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에 오신것을 환영 합니다."

by 김동영 posted Sep 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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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요 거래선과의 상담을 위해 한 2주정도 일정으로 브라질 출장을 다녀왔다.

중남미는, 원래 담당하던 사람이 일년전쯤 갑자기 부서 이동을 하는 바람에 스페인어는 말할것도 없고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얼떨결에 맡게 되었던 시장이었고, 그로인해 자연스럽게 내 원래 담당 지역이었던 중국에 비해 꽤 소홀할수 밖에 없는 지역이었다.(실제로 내 업무의 상당 부분의 신경은 중국쪽으로 가 있는 상태다. 머 어쩌겠는가? 회사일도 회사 일이지만 내 앞날과의 연계성도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정된 서로의 시간들 속에서...)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쉽게 가보기 힘든곳'이라는 회사 일과는 상관없는 매우 이기적인 판단 속에서,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원래 업무들을 무리하게, 그리고 대충(?) 처리해 가며, 해외영업측의 이번 동반출장 요구를 냅다 받아 들였다.(내가 없는 동안에 처리되야 할 업무들 때문에 힘들 동료들 생각을 애써 쌩까면서...)

중남미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미국을 통하거나 유럽을 통해서 가는 두가지의 방법이 있다. 특히, 브라질과 같이 지금 있는 한국에서 땅을 파서 계속 가면 나오는,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곳과 같은 지역은 미국을 통하건 유럽을 통하건 거의 비슷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사실이다.

두 코스 중에서는 당연히 유럽을 통하는 것이 편하다. 비자도 필요없고, 일단 유럽이라는 고풍 스러운 느낌을 비행기를 갈아타는 몇시간 동안이라도 좀 여유있게 느낄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유럽을 통하면 미국을 통하는 것에 비해 비행기 요금이 약 200만원 정도가 더 든단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중남미로의 출장은 아주 '당연히' 미국을 통과 하는 것으로 잡아 놓는다.

미국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일단 미국으로 입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우리들이 미국을 통과해서 가기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통과를 하는 과정이 매우 짜증 스러운 것이다.

작년 칠레로 출장 갈때는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는 입국 심사가 엄청 까다로워 져서 왼손, 오른손 손가락 지문 등록과 안구 등록까지 한다.

출국 심사때는 신발을 벗기기도 하는데, 한국처럼 슬리퍼를 빌려 주지도 않는다. 그냥 신발을 벗은채로 엉거주춤 가방 검사를 받아야 한다.

영화 <화씨 9.11>을 보니 이것도 미국의 '애국법' 통과의 결과라고 하던데...

아무튼, 입국수속이 끝나면 수속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계적인 한마디를 던진다.

"미합중국에 오신것을 환영 합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Transit을 기다리는 몇시간 동안 잠깐 생각에 잠겨 보았다.

입국 수속 담당자가 말하는 그 "United States"는 과연 나와 같은 개인에게 있어 어떤 개념인가?

나야 그곳을 잠깐 통과해서 다른 나라로 날아가야 할 사람이고, 미국이라는 땅에서의 생활에 대해 하등의 관심도 없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발급받은 내 10년짜리 미국 비자도 중남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개인적으로는 순전히 공항 Transit을 위한 목적으로 발급받은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 나와 같은 상황이 아닌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 혹시 이 "Welcome to the United States"라는 몇마디는 어떤 절실한 미래를 향한 떨림과도 같은 말이 아니었을까?

그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몇마디 문장에 여러가지 상념이 교차했다.

9.11 테러 기념일을 며칠 남기지 않은 미국 공항에서, 출장전 친구의 부탁으로 구입한 <9.11 commission Report>라는 책을 한손에 들고, L.A 공항 중앙에 커다랗게 걸린 '노골적인' 성조기를 오랬동안 쳐다 보았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의 식민지 됨을 받아 들이면서 경제 발전이라는 '단물'을 보장 받았다고 한다.

외적으로 표현하는 개인의 의견이 어떠한지를 떠나서, 이 선택이 옳았는지의 여부는 각자의 마음 속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분명한 모습으로 판단되고 있을 것이다.

'더럽지만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생각?...

그러한 생각들은 이미 국가와 국가만의 문제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개인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의 어떤 '생각의 방향'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생각의 방향' 속에 '이민'이라는 단어도 공존한다.

평소에도 이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던 한 동료가 비행기 안에서 한마디를 건넨다.

"이번 휴가때 와이프 하고 미국에 있는 친척을 만나고 왔는데, '역시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할곳은 이곳 뿐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

"어? 이전에는 캐나다로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글쎄... 미국이 한국인들이 살기는 더 나은것 같아. 한국인 이민 역사도 오래 되었고..."

"이민 1세데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물과 기름처럼 그 사회 안으로 온전히 들어갈수 없다고 하던데... 그래도 한국이 낫지 않습니까?"

