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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4.09.15 13:29

당번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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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도 그럴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어릴적 어쩌다 올려다 본 하늘이 왜 그렇게 파랗게 보였는지.....,
   학교 운동장과 어릴적 걷던 신작로는 왜 그렇게 넓어 보였는지......
   언덕 위에 자리한 학교의 우물은 왜 그렇게 깊어 보였는지,

  그리고 어릴적 읽었던 이야기 책은 왜 잊혀지지 않는 걸까?

  초등학교 4학년 쯤으로 기억한다.
  '주-모'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속에 '부'자가 들어서 인지 모르지만
친구네는 어려서 생각해도 참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학교 바로 언덕 아래 있었다.
우리처럼 두 고개넘어 비올때 비맞고,  추울때 오돌오돌 떨면서 오지 않아도 되었고,
그 친구의 말처럼 학교 종 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와도 늦지 않는다는 것도,
어쩌다 늦잠을 자,  지각하여 선생님께 꾸중 듣지 않는 것도 부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그 친구 집 울타리에 커다란 감나무가 두 그루 있었고,  운동회가 가까운 가을이면 주렁주렁 열린 감이 성경 말씀에도 있는 먹음직도하고  탐스럽게 보였다.
그렇게 많은 감이 열렸지만 한 개의 감도 같이 먹어본 기억은 없다.
우리가 그 친구를 꼬드겨 같이 감을 따먹자고 하면,  
그 친구는 호랑이 아버지한테 무지 혼난다고,  눈을 치뜨는 바람에
우리는 파란 하늘 가운데  발갛게 익어가는 감을 그저 입맛을 다시며 올려다 볼 뿐이었다.  

  어느날 그 친구가 이야기책(동화책) 한권을 학교로 가져 왔다.
그 책은 '재미있는 세계 동화' 쯤으로 기억한다.
이야기 책의 앞 뒷장의 표지는 떨어져 나가 없었고, 맨 뒤 이야기는 아예 내용 몇쪽이 떨어져 나간 헐거운  그런 책이었다. 지금처럼 예쁜 컬러 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중간중간 호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그림이 흑백이나마 그려져 있었다.
  요즘 아이들 같으면 거들떠도 보지않을 그런 책이었지만, 당시만해도 그런 헐거운 책마저 귀하던 때였다. 아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재미있어 보이는 그 책을 서로 빌려보려고  그 친구를 둘러싸고 알랑방귀를 뀌며 졸라댔다.  입장 난처해진 그 친구는 마침 자기가 당번인 것을 생각하고, 자기 당번 일을 대신해주면 그 책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물러났고, 그래도  책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내가 나섰다. 나는 그날 친구의 당번 활동을 내 당번일때보다 더 열심히 했다.
교실 바닥도 깨끗이 쓸고 닦고, 친구들 마실 물을 뜨기 위해 교실에서 멀리떨어진  학교 우물에 갔었다.  그때 내려다 본 우물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학교 우물은 너무 깊어 물이 있는 부분이 오백원짜리 동전만하게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께 야단 맞을 일이지만, 가을이면 코스모스 꽃을  떨어뜨려 빙빙돌며 내려가는 모습을  재미있어 하곤 했다.  
  그 날 하루 당번 활동을 대신해주고, 빌려온 그 책의 내용을 나는 지금도 잊지않고 있다.  항아리 속의 기름을 맛보고 진짜 주인에게 돈을 찾아주는 '아이들의 재판',
  그중에서도 새 왕자의 배필을 찾아 주는 '개구리 왕자' 이야기는 교단에서 아이들이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를 때마다 첫손 꼽히는 이야기가 되었다.
  대개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막내인 세째 왕자가 주인공이었고, 세째 왕자는 개구리를 아내로 맞았고, 임금님은 잔칫날 왕자비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였다. 자기 아내 차례가 되어  개구리가 뛰어 나올 것으로 생각하던  왕자는 아예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무대는 소나무가 너울거리는 아름다운  호수로 바뀌었고, 백로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선녀처럼 아름다운 한 여인이 나와 춤을 추는 모습에 왕자는 물론 모두가  넋을 잃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읽고 있던 나역시  눈앞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하며 신나했다.


당번 활동을 해주고 겨우 빌렸던, 표지도 없는 그 이야기 책이 평생동안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남겨주었고, 지금도 그 이야기의 장면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 설레게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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