횡령인데 이거는 죄질이 아주 나쁜 거야. 이걸 어떻게 할까? 경찰서로 넘겨?"하며 다른 아이들도 을러댔다.
그러니까 병돌이가 실토를 했다. 갑돌이형이 1500원으로 음료수를 사와 나누어 주긴 주었는데 자기는 조그만 마셨기 때문에 안 마신거와 같다며 1500원은 사장 몫에서 공제해야 한다고 우겼다. 갑돌이형이 한 게 더는 없냐니깐 다른 애들 하는 말이 행사장에서 나누어주는 먹을 것을 줄을 서서 얻어 와서 물건 파는 아이들에게 갖다 주었다는 것이다.
"갑돌이가 사장 일 제대로 했네. 사장이 말야, 물건 파는 것 말고 음료수하고 떡이니 고기니 종업원 복지 챙겨주는 거야. 물건 파는 것만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두 재무부장은 차 안에서도 전혀 수긍을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공부방에 가서 두 아이의 판매대금을 뺏다시피 한후 정산에 들어갔다.
이 아이들에게 분업의 효과와 각자가 한 노동의 댓가를 설득시키기가 여간 어렵지가 아니었다.  광고와 업무지원도 판매 행위만큼의 노동의 가치를 만든 것이라고 주입시키다시피 하였다.
어떻든 여차저차해서 균등배분이라는 원래의 원칙을 살리기로 했다.
다만 돈 갖고 있는 아이들의 저항이 완강해서 원칙을 살리면서 현실을 반영해 4명이 나누어 갖는 대신 세 집이 균등배분하기로 했다. (즉 우리 아이들은 한 식구니 삼등분하고 다시 이등분해서 갖기로 했다.)

현실과 아주 정반대인 아이들의 착각을 보면서 도리어 이 아이들의 생각이 진실 쪽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을 하였다.
현실 경제에서는 종업원 전체보다 사장 혼자의 부가가치 생산이, 생산보다는 광고의 역할이 더 크다고 착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 오히려 이 아이들의 착각이 더 건전한 것이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이런 아이들이 커서 취직을 하고 종업원들의 태반을 차지한다면 사장들은 얼마나 돌아버릴까 하는 유쾌한 상상을 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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