"어쨌든 한국은 떠나고 싶어. 그 종착지가 미국이 되면... 뭘 하고 살던 사실 상관 없고..."

이전 호주 출장중, 출장자 중의 한명이 알고 있는 한국인 교민들을 만나서 저녁 내내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호주로 이민온지 벌써 6년이 넘은 사람들이었는데, 하고 있는 일이 거의 건물 청소 아니면 상점 아르바이트 였다.

청소나 상점 아르바이트라는 직업이 문제 있다는 것이 아니다. 청소도 어차피 서비스업이니 그곳 나라의 관점에서도 그렇고 뭐 그다지 불편해할 일도 아닐 것이다.

내가 이해할수 없었던 것은 한국에서 멀쩡하게, 그것도 소위 '좋은 대학'까지 나온 사람들이 뭐가 부족해서 그 지식자원을 그냥 사장 시키려고 하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것도 외국까지 건너가는 '무리수'를 둬가면서 말이다.

유학생들도 아니고... 나도 고학생 유학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배움에 대한 어떤 당위로써라면 그러한 삶의 모습은 어쩌면 더욱 당연한 선택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민을 원해서, 그리고 어떤 무목적의 '시민권 획득'을 위해, 관계된 모든것, 배운 모든것을 던져 버리고 온다는 것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삶이라는 것이 그저 마음의 평화 혹은 안정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선택이 맞는 것일수도 있을 것이다. 호주에서 만난 위의 교민들도 주말에는 거의 낛시와 골프로 '편안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러면 뭐하러 그 어려운 공부를 해냈고, 학위를 따냈고, 한국의 짜증나는 교육 시스템에 십몇년을 적응 했을까?

그리고 호주는 그렇다 치고, 미국같은 나라는 또 위와 같은 마음의 여유도 쉽게 느낄수 있는 곳도 아니지 않은가?

하긴, 어쩌면 이런 모든 결정도 개인의 절실한 선택일 것이다. 내 생각의 기준이 타인에게 적용 될수도 없는 것이고, 그들 모두에게도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느끼는 이러한 의구심은 한국이라는 '답답하다고 생각되는' 사회에서, 그 안에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와 인간관계와 情의 그물구조가 아까워서, 그리고 현실적인 어려움과 두려움으로 인해, 그러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나의 단순한 '질투'일수도 있는 것일테고 말이다.

"미합중국에 오신것을 환영 합니다."

아무튼 이 문장은 한국이라는 국가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미국에로의 미래를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몇몇 한국인들 개인에게 있어서도 분명히 어떤 영향력 있는 문장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테러를 당하고, 또 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국민들을 사지로 몰아 넣기는 했지만, 타국민에게 있어 미국은 아직 '그린카드'라는 단어의 어마어마한 중량감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말이다.

하긴 한국만 그렇겠는가? 미국을 포함한 지구상의 어느 나라의 상황도 대충 위의 문장 속에서 쉽게 자유롭지 못한것은 사실이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여러 각도로 생각해 봐도 더 나은 직장이나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것이 아니라면, 분명한 방향설정을 통한 인생의 설계를 위한것이 아니라면, 종교와 같은 진지한 목적이나 피치못할 어떤 불가항력력적인 상황 때문이 아니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제국의 우산 속에서 타국인들과 다른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굳이 제3세계 민족이라는 괄시 속에서 막연하게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하는 맹목적인 선택은 하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얼마전 읽은 글 속에서 이민을 빗대어 표현했던, "재미있고 친숙한 지옥이 무료하고 생경한 천국보다 낫다"는 말에도 표현 되어 있듯이 말이다.

태생적인 힘과 선택의 자유를 가지지 못한 대다수의 우리들이라면, 어쨌든 어딜 가나 빡세게, 힘들게, 정신적 육체적 수탈을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것은 마찬가지 아닐까?

결국 이래도 똑같고 저래도 똑같다면... 차라리 한국이 낫지 않을까?

하긴... 이민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대다수 한국인들도 결국 그러한 생각을 할수 있는 자유를 확보한 사람에 한정된 것일수도 있는것일 테지만 말이다.


※ 출장복귀하는 길에 아틀란타 공항에서 공항내 Transit을 하고 있는 한무리의 미군들을 만났다.

그들은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 국내에 머물지 못하는 그들은 또한 어떤 심정으로 지금의 Immigration과 Transit을 받아 들이고 있을까?

어쩌면 그들도, 영화 <화씨 9.11>에서 표현한 대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불가항력적으로 군입대를 지원하는, 지지리도 못사는 동네나 집안의 청년들'이기에... 어쩌면 위의 상황들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아무튼 이 미군들도 출국 심사대에서는 전부 전투화를 벗고 맨발로 걸어 다니며 짐검사를 당한다.

그렇지... 어쨌든 그래야 공평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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