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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4.07.29 19:32

뼈아픈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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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파업은 많은 오해와 악의를 감수해야한다. 모든 파업이 정당한 것이 아니지만, 아주 간단히 생각해서 파업을 추진하는 쪽이 감당해야하는 책임과 뒤따를 피해에 비해 파업을 제압하는 쪽의 부담의 정도를 고려한다하더라도, 분명 파업이후 닥칠 압도적인 어려움을 무릅쓰고 행하는 노동자들의 ‘파업행위’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런 삐딱함이 모든 사람들이 악의로 비난해 마지않는 파업행위에 대한 내가 바라보는 관점의 단초이다.

‘한 달 19일 근무로 4천5백만 원 받으면서 이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에14일 근무하겠다’는 떼 쓰기식의 부도덕 집단으로 매도당하면서 그렇게 파업에 들어갔다가, 어이없게 제대로 된 파업도 해보지 못하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복귀와 함께 또다시 무력감과 양식의 뒤틀림, 이율배반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제 이런 나의 인식은 이 ‘더불어 숲’에서 조차 비난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사람을 위한 복지와 교육, 시민권의 확장보다 언제 국경을 넘어 달아날지 모를 자본을 붙잡아놓기 위해 애원하고 비위를 맞추어야하는 국가의 역할 변화는, 정치와 문화의 논리역시 경제의 틀 속에 강제되도록 만들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개인의 인생이 같은 작업장에서 시작되고 마감되며, 자신의 생애를 예측할 수 있었던 ‘무거운 근대’의 시대에 연대와 집단 심성, 문화들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분사화하고,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며 다운사이징되는, 미국과 같이 고등교육을 받은 노동자가 일생동안 13개의 직업을 전전하는 ‘가벼운 근대’로의 이동은 노동자끼리, 노동자와 사회사이의 신뢰 형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기업의 목적에 부응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고용유연화의 대상이 되고, 노동자는 또 다른 기업을 찾아 '계약서'를 작성하면 된다. 자본의 결정에 언제든지 순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어떤 결정이든 조직적으로 저항할 능력도 없고 그렇게 하려는 의지도 없는 ‘개인’의 형성과 양산의 심화는 서로를 분절시켜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미신이 사회적 사실로 둔갑하도록 만든다. 불안과 걱정, 미래의 예측 불가능의 막막함을 혼자서 감내야하며,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회에서, 자유로운 자본 활동의 환경을 뒤흔드는 ‘파업’은 사회악이며, 애초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200년 전 영국의 양식있는 지배층이 노동자 파업을 통해 체득했던 사회적 각성과 사회정의에 기반한 경제가 더 민주적이며 든든해질 수 있다는 교훈은 이 땅에서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파업이후 작업장에서 만나야하는 진실로 인간다움보다 영악한 노동자가 더 많음에서 느끼는, 평소에는 그럴듯한 사나이다움과 의기를 자랑하다가 파업과 같은 시기에 꼬리를 내리고 인간적인 미안함조차 비추지 않는 편리한 소신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과의 대면에서 생기는 무력감과 고독, 찾을 수 없는 희망들 사이에서 헤매는 전통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나'는 어쩌면 현대의 높은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조차 설득력이 부족해진다는 것을 인정해야할지 모른다. 그냥 그렇게 남들처럼 무력하게 월급에 만족하고, 그저 짤리지 않음에 감지덕지하면서 살아야하는 게 이 사회에서는 그런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방도가 되고 있다. 작업장에 굴러들어온 사회불평불만자들의 비굴한 모습에 시시덕거리고, 그럴줄 알았노라고 기고만장해서 위세를 떨칠 인문적 소양이라고는 추호도 없는 사장님과 주변 위인들의 거드름을 어떻게 보고 있어야 할까.

아. 한 발 제겨 디딜 곳조차 없는 이곳에 어디다 내 한 몸을 들이밀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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